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에 관한 3가지 오해

※ 이 글에는 영화 <그것>, <그것: 두 번째 이야기>(이하 <그것 2>)의 스포일러가 (조금) 포함되어 있습니다.

 

 

 

1. 소름 돋아? 추억 돋아!

 

많은 사람이 <그것 2>를 공포 영화라고 알고 있다. 마케팅도 예고편도 무서운 분위기를 강조한다. 실제로 작품 내에서도 관객을 깜짝 놀라게 하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무시무시한 괴물도, 심장을 조여오는 공포도 선사한다.

 

‘뭐야? 공포 영화 맞잖아!’

 

뭐, 부정하지는 않겠다. 장르를 구분하자면 충분히 공포 영화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는 작품이기는 하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공포’가 <그것 2>의 핵심이 아니라는 점이다. 공포는 <그것 2>라는 작품의 ‘포장지’에 해당한다. 그럼 내용물은 무엇일까? 핵심 감정은 무엇일까? 나는 그것이 ‘추억’이라고 본다.

위는 내가 <그것>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다. 보시다시피 공포 영화의 한 장면이라고 생각하기 어렵다. 느껴지는 감정은 추억과 아련함이다. 티 없이 해맑았던 어린 시절의 느낌. 여기에 조금씩 이성에 눈을 뜨는 사춘기 소년의 풋풋함도 녹아있다. 이를 살려주는 잔잔한 피아노 선율도 아늑하게 다가온다.  <그것> 1, 2편은 굳이 따지자면 ‘성장 영화’에 가깝다. 공포라는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그 속에는 어린 시절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인물들이 겪은 심경 변화가 섬세하게 담겨있다.

 

그 결과 <그것 2>는 무려 169분, 3시간에 가까운 러닝타임을 갖게 되었다. 광대 페니와이즈와의 대결이라는 중심 이야기뿐만 아니라 각 인물이 어떤 과거를 가지고 있고, 이를 어떻게 극복하는지 설명해야 했기 때문이다. 빌, 베벌리, 리치, 벤, 에디, 마이클 그리고 스탠리까지. 영화는 어느 한 인물도 허투루 다루지 않고, 그들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스크린에 옮겨 놓았다. 인물 각각의 성격도 잘 보여주는 데다, 그들이 가진 공포와 이를 극복하는 과정까지 세밀하게 담아놓았다.

 

영화에 있어 긴 러닝타임은 치명적인 약점이다. 관객이 지루해할 수도 있고, 무엇보다 상영 횟수가 줄어들기 때문에 수익 면에서도 손해를 봐야 한다. 영화는 예술이지만 동시에 최첨단 산업이다. 돈 없으면 만들지도 못하고, 돈 안 되면 상영도 안 시켜준다. 그럼에도 <그것 2>는 기꺼이 긴 러닝타임을 감수했다. 여기서 제작자와 감독이 얼마나 이 작품을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는지 느낄 수 있다. 그 애정 어린 마음 덕분에 영화가 묵직하게 다가온다. 공포 영화의 말초적인 자극보다, 추억과 성장이라는 키워드가 가슴에 또렷이 남는다.

 

 

2. 좋은 공포 영화? 좋은 스티븐 킹 영화!

 

 

그래서일까? <그것 2>를 보고 나면 좋은 공포 영화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공포 영화를 아예 못 보는 사람도 많은데, 공포 영화라면 동남아, 유럽 B급 영화까지 심심풀이로 찾아봤던 나에게는 전혀 무섭게 다가오지 않았다. 가끔 화들짝 놀라게 하거나 끔찍한 괴물이 등장하곤 하지만, 잠깐의 서프라이즈뿐이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머릿속에 맴도는 끔찍한 장면에 잠을 설칠 일도 없을 것 같다. 솔직히 말하면… 공포 영화로서는 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영화가 형편없는 수준은 아니다. 시대적, 공간적 배경을 충실히 살려낸 점만 봐도 공을 많이 들인 웰메이드 영화 티가 팍팍 느껴진다. 그리고 이런 묘사에서 느껴지는 것은 앞서 언급한 ‘추억’이다. 그 느낌을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스탠 바이 미>나 <드림캐쳐>에서 느꼈던 것과 비슷하다. <스탠 바이 미>는 사춘기 소년들의 이야기를 다룬 정통 성장 영화다. <드림캐쳐>는 <그것>과 비슷하게 성인이 된 친구들의 과거 기억을 탐색하는 작품이다. <그것>이 성장 영화에 공포라는 포장지를 씌웠다면, <드림캐쳐>는 성장 영화에 SF라는 포장지를 씌운 느낌이다. 그리고 이 작품은 모두 원작자가 ‘스티븐 킹’이다.

 

스티븐 킹은 누구인가? 가장 많은 작품이 영화화된 소설가. 소설 자체도 엄청나게 많이 찍어내는 다작가. 많은 작품이 베스트셀러에 오른 인기 작가.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린 작품이 스티븐 킹 소설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는 <유혹하는 글쓰기>라는 에세이에서 이렇게 말한다.

 

“소설이란 땅속의 화석처럼 발굴되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캐릭터가 소설가의 손을 잡고 그/그녀가 미처 예상조차 하지 못한 뜻밖의 장소로 이끌어주기도 한다.”

 

<그것 2>를 보고 있으면 스티븐 킹의 이 말이 절로 떠오른다. 이 작품은 어떤 목적의식을 드러내지 않는다. 흥미로운 상황(데리 시에 악마가 살고 있다)을 던져놓고, 그 속에서 다양한 인물이 어떻게 변모해가는지 지켜본다. 이를 흥미롭게 풀어낼 뿐이다. 의미심장한 상징이나, 숨겨둔 의미 같은 걸 만들지 않는다. 한마디로 작가적 허세가 없다.

 

만약 <그것 2>가 짧은 러닝타임 동안 악마와 치고받고 싸우는 이야기만 다뤘다면, 이러한 스티븐 킹의 매력이 드러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모든 인물을 소중히 다룬 덕분에 ‘스티븐 킹’ 작품 특유의 아련한 기분이 살아났다. 공포 영화로서는 꽝이었지만, 스티븐 킹 영화로서는 손에 꼽는 수작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이 점이 더 마음에 든다. 스티븐 킹을 좋아하기도 하고, 뻔한 공포 영화보다는 그 이상의 감동을 담은 영화가 좋기 때문이다.

 

※ 영화를 잘 보면 스티븐 킹을 찾을 수 있다. 자신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에 카메오로 자주 등장했는데, 이번에도 어김없이 나타났다. 연기력도 나쁘지 않다.

 

 

3. 전편 관람 필수!

 

 

요즘 시리즈 영화는 전편을 몰라도 즐길 수 있게 제작하는 경우가 많다. 왜 그럴까? 전편을 관람해야만 즐길 수 있다면 타깃층이 그만큼 얇아지기 때문이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해도 흥행이 어려운데, 전편을 본 사람만 타깃으로 잡으면 흥행은 더 어려워진다. (잊지 마라. 영화는 최첨단 산업이다.) 대표적으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가 이런 식으로 영화를 만든다. 하나의 거대한 시리즈로 이어지지만, 각각 따로 관람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작품마다 이야기의 완결성이 높다. 개인적으로 이런 작품을 선호한다. 시리즈라는 이름 아래 다음 작품에 이야기를 완성해야 할 책임을 떠넘기는 무책임한 작품을 종종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 2>는 다르다. 이 작품은 반드시 <그것 1>을 보고 나서 봐야 한다. 하지만 이것이 단점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우선 1편이 그 자체로 뛰어난 완성도를 보여준다. 후속작을 강제하는 무책임한 모습은 없었다. 그리고 <그것 2>는 1편의 맥락을 파악해야만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특히 인물들의 아역 시절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때 1편을 안 봤다면 많은 감동 거리를 놓칠 가능성이 크다. 개인적으로는 어른의 모습과 아이의 모습이 다양한 방식으로 오버랩되는 게 좋았다. 처음 아역 배우들이 등장했을 때는 그 연출 방식에 감탄사가 튀어나올 정도였다. (극장에서 ㅠㅠ 죄송합니다 ㅠㅠ)

 

<그것: 두 번째 이야기>를 관람하겠다면, 꼭 1편을 관람하고 가기를 바란다. 그냥 밍밍한 공포 영화로 남느냐, 아련한 성장 영화로 남느냐, 그 경계가 1편 관람 여부에 놓여있다.

 

덧. 1, 2편을 포함해서 <그것>에 아쉬운 점이 있다면 엔딩이 구리다. 이는 원작 소설도 마찬가지인데, <그것>을 최고의 소설로 손꼽는 애독자 사이에서도 결말이 구린 걸로 말이 많다. 결말만 바라보는 작품은 아니기에, 뭐 이 정도야 넘어가 줄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결말이 구리다.

 

덧2. 이야기 자체도 단순 공포 영화보다 흥미롭지만, 이를 영상으로 찍어낸 감독의 연출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걸 이렇게 그려내네’ 하며 감탄하는 장면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배우들의 연기도 좋은데, 감독의 디렉팅이 훌륭했을 거라는 추측이 절로 들었다. 아무튼 이 감독 차기작이 기대된다. (소문으로는 DC 코믹스의 <플래시> 솔로 무비라고 하던데…)

 

덧3. 영화는 풋풋한 감성을 크게 살려냈지만, 원작은… 훨씬 고어하다. 뜨악할 만한 장면도 있다. 그냥… 영화로 만족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