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논문 중 가장 유명하고 잘 쓴 초록 feat.세종

 

“나라의 말이 중국과 달라 한문, 한자와 서로 통하지 아니하므로 이런 까닭으로 어리석은 백성이 이르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끝내 제 뜻을 능히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가 이를 위해 불쌍히 여겨 새로 스물여덟 글자를 만드니 사람마다 하여금 쉬이 익혀 날마다 씀에 편안케 하고자 할 따름이다.”

 

선행사 연구 : 나라의 말이 중국과 달라~

 

문제 제기 : 이런 까닭에 어린 백성이 말하고 싶은 게 있어도~

 

연구 주제 : 내가 이를 불쌍히 여겨 스물여덟 글자를 만드니~

 

연구 의의 : 사람마다 쉽게 익혀 날로 쓰기 편안케~

 

 

이렇게 보니 정말로 훈민정음 서문만큼 잘 쓴 초록이 없는 듯하다. 선행사 연구부터 연구 의의까지 뭐 하나 명확하지 않은 것이 없고, 그 의미가 부족한 것이 없다. 게다가 딱히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없는데, 명확한 의도와 쉬운 표현이 결합된 덕분이다.

 

그런데 훈민정음 서문을 ‘논문’으로 바라보니, 이를 통해 ‘공부’와 ‘학습’의 진정한 의미에 관하여 생각해볼 수 있을 듯하다.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논문 초록이 들려주는 인생 교훈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자.

 

1) 공부

 

보통 공부한다고 하면 시험을 앞둔 상황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시험공부’만이 공부는 아니다. 공부의 범위는 생각보다 넓다.

 

당신이 직장 생활을 잘하기 위해 자기 분야의 관련 책을 보거나, 최신 경향에 대한 뉴스나 유튜브 영상을 찾아본다고 해보자. 이 또한 공부다. 직접 밖으로 나가 시장 상황을 살펴본다면? 이 또한 공부다. 업계 1위를 만나 핵심 노하우를 듣는다면? 이 또한 공부다. 그냥 취미로, 재미로 어떤 분야를 파고든다면? 그것도 공부다.

 

즉, 공부란 의도를 가지고 특정한 주제를 파고드는 모든 행위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를 위해 정보를 취합하고, 그로부터 새로운 결론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단순한 호기심에서 무언가를 찾아보는 행위부터, 대학에서 논문을 작성하는 일까지 모두 포괄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세종대왕님의 훈민정음 창제는 가장 완벽한 공부였다고 할 수 있다. 한글이라는 결론도 대단하지만, 개인적으로 의도가 더 멋있다고 생각한다. ‘백성을 불쌍히 여겨~’ 진심 애민 정신의 끝판왕이라 할 수 있다. 정말 파도 파도 미담만 나오는 게 훈민정음이 아닐까 싶다.

 

2) 학습

 

학습과 공부는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학습에서 ‘습’은 ‘익히다’라는 뜻이다. 즉, 학습이란 단순히 지식이나 정보를 찾아보는 게 아니라, 그것을 완벽히 익혀서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수준에 오르는 것이다.

 

공부의 목적은 다양하다. 단순한 호기심 해결부터, 세상을 바꾸는 일이나(훈민정음은 이 분야 원탑이다), 우주의 원리를 깨우치는 일까지 이를 수 있다.

 

그럼 학습의 목적은 무엇인가? 학습의 목적은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내 삶에 진정으로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는 능력을 키우는 것”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아는 것에서 머무는 게 아니라 자유자재로 다루어 내 삶에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학습의 측면에서 훈민정음을 바라보면? 이보다 완벽한 문자는 없을 정도다. 사용 방법을 차분히 들으면 누구라도 자기 이름을 한글로 쓸 수 있다. 외국인이 아니라 외계인이 와도 가능할 것이다. 그게 가능한 이유는 훈민정음의 제작 의도에 있다. ‘사람마다 쉽게 익혀 날로 쓰기 편한케~’ 즉, 완벽한 학습까지 고려한 문자가 바로 한글인 셈이다. 역시나 파도 파도 미담만 나온다.

 

참고 : 트위터 @tipptopptipp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