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공허하게 느껴질 때 봐야 할 영화

 

잘 나가는 스포츠 에이전트 제리 맥과이어. 하지만 그는 자신의 직업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한다. 하루는 그가 관리하던 선수가 큰 부상을 당한다. 약간의 기억상실 증세까지 보이는 게 꽤 심각해 보인다. 선수의 아들이 제리에게 묻는다. “누군가 말려야 하는 거 아니에요?” 하지만 제리는 너희 아빠는 탱크 같은 사람이니까 걱정하지 말라며 아이를 위로한다. 그 말을 들은 아이는 제리에게 이렇게 답한다.

 

“엿이나 먹어요.”

 

아이는 알고 있었다. 제리가 전하는 말이 그저 말뿐이라는 걸. 그는 선수의 건강을 진심으로 걱정한 적이 없다. 왜냐고? 사람이 아니라 돈이라고 생각하니까. 비정하지만 그게 프로 스포츠의 현실이다. 선수는 곧 돈이다. 제리는 이 비정한 비즈니스에 환멸을 느낀다. 그리고 충동에 사로잡혀 ‘업무 지침서’를 작성한다.

 

“고객을 줄이고, 돈보다 인간을 생각하며, 진실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정말 좋은 말이다. 그리고 그 좋은 소리 때문에 제리는 모든 것을 잃게 된다. 고객이 많을수록 이익이 늘어나는 회사에서 고객을 줄이라는 소리를 했으니… 해고당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다. 제리는 자신이 관리하던 선수들을 빼내려 하지만, 모두 제리 곁을 떠나가고, 남은 것은 가능성만 보여준 미식축구 선수 로드 티드웰 뿐이었다. 그렇게 쓸쓸히 회사를 떠나는 순간, 제리는 다른 직원들에게 읍소한다. 자신의 철학을 믿고 함께 해줄 수 없겠냐고 말이다. 하지만 아무도 응하지 않는다. 심지어 제리의 비서마저 등을 돌린다. 그때 한 사람이 제리를 따라 나선다. 그녀의 이름은 도로시 보이드. 애 딸린 싱글맘이었다.

 

이 영화가 개봉했을 때 내 나이는 13살이었다. 물론 극장에서 본 것은 아니고, 몇년 쯤 지나 TV에서 볼 수 있었다. 그래봤자 중학생이었는지라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였다. 왜 제리는 옳은 소릴 하고서 해고당해야 하나? 로드처럼 돈돈 거리는 녀석이 뭐가 좋다고 친구가 된 건가? 도로시는 왜 제리를 떠나간 건가? 당췌 제리는 뭘 잘못했길래 인생이 이렇게 꼬이고 꼬인걸까?

 

하지만 이런 의문이 채 해소되지 않았음에도 영화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특히 로드가 극적인 터치다운을 이루는 결말을 보노라면, 그 훈훈한 모습에 절로 눈시울이 붉어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제리가 도로시를 찾아가 전하는 명대사. ‘You complete me.’ 이 대사 한 방에 가슴이 녹아내리고 말았다. 그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꼬꼬마를 감동시킬 정도로 감독의 연출과 배우의 연기가 대단한 작품이었다.

 

그러다 나이가 들어 영화를 다시 보게 되자, 많은 의문이 해소되었다. 제리가 해고당한 이유도 알겠고, 로드는 사실 꽤 괜찮은 놈이었으며, 무엇보다 도로시가 제리를 떠난 이유도 알 수 있었다. 제리의 삶은 무엇이 부족했던 걸까? 내가 깨달은 것은 바로 ‘진정성’이었다.

 

비즈니스에서 진정성을 갖기란 쉽지 않다. 언제 어디서나 유혹이 도사린다. 특히나 수익과 성과에 쪼들리다 보면 진정성은 뒷전으로 밀려나기에 십상이다. 하지만 더 힘든 것은 진정성을 알리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좋은 선의를 말해도 세상은 이를 덥석 믿어주지 않는다. 게다가 선의가 손해로 이어지면, 제리처럼 세상으로부터 팽당할 수도 있다.

 

그런데 제리는 정말로 진정성을 갖고 있었을까? 사실 그가 ‘업무 지침서’를 작성한 것은 진정성이라기보다는 ‘충동’에 가까웠다. 글을 쓰고 나서도 그는 여전히 가식적인 반응과 의미 없는 소통으로 일관했다. 주변 사람들과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그 안에 사랑은 없었다. 스스로 그 공허함에 괴로워하면서도 무엇이 부족한지 깨닫지 못한다.

 

그랬던 제리가 로드의 극적인 성공을 바라보며 달라진다. 물론 순탄한 성공은 아니었다. 서로 고성을 지르고, 다투기도 했다. 성공 직전에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었다. 그러한 역경의 끝에서 제리는 진정성을 깨닫는다. 진심으로 선수의 안위를 걱정했을 때, 단순한 비즈니스를 넘어 우정으로 이어지는 관계를 확인하게 된다. 여기서 진정성의 조건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럴듯한 글 한 편 썼다고 진정성이 형성되는 건 아니다. 때론 싸우고 충돌하면서도 꾸준히 이어졌을 때야 진정성이 전해질 수 있다.

 

도로시와의 관계도 진정성이 문제였다. 자신의 철학을 믿고 따라와 주고, 동시에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 제리도 그녀에게 빠져드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제리는 도로시를 원하지 않았다.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주고, 공허함을 채워줄 수 있다면 누구라도 상관 없었다. 단지 그때 제리 곁에 도로시가 있었을 뿐이다.

 

진정성이 결여된 사랑은 삐걱댈 수밖에 없다. 어릴 적에는 왜 도로시가 제리와 결별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몇 번의 사랑을 겪고 나니 그 심정이 이해가 가더라. 불꽃처럼 타오르던 마음은 시간이 지나면 식게 마련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정 때문에 사는 거지’라는 소리를 한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정만 바라보며 사는 건 아니다. 생각보다 많은 부부가 머리가 하얗게 새었을 때도 서로 없으면 못 살 것처럼 애정을 과시한다. 그들은 무엇이 다른 걸까?

 

사랑의 진정성은 비즈니스보다 훨씬 복잡하다. 그저 진심어린 마음을 갖는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진심어린 마음을 갖느냐는 것이다. 그 이유는 사람마다 각양각색일 것이다. 사랑은 모양은 정해진 것이 없으니까. 그런데 영화는 이 다양한 사랑의 이유를 단 한 문장에 함축하는 놀라운 서술을 보여준다. “You complete me, 너는 나를 완성시켜 줘.” 사랑의 모양은 다양하겠지만, 그 기본 원리는 서로를 완성하는 데 있다. 외로움과 공허함을 달래주는 것을 넘어 자신의 신념과 철학을 완성하는 것. 그게 바로 진정한 사랑이 아닐까?

 

꼭 뛰어난 능력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실력을 통해 부족함을 채워주는 것은 사랑이라기보다는 멘토에 가깝다. 사랑에 필요한 것은 실력이 아니라 믿음이다. 상대의 선의를 기꺼이 믿어주는 태도.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는 마음. 세상 모두가 등을 돌려도 내 편을 들어주는 사람. 그런 믿음이 서로를 채워줬을 때, 우리는 온전하게 완성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제리 맥과이어>는 한 남자의 일과 사랑을 다룬다. 그 양쪽 영역에서 필요한 것은 하나였다. 일이 공허하게 느껴진다면, 사랑이 허무하게 느껴진다면, 그럴 때마다 이렇게 물어보면 어떨까?

 

“나는 과연 얼마나 진정성 있게 살고 있을까?”

 

 

참고 : 영화 <제리 맥과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