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등급인데 재수해야 할까요?

우리나라에서 대학 입시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공부를 잘하면 잘하는 대로, 못하면 못하는 대로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게 입시 제도다. (사실 모두를 만족시키려고 하는 제도 대부분이 이런 취급을 당한다) 엄청난 비용의 사교육 시장, 무한 경쟁에서 오는 극도의 스트레스, 한 번의 시험으로 인생의 큰 영역이 결정되는 것 등 부조리한 면도 많다. 굳이 이런 제도에서 장점을 꼽아야 하나 싶기도 하지만, 입시 제도에서 개인이 얻어갈 수 있는 것도 분명히 존재한다. 한 커뮤니티에 올라온 재수에 관한 고민을 바탕으로 입시에서 얻어갈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알아보자.

 

 

1) 메타인지

 

글쓴이는 6등급으로 전문대에 입학한 후 재수에 관하여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동시에 자신이 얼마나 공부에 무관심했는지 처절하게 깨달은 듯하다. 나는 이 점이 입시를 통해 개인이 얻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바로 메타인지다. 수능을 보고 입시를 준비하면 자신의 실력과 상황에 관하여 매우 적나라하게 알 수 있다. 학창 시절에 공부를 안 한 뼈저린 결과인 셈이다. 인생을 바꾸고 싶다면 자신이 처한 상황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운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긴 하지만, 수능과 입시만큼 자신의 현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게 별로 없다. 좋은 성적을 받으면 좋겠지만, 나쁜 성적을 받았더라도 메타인지를 확실히 챙긴다면 분명 얻어가는 게 있다.

 

2) 대학의 가치

 

개인적으로 이 글을 쓴 학생을 칭찬하고 싶다. 그냥 되는대로 사는 게 아니라 자신의 미래에 관하여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조금 더 고민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면 대학의 가치에 관하여 생각하게 될 것이다. 솔직히 학벌이 성공을 보장해주는 시대는 끝났다. 기업 중에는 대학 간판을 보지 않고 신입사원을 뽑거나, 아예 공채를 중단한 곳도 많다. 결정적으로 좋은 일자리 수보다 대학 졸업장 수가 훨씬 많은 상황이다. 그 결과 명문대라 불리는 곳에서도 취업을 못 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즉, 대학 간판은 더 이상 경쟁력이 아니다. 그럼 무엇이 경쟁력일까? 실력이다. 경력직이 우대받는 것은 가능성보다 현재 가진 실력을 더 중요하게 본다는 뜻이기도 하다. 대학 간판은 일 잘하는 것을 보장하지 않는다. ‘이만큼 성실하게 공부하며 자랐으니, 회사에서도 성실하게 일할 것이다’라는 예상과 가능성을 대변할 뿐이다. 따라서 가능성이 아니라 일을 잘한다는 확실한 증거를 보여주는 게 훨씬 경쟁력 있는 셈이다.

 

3) 대학을 가야 하는 이유

 

그렇다면 왜 대학에 가야 하는가? 말했듯이 취업을 잘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배우기 위해서 가야 한다. 대학 본연의 기능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말이다. 앞서 말했듯이 대학은 더 이상 취업을 보장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고, 그것을 위해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고민해봐야 한다. 이때 필요한 공부가 있다면 그것을 배우기 위해 대학에 가야 한다. 그런 면에서 지금처럼 거의 모든 고등학생이 졸업 후 대학에 가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사회에 나가서 일을 하고 경력을 쌓다가 필요한 공부가 있다면 그때 대학을 가는 게 오히려 더 자연스럽다.

 

4) 재수를 결정하는 근거

 

따라서 재수를 하느냐 마느냐를 결정하려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부터 결정하는 게 맞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고, 이를 위해 필요한 지식이 있다면, 그걸 제일 잘 가르치는 대학 학과에 진학하는 게 베스트다. 의사나 약사처럼 대학 졸업장이 반드시 필요한 직업도 있다. 그런 직업을 꿈꾼다면 재수는 당연한 선택이 될 것이다. 반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가르치는 곳이 없거나, 딱히 대학 공부가 필요한 게 아니라면 바로 직업을 갖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공무원을 하고 싶다면 대학에 가느니 바로 수험 생활에 돌입하는 게 훨씬 이득이다.

 

문제는 아직 우리 사회가 이러한 결정을 받아줄 정도로 성숙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세상이 변하고 있지만, 아직도 대학 간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구시대적 발상이 남아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면 정도의 문제로 들어간다. 간판으로서 가치가 있는 대학이라면 진학하는 것도 아직은 유효하다. 그게 아니라면, 대학을 가는 게 그다지 효과적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마치며…

 

위 학생에게 딱 잘라서 재수를 해라 마라 조언하기는 어렵다. 그러려면 학생이 처한 세부적인 사항을 알아야 한다. 공부에 뜻이 있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본인의 의지도 알아야 하지만, 가정 형편, 공부 환경 등 여러모로 따져봐야 할 것이 많다. 이런 디테일을 모르고 조언하는 것은 오히려 독이 될 뿐이다. 그래서 입시 고민을 통해 우리가 생각해보고 얻어갈 수 있는 지혜에 관한 글을 썼다. 너무 광범위한 이야기라 미안하지만, 이를 바탕으로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다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재수를 선택하면 무척 힘들 것이라고 알려주고 싶다. 그래도 그 힘든 여정을 극복하면 좋은 성적 그 이상의 경험을 얻어갈 수 있다고도 말해주고 싶다. 위 학생이 어떤 선택을 하든 최선을 다하고 후회 없는 삶을 살기를 기원하며 글을 마친다.

 

참고 : 재수하고 싶습니다, 네이트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