<포레스트 검프>라는 영화가 있다. 이 영화의 주인공 포레스트 검프는 바보다. 정확히는 경계선 지능을 가지고 있다. 원래 일반 학교에 들어가지 못할 수준이었지만, 엄마의 헌신적인 노력 덕분에 일반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된다.
그렇다고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어느 시절, 어느 곳에나 못된 아이들이 있기 마련이고, 그들은 포레스트를 괴롭혔다. 하지만 그들의 괴롭힘에도 포레스트는 꿋꿋하게 자란다. 특히 달리기를 아주 잘했는데, 그 덕에 미식축구 선수로 명문대학교에 진학한다.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어느 시골 마을의 동네 바보가 대학에 들어가다니 말이다.
이런 포레스트가 천재 소리를 들었던 곳이 있는데 바로 군대였다. 군대는 병사들이 생각하지 않기를 바란다. 명령하면 명령한 대로만 움직이기를 바란다. 그곳에서 포레스트는 시키는 말을 곧이곧대로 잘 따랐다. 그리고 ‘너 혹시 천재 아니냐’라는 소리까지 듣는다. 군대라는 조직의 비효율성을 드러내는 아이러니한 블랙 코미디였다.
전역 후 포레스트는 새우잡이에 나선다. 평생 배를 몰아본 적도 없으니 당연히 매번 허탕만 쳤다. 하지만 인생지사 새옹지마라고, 큰 허리케인이 불어닥쳐 다른 모든 배들이 난파당하고, 포레스트의 배만 무사히 살아남았다. 이후는 땅 짚고 헤엄치는 수준이었다. 그물만 던지면 새우가 한가득 실려 올라왔다.
그렇게 포레스트는 부자가 된다. 나중에는 ‘애플’ 주식에 투자해 더 큰 돈을 번다. (포레스트는 애플이 과일 파는 회사인 줄 안다) 이런 그의 삶은 영화를 관통하는 명대사와 이어진다.
“인생은 초콜릿 상자와 같은 거야. 네가 무엇을 고를지 아무도 모른단다.”
이 말 그대로다. 우리는 모두 더 행복한 미래를 꿈꾸지만, 그 미래가 오기 전까지는 어떤 미래가 올지 아무도 모른다.
그럼 포레스트가 행복하고 부유한 삶을 살 게 된 것은 전부 운 때문일까? 아무리 똑똑해도, 열심히 살아도 운이 없으면 어쩔 수 없이 나락으로 떨어져야만 할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포레스트 검프가 바보였기 때문에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생각한다.
1) 행복하게 사는 법을 안다는 것
포레스트 검프는 똑똑하지 못하다. 하지만 어마어마한 끈기를 가지고 있다. 소꿉친구 제니를 괴롭히는 사람이 있으면 물불 안 가리고 덤비기도 하고, 한번 달리기를 시작하곤 3년 넘게 쭉 달리기도 했다. 그리고 의리가 넘친다. 친구와의 약속을 반드시 지킨다.
그런데 이런 모습이 많은 책에서 말하는 성공의 비결과 닮아 있다. 앤절라 더크워스는 책 <그릿>에서 높은 IQ가 아닌 끈기를 포함한 ‘그릿’이 높아야 성공한다고 말한다. 포레스트 검프를 보고 있으면 똑똑하진 않아도, 그릿이 높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애덤 그랜트는 책 <기브앤테이크>에서 성공하는 사람은 남의 것을 가로채는 ‘테이커’나 받는 대로만 돌려주는 ‘매쳐’가 아니라 퍼줄 줄 아는 ‘기버’라고 말한다. 세상은 이타적인 행동을 얼간이 취급하지만, 성공하는 사람들은 진심으로 남을 돕고, 그로 인해 자신도 상승하는 윈-윈을 아는 기버라고 한다. (단, 무작정 퍼주다가 지쳐 쓰러지면 아무리 기버라도 실패의 나락에 떨어지게 된다는 경고도 포함한다)
포레스트는 확실히 똑똑하지 않다. 아니, 바보라고 말해도 무방하다. 하지만 그래서 행복과 성공을 거머쥐었다고 생각한다. 그는 끈기있고, 우직하게 제 할 일을 하고, 절대 포기하지 않으며, 항상 의리를 지키고, 주변 사람을 도와주고자 한다. 세상은 그를 바보라고 말하겠지만, 오히려 그런 행동 덕분에 운이 따르고 기회가 찾아왔다. 포레스트는 똑똑하진 않지만, 행복하게 사는 것만큼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이번에는 <여인의 향기>라는 영화의 한 장면을 살펴보자. 주인공 찰리 심스는 일생일대의 위기에 처했다. 그는 지난밤 급우가 저지른 비행을 목격했고, 교장은 그에게 범인이 누군지 밝히라고 독촉한다. 만약 밝히지 않으면 퇴학시킬 것이고, 대신 말하면 하버드 대학교 추천서를 써주겠다고 제안한다.
찰리는 교장의 제안 때문에 고민한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친구를 고발하는 게 영 마음에 걸린다. 결국, 그는 자신의 미래를 사기 위해 친구를 팔아먹는 짓을 하지 않기로 결심한다. “그게 누구였나?”라는 질문에 “평범한 베어드 학생이었습니다.”(그가 다니는 학교 이름이 베어드 고교다)라고 대답한다.
교장은 결국 찰리를 퇴학시키기로 상벌위원회에 강력히 건의하겠다며 “심스군 자네는 거짓말쟁이야.”라고 말한다. 바로 그때 찰리의 보호자로 출석한 프랭크 슬레이드가 외친다. “하지만 밀고자는 아니죠.”
프랭크는 찰리가 솔직하게 말하지 못했던 이유, 모종의 제안이 있었다는 사실을 폭로하며, 오히려 찰리야말로 순결한 마음을 가진 리더십의 모범이라고 옹호한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 경험을 빗대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난 지금도 인생의 갈림길에 서 있어요. 난 언제나 바른길이 무엇인지 알았죠. 잘 알았지만, 난 그 길을 뿌리쳤어요. 왜냐고요? 그 길은 너무 힘들어서죠. 여기 있는 찰리도 지금 갈림길에 있어요. 그가 선택한 길은 바른길입니다. 신념으로 이루어진 바른 인격으로 이끄는 길이죠. 그가 계속 걸어가게 하세요. 여러분의 손에 그의 장래가 달렸습니다. 가치 있는 장래입니다. 날 믿어요. 파괴하지 말고 보호하세요. 언젠가는 그걸 자랑으로 여기실 겁니다.”
2) 힘든 길을 선택하는 어리석음
똑똑한 사람보다 어리석어도 우직한 사람이 더 훌륭한 삶을 사는 이유는 뭘까? 난 <여인의 향기>의 대사 중에 그 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찰리가 선택한 길은 힘든 길이다. 프랭크의 도움이 없었다면 그는 퇴학당할 수도 있었다. 똑똑한 사람이라면 그런 위기를 자초하느니, 교장이 원하는 대로 친구들을 팔아넘기고 하버드 입학 추천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하버드에 간다면, 나는 오히려 찰리의 삶이 암울해졌을 거라 생각한다. 그런 선택을 저지른 순간 찰리의 순결함은 사라진다. 미래의 그는 과거의 경험을 비추어 보며 주변을 이용하고, 의리를 저버리는 행동을 거리낌 없이 저지를지도 모른다.
그렇게 기회주의자가 되면 오히려 성공과 멀어진다. 앞서 언급한 애덤 그랜트의 <기브앤테이크>를 떠올려 보자. 남의 것을 가로채는 ‘테이커’보다, 남에게 베풀 줄 아는 ‘기버’가 더 큰 성공을 거둔다. 찰리는 정말 갈림길에 서 있었다. 테이커의 삶을 사느냐, 기버의 삶을 사느냐. 그곳에서 찰리는 기버의 삶을 살기로 결심한 것이다.
물론 그 길은 힘든 길이다. 제 발로 힘든 길을 가겠다고 하면 주변에서 모두 어리석다고 비웃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길은 올바른 길이다. 또한 진정한 행복과 성공으로 나아가는 길이기도 하다. 똑똑하게 군다고 눈앞의 편안함을 좇으면, 어리석고 우직한 사람이 기꺼이 선택할 힘든 길을 놓칠 수 있다. 과연 무엇이 어리석고, 무엇이 지혜로운 걸까? 나는 힘든 길을 선택하는 어리석음이야말로 진정 똑똑하고 지혜로운 일이 아닐까 싶다.
참고
1) 영화 <포레스트 검프>
2) 영화 <여인의 향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