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산 남자

한 리얼리티 쇼에 나온 출연자의 인터뷰가 여러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되었다. 남자는 자주 ‘최선’이라는 말을 항상 강조했는데, 이에 출연진이 왜 그렇게 치열하게 사는지 물어보았다.

 

 

스스로 열심히 살았다고 대답한 남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조곤조곤 풀어내기 시작했다.

 

“저희 부모님은 가방끈이 길지가 않아요. 배움이 적으셔서 육체노동을 하셨거든요. 20대 때 연애하거나 친구들과 술을 마시거나 한 기억이 없어요. 해외여행도 제가 노무사가 돼서 27살에 처음 갔고요. 저는 27살까지 거의 골방에 갇혀서 공부한 기억, 심지어 공익근무 요원을 하면서 노무사 시험에 합격했어요.”

 

노무사가 된 다음에도 그의 삶은 여전히 험난했다.

 

“사무실 개업해서 직원을 하나 뽑고 사무실을 운영할 때, 포털사이트에서 사람들 질문에 답변하는 게 있어요. 그 답변을 14,000개 달았어요. 처음에는 수입이 없는데, 전문가가 답변을 달면 500원을 줘요. 그게 아무 일이 없을 때는 수입원이에요. 그냥 그게 할 수 있는 거니까 저는 했어요. 일감이 없었으니까. “

 

제작진이 “그렇게 열심히 살았던 이유가 뭐예요?”라고 묻자 남자는 부모님 이야기를 꺼냈다.

 

“그렇게 열심히 살았던 이유가, 어머니 아버지가 굉장히 힘들게 살았어요. 그런데 힘들게 산 이유가 불성실해서 힘들게 산 게 아니에요. 열심히 살았는데 아버지도… 육체노동을 하시니까. (정확히 육체노동이라 하면 어떤 건가요?) 막일이죠. 용역 같은 거… 아버지가… “

 

 

남자는 여기서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오열했다. 남자는 계속 눈물을 흘리면서 격양된 목소리로 충격적인 이야기를 이어갔다.

 

“저희 아버지는요. 저랑 피 한 방울도 안 섞였어요. 어머니가 2살 때 재혼을 했는데, 그렇게 힘든 금형일 하시다가, 사업이 부도나서 여관방 전전하고 그러는데도… 대기업 같은 데서 체육행사를 하잖아요. 그러면 남들이 남기고 간 도시락 있잖아요. 그걸 갖다가 우리 가족을 먹였어요. 그런데 그 음식이 상해서 나랑 내 동생이 못 먹었어요.”

 

 

남자의 목소리는 이제 격양을 넘어 어딘가 한이 서린 듯한 기분까지 주었다.

 

“우리 가족이 고시원 같은 데 살고 그랬단 말이에요. 그리고 분당이 재개발되잖아요. 그 재개발되는 족족 우리 집은 쫓겨났어요. 내가 이를 악물고 공부했어요. 우리 아버지가 의사들 운전기사도 하는데 그 모욕을 겪는데도, 그냥 배운 게 없어서 열심히 살았는데, 그냥 열심히 살았는데 배운 게 없어서 직업이 그랬단 말이에요. 열심히 살았는데 못 살았단 말이에요. 그래서 내가 열심히 공부했어요. 성공해야 해서. 수단과 방법 안 가리고. 내 대에서는 가난을 끊어야 하니까요.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더이상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어요. 내 대(代)에서는 가난을 끊고 싶었어요.”

 

제작진이 “그래서 20대 기억이 없는 거군요?”라고 묻자 남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기억 같은 거 없어도 돼요. 저는 제 또래 누구보다 잘살고 있어요. 그런 기억 같은 거 없어도 돼요. 필요 없어요. 내 덕분에 우리 가족들 아파트에 살고 있고, 나도 이제 떳떳하게 직원 두고 살고 있어요. 그런 기억 하나도 없어도 돼요. 괜찮아요. 지금부터 만들면 돼요. 남들이 손가락질해도 괜찮고 저는 상관없어요. 독하다고 욕해도 되고요. 상관없어요. 남들이 욕을 해도 나는 공부해야 했고, 노무사가 된 다음에 내 얼굴을 알려서 사업을 번창시켜야만 했어요.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어요.”

 

마지막으로 그는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지금 제가 이렇게 얘기하는 건 아버지 생각이 나서… 아버지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는데 너무 나에게 잘해줬어요. 우리 아버지가 너무 불쌍해요. 생각만 하면 너무 불쌍해요. 뭐 도박을 한 것도 아니고, 일을 안 한 것도 아니고, 열심히 일을 했는데 가난하다는 게 너무 슬퍼요. 너무 열심히 일을 했는데 가난하다는 게 너무 불쌍해요.

 

 

“열심히 일을 했는데 가난하다는 게 너무 슬퍼요.” 이 말이 가슴에 쿡쿡 박히는 기분이었다. 슬프지만 세상일이 그렇다. 그냥 노력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 그렇다고 노력의 가치를 깎아내리고 싶진 않다. 노력해도 안 된다는 패배 의식은 더더욱 거부한다. 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해도 하던 대로 하고, 성장하지 않으면 힘만 빠질 뿐이다. 그냥 열심히 하는 게 아니라 의식적 노력이 있어야 한다. 안타까운 점은 이를 알려주는 사람이 없으면 스스로 깨닫기가 힘들다는 점이다. 배운 게 없어서 열심히 해도 가난하다는 건… 그래서 정말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오히려 가난은 성공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아닐 확률이 높다. 정확히 말하자면, 가난은 양날의 검이다. 어떤 사람에게 가난은 의기소침하는 이유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성공해야만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가난을 원동력으로 삼는 사람은 심지어 멸시마저도 동력으로 삼는다. 무시당한 경험을 ‘꼭 성공해야겠다’라는 악으로 깡으로 승화하는 것이다. 먹다 남긴 도시락을 먹어야 했던 일. 재개발 때문에 쫓겨나야 했던 기억. 이 모두가 남자에게는 성공해야만 하는 이유가 되었다. 그리고 남자는 지금 또래 누구보다 성공한 삶을 살고 있다.

 

그래도 가슴 깊이 사무친 슬픔은 어느샌가 튀어나와 눈물을 쏟게 한다. 아마 평생이 흘러도 힘든 시절을 떠올리면 다시 눈가가 촉촉해질 것이다. 옆에서 보는 사람도 감정이 북받쳐 오르는데 본인은 오죽할까. 여기에 독하다고, 악착같다고 말하지 말자. 남의 성공을 시샘하거나 폄하하지도 말자. 지금의 성공을 위해 얼마나 한 맺히는 노력을 이어왔을까? 얼마나 힘든 시간을 견뎌왔을까? 그저 “수고하셨습니다. 고생 많았어요.”라고 말하면 족하다고 생각한다. 그 말이면 이 남자의 뜨거운 눈물을 조금은 식혀줄 수 있을 것 같다.

 

 

참고 : <스트레인저> 3화, 스카이티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