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차장에서 만난 제갈량

 

“사진처럼 처음 보는 빨간 차가 막고 있더라고요. 전화해서 차 빼라고 했더니, ‘자기 지금 술 마셔서 운전 못 한다’라고 하고는 전화를 끊네요. 전화 계속해도 안 받더라고요.

 

일단 주차구역 아니라서 사진 찍어서 어플로 신고부터 하는데 녹색 차주가 나와서 차 빼는 거 기다리느냐 묻길래 상황 설명했습니다. 녹색 차주가 전화하더니 ‘차 빼다 범퍼 긁었는데 바쁘니까 그냥 갑니다. 수리하고 연락줘요.’하고는 전화 끊고 오는 것도 안 받더라고요. 그리고는 112에 전화해서 음주운전 하는 사람 있다고 신고를 하더라고요. ‘아직 운전 안 했잖아요’라고 물으니 ‘아마 곧 할 거다’라고 하더군요.

 

잠시 후에 빨간 차주 나오더니 차 훑어봅니다. 당장 차 빼라고 했더니 궁시렁대면서 차 빼고 내려서는 ‘너네가 장난쳤냐’면서 주먹으로 때릴 듯이 행동을 취할 때 경찰이 왔어요. 그리고는 녹색 차주가 ‘이 사람 음주한 상황에서 차 운전했고 우리를 위협했다’라고 합니다. 음주측정기로 검사하니 당연 음주로 나오고, 차주는 운전 안 했다고 내빼길래 제 차에 블랙박스 영상 있다고, 바쁘니까 영상만 주고 갈길 갔어요.”

 

한 커뮤니티에 올라온 이야기인데, 진짜 책사력 쩔었다. 어디서 이런 지혜가 나올 수 있을까 싶은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녹색 차주는 심리를 다룰 줄 아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승부에서 이기는 방법에는 2가지가 있다. 하나는 상대보다 잘하는 것. 다른 하나는 상대를 못 하게 하는 것이다. 두 번째 방법이 비열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사실 스포츠에서도 쓰이는 정정당당한 방법이다. 기록경기라면 상대보다 잘하는 것만 생각해야 하지만, 복싱이나 펜싱 같은 경기라면 상대를 당황하게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이때 중요한 것이 사람의 마음을 읽는 능력, 즉 심리전이다. 상대가 예상치 못한 행동을 하거나, 예상과 반대로 행동하거나, 그렇게 호흡을 흩트려 놓으면 손쉽게 승리를 가져올 수 있다. 그러려면 상대가 어떻게 움직일 것인지 예상해야 한다. 상대의 마음을 읽어야 한다. 녹색 차주는 그러한 승부 전략이 몸에 밴 사람이 아닐까 싶다. 상대가 무엇에 민감한지, 어떻게 반응할지, 그 심리를 훤히 내다보고 있었다. 그렇게 뻔하게 행동이 보이는 순간 게임 끝이다.

 

괜히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이 있는 게 아니다. 나를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상대를 아는 것도 승리를 가져다준다. 이 승리 공식이 있다는 걸 아는 것만으로도 인생을 훨씬 유연하게 헤쳐나갈 수 있다. 정공법이 막힌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게 더는 없다고 생각된다면, 그땐 상대의 심리를 역으로 이용해보자. 의외로 손쉽게 승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참고 : 주차장에서 만난 제갈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