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초등학생의 당근마켓 무료로 재능 기부에 나섰다. 그가 나누기로 한 재능은 ‘그림 그리기’. 신청한 사람이 말하는 대로 귀엽고 예쁜 그림을 그려준다. 고구마로 그려달라니까 고구마 캐릭터를 그려준 데다가 생일이라고 특별 서비스까지 해줬다. (그 고구마가 다음 컷에서 쥐한테 잡아먹히는 건 함정) 초등학생은 ‘무료’로 그림을 그려줬지만, 이를 받는 어른들은 무료로 끝내지 않았다. 기프티콘으로 음료도 주고, 햄버거도 줬다.
물론 초등학생이 이런 선물을 바라고서 그림을 그려준 것은 아닐 것이다. 정말 그림 그리는 게 재밌고, 그 재능으로 다른 사람도 기쁘게 해주고 싶은 마음에서 재능 기부를 시작했을 것이다. 그림도 예쁘지만, 마음 씀씀이가 더 예쁜 것 같다. 그림 그려주고 받는 사람보다 더 신나 보이는 게 정말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그 모습이 보기 좋아서 나라도 기프티콘을 쏴주고 싶은 심정이다.
그런데 이 보기 좋은 무료 나눔을 보면서 작은 걱정이 들기도 했다. 만약 이 아이가 나중에 일러스트레이터나 화가가 됐을 때도, 즉 프로가 됐을 때도 지금처럼 행복할 수 있을까? 초등학생의 열정을 의심해서 그러는 게 아니다. 이 정도로 좋아하면, 그게 직업이 되어도 여전히 좋아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내가 걱정하는 건 어린 화가에게 무료를 요구하는 사람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이런 걸 열정 페이라고 부르고, 엄밀히 말하면 노동 착취다. 안타깝지만 콘텐츠 분야에서는 지금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작곡가 김형석은 이렇게 말했다. “영감의 원천은 입금에서 나온다.” 예술도 먹고 살아야 예술이다. 지금은 재능 기부에 만족할 수 있겠지만, 먹고사니즘을 책임져야 할 때가 되면 입금이 영감의 원천이 된다. 페이 후려치기 같은 악습이 계속되면 해당 콘텐츠 분야는 결국 망하고 만다. (일본 영화계 망한 거 봐라….)
그런 이유로 요즘에는 콘텐츠 발행자가 아니라 콘텐츠 플랫폼이 뜨고 있다. 즉, 유튜브가 뜨고 있다는 말이다. 예전에는 블로그에 올라올 법한 내용도 요즘에는 전부 유튜브에 올라온다. 영상으로 보는 게 쉽고 재밌기도 하지만, 30초면 볼 내용을 10분짜리 동영상으로 보고 있으면 답답할 때도 있다. 어쩔 수 없다. 현재 콘텐츠를 제작해서 가장 돈이 많이 되는 플랫폼은 유튜브다. 모든 콘텐츠가 동영상으로 만들어져 유튜브로 몰리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제 글의 시대는 끝났다. 영상이 대세다.’라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콘텐츠 플랫폼이 꼭 유튜브에서만 가능한 일일까? ‘문피아’나 ‘조아라’ 같은 웹 소설 플랫폼에서는 장르 소설로 돈을 버는 작가들이 많다. 많이 벌면 연 1억이 넘게 번다고 한다. 그림도 가능하다. 해외에는 그림을 올리는 화가에게 후원 모금 형태로 수익을 보장하는 일종의 크라우드펀딩 플랫폼도 있다.
안타깝게도 비문학 분야에서는 아직 확실하게 수익을 보장하는 글쓰기 플랫폼이 없다. (모 글쓰기 플랫폼이 수익보다 가치가 중요하다는 식으로 말하던데… 영감의 원천은 입금이라니까!) 개인적인 꿈이 있다면 자기계발, 경영, 사회비평, 예술비평 등의 글이 올라오는 글쓰기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다. (만들기보다는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수준이지만) 현재 크리에이터에게 입금을 보장하는 방법은 광고, 후원, 유료 공개 등 다양하다. 아이디어는 있으니 BM과 개발 능력만 있으면 되려나? (개발은 의외로 쉽겠지만, BM이 어려울 듯. 하지만 최악의 난이도는 운영 관리겠지)
어쩌면 당근마켓 무료 나눔도 콘텐츠 플랫폼의 시작이 될 수도 있다. 비슷하게 개인 간 거래 방식으로 크리에이터를 지원하는 플랫폼이라면 ‘크몽’도 있다. 당근마켓의 초등학생 화가가 프로 화가가 되었을 때는 영감의 원천을 얻기 쉬운 다양한 플랫폼이 많이 등장하기를 바란다. 재능이 넘치는 사람이 재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세상이 어서 빨리 오기를 바란다.
참고 : 당근마켓 초딩이 무료로 그림신청받아서 그려준 그림, 인스티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