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연예계와 스포츠계를 포함해 각종 분야에서 학창 시절 악행에 대한 폭로가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그런 폭로 이후 경력에 큰 불이익을 당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출연하던 작품에서 하차한다거나, 징계를 받는다거나 하는 식이다. 솔직히 자업자득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에 받지 못한 벌을 이제서야 받는다는 점에서 오히려 늦었다는 생각도 든다. (역시 벌은 빨리 받는 게 좋다. 미루다 보면 이자까지 쳐서 받아야 한다)
작금의 사태를 보고 있자니 ‘권선징악’이라는 단어가 절로 떠오른다. 그리고 이 말이 이제 진짜 현실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과거의 권선징악은 일종의 판타지였다. 픽션에나 등장하는 교훈이고, 현실에서는 나쁜 짓 하고 떵떵거리며 사는 사람들이 태반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아니다. 소셜 미디어 덕분이다.
소셜 미디어의 특징 중 하나는 언로(말의 길)의 확장이다. 과거에는 언론사나 유명인처럼 일부 계층의 목소리에만 힘이 실렸다. 보통 사람은 아무리 억울함을 고래고래 외쳐도, 세상은 그런 일이 있는지조차 몰랐다. 하지만 소셜 미디어 덕분에 이제는 보통 사람도 만방에 목소리를 퍼뜨릴 수 있다. 세종대왕께서는 언로를 넓히기 위해 한글을 창제했다고 하셨다. 그 꿈이 500년 뒤에 소셜 미디어를 통해서 이뤄진 셈이다. (물론 그로 인한 단점도 있다)
언로가 넓어졌다는 말은 네트워크가 확장되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확장되었을 뿐만 아니라 더욱더 촘촘해지기까지 했다. 이제 말이 퍼지는 속도는 빛의 속도만큼 빠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제일 두려운 것은 ‘블랙 스완’이다. 이는 나심 탈레브가 주장한 이론으로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사건이 실제로 발생하고 후폭풍이 생긴다는 내용이다. 네트워크가 넓어지고 촘촘해질수록 블랙 스완급 대형 사건이 발생하는 빈도가 늘어나게 된다.
이것이 권선징악을 판타지 영역에서 현실로 끌어내렸다. 과거였으면 고래고래 외쳐도 아무도 몰랐을 이야기들이 이제는 삽시간에 일파만파로 퍼져나간다. 이제 나쁜 짓을 하고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살 수는 없다. 네트워크에 실상이 밝혀지면, 삽시간에 퍼져나가고 엄청난 영향력을 가질 테니까. 이는 좋은 일도 마찬가지다. 선행을 베푸는 자영업자에게 돈쭐을 내주겠다며 주문 폭주가 이어지는 게 대표적인 사례다.
이번에 벌어진 각종 폭로 사태도 시작은 한 배구선수가 인스타에 올린 “내가 다아아아 터트릴꼬얌”이라는 한 문장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본인이 터졌…) 이런 상황을 그 누가 예상했을까? 언제 어떤 일이 방아쇠가 되어 악행이 드러나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차라리 과거처럼 하늘에 계신 전지전능한 존재가 벌을 내린다고 생각하는 게 마음이 편할 것 같다. 21세기 권선징악은 그보다 무섭다. 예측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부정적 블랙 스완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네트워크를 전부 차단해야 하나? 그건 국가도 못 하는 일이다. (중국은 하던데?) 일개 개인이 네트워크를 어찌할 수는 없다. 그것은 세상 그 자체고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사는 사람의 숙명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안티프래질’하게 사는 것이다. 충격을 받았을 때 깨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단단해지는 게 안티프래질이다. 만약 소셜 미디어에 누군가의 과거 악행이 올라왔다고 해보자. 만약 그가 진짜로 악행을 저질렀다면, 그는 그 충격에 그대로 부서지고 말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착하게 살았다고 한다면, 그 충격은 오히려 과거의 미담을 드러내 주는 역할을 할 것이다. 충격으로 인해 더 단단해지는 것이다.
“악한 일을 하지 말고, 선한 일을 널리 행하라.” 과거에는 이 말을 들으면 콧방귀를 뀌는 사람이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이제 세상이 바뀌었다. 권선징악은 현실이 되었다. 그런 세상에서는 도림 선사의 말대로 사는 것만큼 좋은 게 없다. 악한 일을 하지 말고, 선한 일을 행하라. 이것이야말로 오늘을 살아가는 가장 확실한 전략, 안티프래질한 전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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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영화 <잠복근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