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만 권의 책과 그것이 정보망으로 연결된 도서관을 한번 상상해 보자. 방금 당신이 떠올린 그 도서관이 바로 장기기억이다. 장기기억은 당신이 평생에 걸쳐 누적시킨 경험과 정보를 모두 담고 있는 영구적인 저장소다.
하지만 장기기억 또한 작업기억처럼 한 가지 형태로 저장되지 않았다. 장기기억은 선언적 지식(declarative knowledge), 절차적 지식(procedural knowledge), 조건적 지식(conditional knowledge)으로 이루어졌다.
선언적 지식은 사실과 개념 등에 대한 지식으로 일화기억(episodic memory)과 의미기억(semantic memory)으로 나뉜다. 일화기억은 당신에게 개인적으로 발생했던 사건들의 기억을 말한다. 10년 전 첫사랑을 만난 사건, 토익 시험을 망쳤던 기억 등이다. 우리는 일화기억을 통해 추억여행을 떠날 수 있다. 특히 어떤 사건에 대해 강력한 정서적 반응을 할 때 더 강력해진다. 첫 키스에 대한 기억이 선명한 것처럼 말이다.
의미기억은 어휘와 사실적 정보에 대한 지식, 그리고 그런 것들이 조직화한 지식을 의미한다. ‘의미기억’이라는 의미를 아는 것 그리고 의미기억이 선언적 지식과 장기기억의 하위 단계임을 아는 것을 모두 포함한다.
절차적 지식은 과제를 수행하는 방법에 대한 지식이다. 운전하는 방법, 이메일을 보내는 방법 등이 포함된다. 조건적 지식은 언제 어디서 선언적 지식과 절차적 지식을 사용할 것인가에 관한 지식을 말한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두 문제가 있다.
1) 1/2 + 1/2 =
2) 1/2 + 1/3 =
당신은 분수 문제를 풀 때 분모를 같게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것을 선언적 지식이라고 한다. 당신은 두 문제를 보고 첫 번째 문제는 분모가 이미 같음으로 분모를 같게 할 필요가 없고 두 번째 문제는 분모를 같게 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한다. 이것을 조건적 지식이라고 한다. 이 문제를 실제로 계산하기 위해서는 절차적 지식이 필요하다.
그런데 조건적 지식과 절차적 지식은 암묵적이다. 다시 말해 이 지식을 활용할 때 이 지식을 제대로 회상하거나 설명할 수가 없다. 예를 들어 운전할 때 내가 어떤 지식을 활용하고 있는지를 정확히 떠올릴 수 없다. 그저 운전하는 것을 보고 그러한 지식이 있는지를 추론할 뿐이다. 반면 선언적 지식은 명시적이다. 쉽게 설명할 수 있고 회상할 수 있고 스스로 그 사실을 자각할 수 있다.
자, 그러면 어떻게 해야 기억을 잘할 수 있을까? 우리는 기억하는 데에 시간을 많이 사용하면 기억을 많이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기억 전략이라고 하면 복습과 반복 학습만을 떠올린다. 일반적으로 많은 시간을 투자하면 기억의 양을 늘려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한 가지 조건이 있다. 공부의 질, 즉 기억 전략이 같았을 때 시간이 의미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복습이나 반복 학습이 그저 하나의 형태로만 있는 것처럼 생각한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어떻게 복습하고 어떻게 반복하느냐에 따라 기억 수준은 현저한 차이를 보여준다. 공부하는 시간이 의미가 있으려면 훌륭한 전략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강의 듣기와 반복 읽기의 허상
훌륭한 전략을 알아보기 전에 우리가 잘못 생각하는 대표적인 공부 전략에 대해서 알아보자. 기억연구의 대가인 독일의 심리학자 헤르만 에빙하우스에 따르면, 학습을 하고 10분 후부터 망각이 시작되며 1시간 뒤에는 50%, 하루 뒤에는 70%, 그리고 한 달 뒤에는 80%를 망각한다고 한다. 그래서 공부 좀 한다는 학생들은 한결같이 복습을 열심히 하는 게 좋은 성과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망각을 이기기 위해서는 복습 이외에는 답이 없기 때문이다.
이 말은 지극히 사실이다. 하지만 여기서 더 중요한 질문은 ‘과연 어떤 복습을 해야 장기기억에 좋은가?’이다. 결국, 여러 가지 중요한 시험이나 학업 성취도를 높이거나 일을 제대로 하는 데 필요한 것은 풍부한 장기기억이니 말이다. 하지만 만약에 당신이 생각하는 복습이 추가로 강의를 듣는 것이거나 단순 반복 읽기를 뜻하는 것이라면 공부의 효율성은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 공부는 했지만, 자기 생각보다 성과가 나오지 않게 된다.
<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에서는 저자가 에릭 마주르 하버드대 교수에게 들었던 강의 내용을 상세히 기록해 놓았다. 마주르 교수는 강의하면서 한 가지 그래프를 보여 준다. MIT 미디어랩에서 실험한 연구로 한 대학생에게 검사 장치를 붙이고 일주일 동안 교감신경계의 전자파동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관찰한 것이다. 집중하거나 각성 혹은 긴장되었을 때 교감신경계는 활성화된다. 다시 말해 교감신경계가 활성화되어 있다는 것은 뇌가 뭔가 적극적으로 일한다고 추정해 볼 수 있다. 반대로 교감신경계의 활성 상태가 약하면 뇌가 집중하지 않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래프를 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교감신경계가 활성화되지 않을 때는 TV 시청과 수업 시간이다. 다시 말해 강의를 들을 때 뇌가 적극적으로 활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자고 있을 때도 뇌는 열심히 활동하는데 말이다.
상위 1%의 학생들은 학원에서 강의를 듣기보다 필사적으로 개인 공부 시간을 확보한다고 한다. 밤늦게 학원에서 수업을 들으면 뭔가 열심히 공부한 듯하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뇌는 해야 할 일을 안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프를 보면 숙제하고 공부하고 시험 볼 때 교감신경계가 활성화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결국, 추가로 강의를 듣는 것은 매우 비효율적인 복습이다.
또 하나의 비효율적인 복습이 있다. 그것은 단순 반복 읽기다. 2008년에 있었던 연구에서 한 그룹 학생들에게 교재를 한 번 읽게 했고, 다른 그룹의 학생들에게는 교재를 연속해서 두 번 읽게 했다. 그리고 읽자마자 바로 시험을 봤더니 두 번 읽었던 그룹의 성적이 조금 높았다. 하지만 몇 시간이 지나서 다시 시험을 보자 두 집단의 성적은 별 차이가 없었다.
또 다른 실험에서는 총 148명의 학생에게 <사이언티픽 아메리칸(Scientific American)>에서 뽑은 다섯 개의 지문을 읽게 했다. 먼저 학생들을 높은 학습 능력이 있는 집단과 낮은 학습 능력이 있는 집단으로 나누었다. 그리고 각각의 집단을 지문을 한 번 읽는 집단과 두 번 연속해서 읽는 집단으로 나누어 실험했다. 교재를 읽고 잠깐의 시간이 지난 뒤 지문을 통해 무엇을 기억하고 배웠는지 질문했다. 연구 결과 어떤 집단이든 연속적인 반복 읽기는 장기기억에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렇다면 연속으로 반복 읽기의 실효성이 이렇게 떨어지는데 왜 학생들은 이 방법을 선호하는 것일까? 첫째는 이러한 방법이 복습 방법 중에서 가장 쉽고도 간편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만약 복습할 때 연습 문제를 풀고, 내용을 요약하며, 구술로 설명하라고 하면 귀찮아하는 학생이 태반일 것이다. 하지만 반복 읽기 정도는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둘째는 연속해서 반복 읽기를 하다 보면 교재 내용을 완전히 내 것으로 소화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그것은 착각이다. 시간이 좀 지난 뒤 연속해서 읽었던 내용으로 시험을 보거나 설명을 해 보라고 하면 소화했다는 생각이 무색하게 낮은 성적이 나올 확률이 높다.
참고 <완벽한 공부법>, 고영성·신영준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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