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연구자들은 크게 2가지 형태로 목표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당신은 왜 이 책을 읽는가? 만일 공부법에 관해 이해하고 궁극적으로 공부를 통해 지적인 성장을 꾀하려는 것이라면 당신은 ‘성장 목표’를 가진 것이다. 그것이 아니라 좋은 시험 성적으로 타인에게 자신을 증명하거나 남들이 다 보기 때문에 보는 것이라면 당신은 ‘증명 목표”를 가진 것이다.
원래 교육학자들은 자신의 능력을 높이려는 목표를 학습목표(learning goal), 숙달목표(mastery goal), 과제개입목표(task-involved goal), 과제중심목표(task-focused goal)라 하고, 능력을 입증하려는 목표를 수행목표(performance goal), 자아개입목표(ego-involved goal), 능력중심목표(ability-focused goal)라고 명명했다. 하지만 우리는 이렇게 흩어진 용어를 이해하기 쉽게 ‘성장 목표’와 ‘증명 목표’로 바꾸고자 한다.
성장 목표를 가진 사람은 공부 그 자체에 가치를 두고 자신의 능력을 향상하는 데 목적을 두기 때문에 ‘노력’으로 성장한다는 믿음이 있다. 또한, 실수나 실패를 했을 때 좌절하기보다 무언가를 배우는 경향이 강하며, 더 큰 도전을 하고 그 도전에 제대로 응전하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구사하려 한다. 실제 연구에 따르면 성장 목표를 추구하는 학생들은 성공이 노력으로 가능하다고 믿으며, 학업에서 맞닥뜨리는 도전을 받아들이며 스스로 질문하기, 요약하기 같은 효과적인 공부 전략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증명 목표를 가진 사람에게 공부의 목표는 자신의 능력을 주변 사람들에게 입증하는 것이다. 과제의 결과는 노력보다 재능에 따라 달라진다고 보는 경향이 강하다. 고정형 사고방식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하면 된다.
하지만 성장 목표와 증명 목표는 상호 배타적이지 않으며 학습자들은 오히려 이 둘 모두에 해당하는 목표를 가질 확률이 높다. 그래도 증명 목표보다 성장 목표의 비중을 높이는 것이 학업 성취도뿐만 아니라 행복한 인생에도 무조건 유리하다. 왜냐하면 증명 목표는 몇 가지 부작용을 낳기 때문이다.
증명 목표의 부작용 1 : 낮은 자존감
증명 목표를 가진 사람은 자존감이 낮을 확률이 높다. 자존감이 낮은 상태이기 때문에 증명 목표를 추구할 수도 있고, 증명 목표를 추구하다 보니 자존감이 낮아졌을 수도 있다.
왜 그럴까? 증명은 대부분 상대적이다. 어떤 경쟁자나 주변의 평가가 없는데 증명 목표를 세우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래서 증명 목표를 추구하면 ‘누구보다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세상은 넓고, 사람은 많다. 내가 항상 그 누구보다 잘하기는 매우 어렵다.
만약 증명 목표에 어울리는 상위권에 도달하지 못하면 자아의 위협을 느끼게 된다. 즉, 자존감이 떨어진다. 고등학생 때까지 전교 1등만 하던 학생이 명문대에 들어가 비슷한 성적의 아이들 틈에서 안 좋은 성적을 받았다고 생각해보자. 증명 목표를 가진 사람이라면 이 순간 위기를 느끼게 된다. 하지만 자신이 만족할 수 있는 성적을 내기는 쉽지 않다. 만약 다음 학기에도 다음 학년에도 증명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다면? 자존감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
항상 자신을 증명하며 살 수는 없다. 살다 보면 운이 없어서, 경쟁자가 강해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증명 목표를 이루지 못할 수도 있다. 성장을 이뤘어도 증명을 해내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성장 목표를 추구했다면 목표를 달성한 사람이 되었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무언가를 증명하려는 것보다 내가 어제보다 성장했는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자존감을 높이는 데 훨씬 유리하다.
증명 목표의 부작용 2 : 회피
두 살 때 책을 읽고 네 살 때 모차르트를 연주하며 여섯 살 때 미적분을 풀고 여덟 살 때 3개 국어를 하는 아이들을 우리는 신동이라고 부른다. 이런 신동들의 미래를 떠올려 보라. 아마도 각 분야의 선두주자로서 최고의 길을 갈 것이라고 상상할 것이다. 하지만 심리학자들이 어렸을 때 신동이라고 여겨졌던 아이들의 삶을 추적해 본 결과 비슷한 경제 사정의 평범한 아이들보다 더 뛰어난 삶을 살지 못하는 것으로 나왔다.
신동들은 왜 우리가 기대하는 것만큼 성취를 못 하는 것일까? 그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기대를 많이 했기 때문이다. 신동들은 어렸을 때부터 타고난 능력에 대한 칭찬을 많이 받는다. 그리고 어떤 시험을 보든 최고의 자리를 지키는 경향이 있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다 보면 신동들은 부모님과 담당 교사의 특별한 관심이 없는 경우 고정형 사고방식을 갖고 증명 목표에 매달릴 가능성이 크다. 자신의 재능을 증명하는 것이 인생의 목표가 된다. 그런데 자신의 재능을 증명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피하게 된다.
기존의 연주기법으로 아무리 모차르트를 잘 연주한다 한들 최고는 되지 못한다. 감히 남들이 따라오지 못할 독창적인 연주가 필요하다. 이미 나온 과학지식을 모두 안다고 해서 노벨상을 받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 과학 발전에 이바지해야 한다. 어떤 분야든 최고라고 불리기 위해서는 ‘독창성’이 필요하다. 하지만 독창성은 쉽게 생기지 않는다. 독창성은 실패를 먹고 자란다. 필연적으로 도전을 원한다. 하지만 증명 목표에 휩싸인 신동들은 실패를 두려워한다. 자신의 재능 없음을 드러내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결국, 무모하게 보이는 도전을 피하게 된다.
쇠란 키르케고르는 “과감한 시도로 인간은 잠시 자신의 위치를 잃을 수 있다. 그러나 과감한 시도가 없으면 인간은 자기 자신을 잃는다.”라고 말했다. 신동들이 그렇다. 신동들은 과감한 시도를 회피한 나머지 신동이라는 자기 자신을 잃게 된다. 이렇듯 증명 목표는 도전 과제가 어렵다고 느낄 때 ‘회피’하게 하는 부작용이 있다.
하지만 이것이 비단 신동들만의 이야기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연구에 따르면 불행하게도 학생들은 학교에 다니면서 성장 목표는 감소하고 증명 목표는 증가한다고 한다. 대학 입시라는 단 하나의 목표에 모든 교육시스템이 맹목적으로 정립되어 있고 어느 대학에 가느냐가 한 사람의 존재를 평가하는 교육 풍토를 생각하면 오히려 이는 매우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고 작가가 <부모공부>에서도 언급했지만, 이는 비단 학교에서만 있는 일이 아니다. 아이들은 집안에서 부모에 의해 고정형 사고방식을 형성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재능은 타고나며, 겉으로 보이는 결과(대학 간판이나 직업)로 사람을 평가하는 부모에게서 어떤 사고방식을 물려받겠는가?
하지만 사고방식도 목표도 스스로 바꿀 수 있다. 공부하는 궁극적 이유는 ‘성장’을 위한 것이다. 비록 시험도 봐야 하고 증명해야 할 상황도 있겠지만, ‘성장’이라는 큰 목표를 가슴속에 새기고 공부한다면 결과와 상황에 상관없이 꾸준히 공부하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증명이 아닌 성장을 공부의 목표로 삼도록 하자!
증명 목표의 부작용 3 : 편법
고영성 작가는 대학교 시절 잠깐이지만 유학의 꿈을 꾸었다. 그래서 토플 시험을 보았다. 요즘 학생들이야 영어 듣기나 회화를 잘하는 사람들이 꽤 있지만, 고 작가가 대학 다닐 때만 해도 영어를 유창하게 듣고 말하는 이는 별로 많지 않았다. 고 작가도 전형적인 한국 학생으로 문법과 어휘, 독해는 어느 정도 했지만, 상대적으로 듣기와 말하기는 못 했다.
당시 토플시험은 말하기 문제는 없고 듣기 문제만 있었는데, 고 작가가 토플에서 원하는 저수를 얻기 위해서는 꼭 넘어야 할 산이 듣기 시험이었다. 그래서 듣기에 좀 더 심혈을 기울여서 준비했지만, 좀처럼 실력이 늘지 않았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실력이 늘 만큼 노력하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에 고 작가는 그것을 인식하지 못했고 급기야 조급증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주변 사람들이 내가 토플 준비하는 것을 아는데 점수가 안 나오면 나를 어떻게 평가할까?’, ‘토플 준비만 이렇게 오래 할 수는 없는데?’ 등, 이런 생각들이 고 작가의 마음을 지배했다. 결국, 고 작가는 정공법이 아닌 편법을 쓰기 시작했다. 이른바 족집게 족보를 본 것이다.
당시 토플 시험 커뮤니티에 가면 특히 듣기 문제를 풀었던 이들이 기억을 더듬어 정보를 올려주었고, 사이트의 주인장이 모아 잘 정리해 족보로 만들었다. 토플은 문제은행식으로 모두 똑같은 시험을 보지는 않지만, 분기마다 나오는 문제가 한정돼 있었다. 많은 사람이 함께 작업하니 거의 모든 문제를 사람들은 알게 됐다.
고 작가는 열심히 족보를 읽어 답을 달달 외웠다. 영어 듣기 공부를 한글로 된 글을 읽으면서 공부한 것이다! 지금 돌아보면 정말 어처구니없지만, 당시에는 그것을 잘 몰랐다. 고 작가는 30세 이전까지만 해도 전형적인 고정형 사고를 가진 사람이었고 성장 목표보다는 증명 목표를 중요시했기 때문이다.
몇 개월 뒤 고 작가는 원하는 점수를 얻었다. 하지만 과연 고 작가에게 남은 것은 무엇일까? 매일 족보를 열심히 읽었지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토플을 준비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외국에서 수업을 원활하게 듣고 학교생활을 잘하도록 영어 실력을 기르려는 것이다. 하지만 고 작가는 점수를 잘 받아야 한다는 생각만 한 나머지 영어 공부를 하지 않고 족보만 외웠다. 심지어 고 작가는 유학도 가지 못했다. 시간만 낭비한 것이다.
공부를 결과 중심으로 그리고 타인에게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려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자신도 모르게 타협할 수 있다. 때로는 그런 타협으로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지만, 성장은 하지 못한다.
‘증명 목표와 성장 목표’에 관하여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다음 심화 강연을 놓치지 마세요.
참고 <완벽한 공부법>, 고영성·신영준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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