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룡영화상, 참 상 잘 주죠?”
2015년 청룡영화제 시상식에서 사회를 맡았던 영화배우 김혜수가 한 말이다. 그해 청룡영화상은 이런 칭찬이 나올 만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이정현의 여우주연상 수상이었다. 그녀가 등장한 작품은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라는 독립영화였다. 이 상 하나로 청룡영화상은 독립영화까지 포용할 줄 아는 상이 되었다.
그런데 이 발언은 다른 영화상을 지적한 말이기도 했다. 바로 같은 해 있었던 대종상 시상식이다. 2015년 대종상 시상식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파행’이었다. 시상식 전부터 집행위원장이 ‘대리 수상은 옳지 않다. 참석이 불가능하면 상을 주지 않을 것이다.’라고 발언하면서 물의를 일으켰다. 이것이 일종의 공개 협박이 되면서 배우들과 감독들이 대거 불참을 선언했다. (대종상아 생각을 해봐라. 불참자한테 상을 안 준다는데, 참석했다가 상도 못 받으면 무슨 개망신이겠니… 그런데 거길 가겠니?)
수상자 선정 방식도 문제였다. 특히 투표방식에 유료 투표제를 도입하고, 이를 중국어로 홍보하기까지 하는 등 노골적으로 돈만 밝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수상 결과도 최악이었다. 원래부터 어용영화제라는 혹평이 자자했는데, 어김없이 사회 비판적인 작품에 인색한 결과를 보여주었다. 천만 흥행을 달성한 <베테랑>은 반재벌 정서를 담았다는 이유로 단 하나의 상도 주어지지 않았다. 반일 정서를 담았던 <암살>은 여우주연상 수상에 그쳤는데, 당시 정부가 친일반중을 꾀했던 걸 고려한 결과라는 후문이 있다. 그리고 당시 정권의 입맛에 딱 맞았던 <국제시장>은 대종상에서 10관왕을 달성했다. 개인적으로 <국제시장>을 좋은 영화라고 생각하지만, 10관왕은 확실히 과장된 측면이 있었다.
“청룡영화상은 상을 잘 주죠?” 이 말은 곧 “대종상은 상을 못 주네요.”라는 말과 다름없었다. 하지만 굳이 대종상을 언급하지도 않았고, 날 선 단어로 독설을 날리지도 않았으며, 저급한 욕설을 포함하지도 않았다. 웃으며 던진 칭찬 한마디, 그 속에 날카로운 비판을 담아낸, 한 마디로 품격있는 비판. 나는 그녀의 말에서 품격있는 비판의 3가지 요소를 배울 수 있었다.
1) 노골적이거나 저급하지 않다
품격있는 비판은 상대의 잘못을 노골적으로 들추지 않는다. 저급한 욕설을 담지도 않았다. 대신 돌려 말하는 세련미를 갖췄다. 그 덕분에 상대가 스스로 반성할 수 있도록 여지를 남긴다.
2) 웃음이 담겼다
김혜수의 발언은 표면적으로는 칭찬이었다. 하지만 웃으며 던진 말에 묵직한 비판이 담겼다. 비판에 웃음을 담고 이를 한 차원 승화하면 ‘풍자’가 된다. 가장 세련되고 품격있는 비판이 된다.
3) 자신을 과시하지 않는다
아무리 정당한 비판이어도, 심지어 품격을 유지하고 있어도, 쓰레기 비판이 되는 경우가 있다. 비판을 통해 자기 자신을 드높이는 경우다. 나를 높이려고 남을 깎아내리는 것만큼 추잡한 게 없다. 품격있는 비판은 절대 자신을 높이지 않는다. 대신 타인을 높인다. “청룡영화상, 참 상 잘 주죠?” 이 말이 유독 품격있는 비판으로 보이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