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3학년, 미국으로 교환학생을 갔을 때였다. 학생들이 7명 남짓 되는 작은 수업에 나이가 지긋하신 할머니 교수님이 들어오셨다. 그리고 각자 자기소개를 하게 시켰는데 꼭 포함해야 할 것 중 하나가 자신의 꿈이였다. 학생들이 각자 돌아가면서 자신의 꿈을 말하기 시작했다. “나는 어느 분야의 전문가 되는 것이 목표이다.” “나는 가난한 사람들을 도우면서 사는 것이 꿈이다.” 등등 저마다 구체적인 목표를 이야기 했다.
당시 내 꿈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바로 ‘행복해지는 것’이었다. 내 말을 들으신 교수님이 나를 지그시 쳐다보시던 눈빛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막연하고 추상적인 대답이라 조금 허탈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만큼 행복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고 있던 시기였고 막연히 행복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하지 않았나 싶다. 몇 년이 지난 지금, 나는 이제 행복은 그 자체로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행복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나는 언제 제일 행복한지에 대한 질문은 이어지고 있다.
오늘은 내 이러한 근원적인 질문에 조금은 답이 되었던 책에 관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서은국 교수가 쓴 <행복의 기원>이라는 책이다. 저자는 현재 연세대학교 심리학 교수이며, 세계 100인의 행복학자에 선정되었다. 그는 OECD가 행복에 관련된 보고서를 낼 때 정기적으로 논문을 참고하는 학자이기도 하다. 평생 행복을 연구한 그는 과연 행복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을까?
첫째, 행복이란 뇌가 느끼는 즐거움이다
우리는 행복이라고 하면 거창한 것을 떠올리지만 행복은 의외로 원초적인 경험이라고 한다. 우리의 모든 감정은 크게 보면 쾌락 혹은 불쾌 중 하나에 속한다. 이런 감정은 매우 복잡한 생물학적 프로세스를 통해서만 얻어질 수 있다. 그리고 행복이란 감정도 역시 뇌에서 일어나는 연쇄적 화학적 반응의 산물인 것이다. 즉, 행복은 생각만으로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이런 생물학적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는 무언가가 존재해야만 한다.
둘째, 행복한 사람들은 시시한 즐거움을 자주 느낀다
행복한 사람들은 시시한 즐거움을 여러 모양으로 자주 느끼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우리가 느끼는 쾌감은 빨리 사라지게 되어있다. 왜냐하면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큰 자극이라도, 일정 시간이 지나고 나면 더 이상 크게 우리에게 영향을 주지 못한다. 때문에 한번의 큰 기쁨이 아니라 여러 번의 작은 기쁨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에게 일회성 기쁨을 주는 것들은 우리 삶 전체의 행복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부나 명예, 학위 같은 것들은 얻는 순간에는 기쁘지만 우리에게 반복적인 기쁨을 가져다주진 않기 때문이다. 결국 행복을 느끼려면 단순히 무엇을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사소한 즐거움을 자주 줄 수 있는 무언가를 지속해서 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사소하지만, 지속적인 즐거움은 어디서 얻을 수 있을까?
한 연구에서는 행복하기 위해 절대로 없어서는 안 되는 필요조건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아주 행복한 사람과 불행한 사람을 비교했다. 행복감을 느끼는 정도가 상위 10%에 해당하는 첫 번째 그룹은 첫째, 대인관계가 좋았고 둘째, 더 외향적이었다. 이 두 가지 특징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사람’이다. 행복한 사람들은 하루의 약 72%의 시간을 다른 사람과 함께 보내지만, 불행한 사람들은 혼자 있는 시간이 더 많았다.
우리는 흔히 내향적인 사람들은 혼자 있는 걸 좋아해서 사람들을 만나는 게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연구 결과, 내향적인 사람들도 다른 사람들과 시간을 보낼 때 행복감이 올라갔다는 것이 밝혀졌다. 내향적인 사람들은 단지 사회적 스트레스를 더 예민하게 경험하기 때문에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는 것이다.
결국 행복한 사람들과 불행한 사람들의 차이는 바로 얼마나 많은 시간을 사람들과 함께 보내느냐에 있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사람을 많이 만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는 왜 불행할까?
저자에 따르면 전 세계 사회의 문화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한다. 개인주의와 집단주의이다. 첫째, 개인주의적 문화는 개인의 뜻대로 선택하고 표현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문화이다. 미국, 프랑스 등 서구 국가 등이 개인주의적 문화를 가지고 있는 나라에 속한다. 반면 집단주의적 문화는 집단이 개인에게 과도한 요구를 하고, 수용하지 않는 사람은 철없고 이기적이라는 낙인을 찍는다. 한국, 일본, 싱가포르 등 행복 순위가 대체로 낮은 나라들이 집단주의 문화를 가지고 있다. 개인과 집단의 뜻이 정면충돌할 때 어느 쪽이 우세하는지가 개인주의와 집단주의 문화를 가르는 지표이다.
한 실험에서 미국과 한국 대학생들에게 자신들이 가장 즐거웠던 경험을 쓰도록 했다. 그리고 그 글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면서 그들이 한 경험이 얼마나 즐거웠을 것 같냐고 물어보았다. 그 후, A 참가자 그룹에게는 다른 사람들이 그들의 경험을 지루하게 느낀다고 알려주었고 B 참가자 그룹에게는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아주 즐거웠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고 알려주었다.
시간이 흐른 뒤, 참가자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다시 평가하라고 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미국 참가자들은 다른 사람의 평가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들은 남들이 뭐라고 하던 ‘나만 즐거웠으면 된 거지’라며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반면 한국 참가자들은 달랐다. 자신의 경험이 다른 사람들 눈에는 즐겁지 않았다는 걸 들은 참가자들은 자신의 경험을 전보다 더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개인주의적 문화에는 심리적 자유로움이 있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내 인생을 마음대로 살 수 있는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에 팽배한 집단주의적 문화는 공동의 목표를 추구할 때는 좋지만 만성적인 긴장과 피로가 수반된다. 조직에게 과도하게 자신을 맞춘 결과 삶의 주인의식을 잃어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첫째, 행복은 사소한 즐거움을 자주, 그리고 지속해서 느끼는 것이다.
둘째, 행복하기 위해서는 좋은 대인관계가 필수적이다. 내향적인 성격의 사람들도 타인과 어울릴 때 행복감이 높아진다.
셋째, 개인주의적 문화보다 집단주의적 문화가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
설문조사를 했을 때 한국인이 하루동안 가장 즐거움을 느끼는 행위는 두가지였다고 한다. 바로 먹을 때와 대화할 때. 결국 행복의 핵심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음식을 먹는 장면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런 사소한 기쁨들을 놓치지 말라고 저자는 이야기하고 있다.
오늘 저녁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꼐 오랜만에 밥을 먹고 진솔한 대화를 하는 시간을 가지는 건 어떨까? 행복은 거창한 관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경험이라는 것. 모든 사람들이 꼭 기억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