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한 사람일수록 속기 쉬운 거짓말

일 잘하고 똑똑한 사람의 특징 중 하나는 확실한 근거를 가지고 이야기한다는 점이다. 특히 그들이 애용하는 근거가 있는데, 바로 통계다. 아무래도 숫자로 이루어진 데이터에는 사람의 주관이 끼어들 여지가 적고, 그런 만큼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뇌피셜과 가짜뉴스가 난무하는 요즘 시대에 통계만큼 확실한 근거가 없기도 하다.

 

하지만 통계라고 덥석 믿어서는 안 된다. 요즘 경제 상황이 어려워지면서 2008년의 세계금융위기가 다시 찾아오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그런데 2008년에 세계를 혼란에 빠뜨렸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가 바로 통계였다. 2008년 금융위기는 거짓 통계로부터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당시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 새빨간 거짓말의 현장을 낱낱이 고백하는 한 편의 영화가 있다. 아담 맥케이 감독이 연출한 작품 <빅쇼트>다.

 

 

2000년대 초반 미국 정부는 침체된 경기를 활성화하기 위해 저금리 정책을 펼쳤다. 사람들은 낮은 이자율로 은행에서 돈을 빌렸고, 그 돈으로 주택을 구입하면서 집값이 상승하게 된다. 이렇게 저금리와 집값 상승이 동시에 발생하자 희한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빚을 갚을 능력이 없음에도 은행에서 돈을 빌려서 집을 사기 시작한 것이다. 나중에 집값이 오른 뒤에 집을 팔면 이자를 포함한 빚을 갚고도 오히려 돈이 남았기 때문이다. 집을 사서 누워있으면 자다가도 떡이 나오는 쉽고 확실한 투자법이었다.

 

하지만 집값은 무한정 오르지 않았다. 사람들이 살 집을 구하자 주택 수요가 줄어들기 시작했고, 수요가 줄어들자 집값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무리해서 빚을 내어 집을 산 사람들은 폭삭 망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집을 팔아도 빚을 갚을 수가 없었다. 이것만으로도 심각한 금융위기인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더 큰 문제가 이어졌다. 당시 은행은 ‘파생 상품’이라는 이름으로 채권(빌려준 돈을 돌려받을 권리)을 금융 상품화하여 판매했다. 사람들이 빚을 갚을 능력이 없으니 채권을 기반으로 하는 금융 상품도 휴짓조각이 되었다. 그렇게 가정이 무너지고, 금융이 무너지고, 미국이 무너지고, 나중에는 전 세계가 무너지는 최악의 금융위기가 시작되었다.

 

 

<빅쇼트>에는 이러한 금융위기를 미리 예견한 4명의 그룹이 등장한다. 그들은 ‘미국이 망한다’에 투자하여 큰 수익을 올리게 된다. 물론 처음에는 아무도 그들의 이야기를 믿지 않았다. 최후의 순간까지도 ‘정신 나간 놈이 돈을 갖다 버리네?’라고만 생각했다. 왜냐하면 당시 각종 통계가 보여주는 지표가 폭망하고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의 주인공들은 그 통계가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사실을 꿰뚫어 보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그들은 제대로 관찰했다. 다른 사람들이 평가 기관과 언론에서 발표하는 통계만 주목하고 있을 때, 그들은 개별 대출 상환 여부를 일일이 찾아서 확인했다. 심지어 대출받은 사람의 집까지 찾아가 볼 정도였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결론은 커다란 거품이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사람들은 빚을 갚을 능력이 없었지만, 은행은 계속 대출을 남발했다. 사람이 살지도 않는 집이 지어지고, 그 집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그리고 은행은 그런 거품을 이용해 파생 상품을 만들었다. 그것은 예정된 휴짓조각이었다.

 

 

여기까지 오면 의문이 생길 것이다. 왜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을까? 분명히 구린내가 진동했을 텐데 말이다. 앞서 말했듯이 통계가 거짓말이었다. 제일 충격적인 것은 신용등급이었다. 당시 파생 상품은 AA 수준의 높은 신용등급을 받았다. 최고급 상품으로 포장된 것이다. 문제는 이 등급이 엄격한 심사를 통해 나온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당시 신용평가회사 사이에는 경쟁이 있었고, 회사는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실태를 파악하지도 않고 높은 등급을 남발했다. 즉, 신용평가회사가 돈을 받고 등급을 팔았던 셈이다. 거짓을 팔았던 셈이다.

 

통계라고 무조건 믿으면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통계도 사람이 작성한다. 기업이나 국가의 이익에 따라 통계 수치는 얼마든지 보기 좋게 포장될 수 있다. 그걸 무턱대고 믿었던 수많은 사람들은 2008년에 깡통을 찰 수밖에 없었다. 제대로 끝까지 파헤친 소수만이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었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지만, 그 숫자를 적는 사람은 거짓말을 할 수 있다. 이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인생이 훨씬 안전해질 수 있다. 통계라는 이름의 거짓말에 속을 일이 훨씬 줄어들기 때문이다. 우리는 보기만 해서는 안 된다. 관찰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현장을 직접 찾아갈 필요도 있다. 그렇게 끝까지 제대로 확인하는 자세가 세상에서 가장 그럴듯한 거짓말로부터 우리를 구원할 것이다. 잊지 말자. 어설프게 똑똑한 사람은 통계를 본다. 진짜 똑똑한 사람은 통계를 파헤친다.

 

참고 : 영화 <빅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