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적으로 영어가 안 들리는 4가지 이유

 

기본적으로 ‘귀가 트이지 않았다’라는 상태에 대해 들여다보려 한다. 단어, 실제 내용, 발음, 문장 이해력 등 4가지 측면에서 분석할 것이며, 각각에 대해 어떤 방법으로 학습해야 할지를 함께 다루었다.

 

평소 ‘영어’라는 말로 무언가를 지칭할 때, 우리는 그것이 ‘소리 언어’로서의 영어인지, ‘글 ’로서의 영어인지 혹은 ‘문자 자체’ 즉 알파벳인지를 명확하게 구분하지 않는다. 이제 그것들을 구분해 보자. 소리 언어로서의 영어는 ‘음성 영어’, 글로서의 영어는 ‘영어 문장’, 문자로서의 영어는 ‘로마자 알파벳’으로 불러 보자. (마찬가지로 ‘음성 한국어’ ‘한국어 문장’ ‘한글’이 있다) 물론 이번 글에서 우리는 음성 영어에 집중할 것이다.

 

음성 영어는 다시 분리할 수 있다. ‘소리 자체’와 그것이 담은 ‘의미’다. 시냇물 흐르는 소리도 소리고, 자동차 경적 소리도 소리고, 음성 영어도 기본적으로는 소리다. 그러나 시냇물 소리와 음성 영어가 다른 점은 거기에 특정한 의미가 담겨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다름이 음성 영어를 ‘언어’로 만들어 주는 특징이다.

 

영어 듣기에 관해 이야기하다 보면 ‘귀가 뚫렸다’ 혹은 ‘귀가 뜨였다’는 경험담을 접하게 된다. 영어를 듣고, 그것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는 상태를 일컫는 말이다. 앞서 언급한 용어로 표현하자면, ‘음성 영어의 소리’가 ‘의미 ’로 전환됐다는 뜻이다. 이 상태가 되기 전까지 음성 영어의 소리는 시냇물 소리와 같이 의미 없는 소리 자체에 불과하다.

 

 

단어 – 귀가 뜨이지 않는 이유 1

 

 

많은 분이 간과하지만, 어휘가 또 문제다. 우리가 접하는 음성 영어는 특정 상황 혹은 맥락이 있게 마련이다. 수능 영어 듣기 문제도, 토익 LC도, 영어 오디오북도, CNN 뉴스에도 모두 맥락이 존재한다. 토익의 경우 문제와 보기를 볼 수 있고, 오디오북은 그 음성파일 혹은 CD를 선택한 순간 이미 맥락이 형성된다. 뉴스 역시 그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 알고 있는 배경지식 등이 맥락을 구성한다.

이런 맥락 속에서 우리는 나름대로 내용을 예상하면서 관련 어휘를 의식적·무의식적으로 머릿속에서 준비한다. 토익 LC 파트1 사진 속 남자가 기둥에 못을 박고 있다면 nail, pillar 등을 떠올릴 것이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머릿속에 준비된 어휘의 양과 수준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음성 영어 소리를 의미로 변환할 때 필요한 것보다 턱없이 부족한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 우리는 아무리 듣더라도 그 음성 영어가 무슨 의미를 품고 있는지를 파악할 수가 없다. (손짓과 표정으로 어떻게든 넘어갈 수 있는 대면 의사소통 상황은 제외하자) 단어는 영어 학습의 처음부터 끝까지 중요하다.

 

 

배경 지식 – 귀가 뜨이지 않는 이유 2

 

 

이해하고자 하는 그 음성 영어가 무슨 내용을 다루고 있는지와, 우리가 그 내용을 이해할 만한 준비가 되어 있는지가 중요하다. 쉽게 말해 ‘배경지식’의 수준이다. 짧은 한국어 글 두 개를 살펴보자.

 

1. 《자기만의 방》에서 버지니아 울프는 소설과 비소설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며, 의식의 흐름 기법을 이용해 자신의 주장을 펼쳐 나간다. 화자의 서술은 옥스브리지 도서관의 사소한 관찰에서 시작해, 융의 아니마/아니무스 개념을 상기시키는 남성성과 여성성의 조화와 1년 500파운드의 경제적 독립을 주장하기까지, 독자를 지루하지 않게 이끈다.

 

2. 따라서 외각이 크면 평면각은 뾰족해지고 반대로 외각이 작으면 평면각은 무뎌진다. 이러한 결과를 입체각을 결정하는 부족각과 의미를 연결하면, 평면에서 외각은 결국 부족각과 동일한 개념으로 해석될 수 있다.

 

첫째는 20세기 영국 문학 대표 작가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에 대한 글 가운데 한 토막이고 둘째는 대한수학교육학회지 수학교육연구 제19권 제4호에 포함된 ‘영재교육에서 유추를 통한 데카르트 정리의 도입가능성 고찰’(최남광, 유희찬)이라는 논문의 일부다.

 

영어영문학을 전공한 사람은 버지니아 울프가 누구인지, 《자기만의방이 어떤 작품인지, 20세기 초반 영국의 사회상이 어땠는지에 대해 알고 있기에 첫 번째 글은 훑어보기만 해도 이해가 가능하다. 그러나 두 번째 글은 ‘입체각’과 ‘부족각’ 등의 용어 자체를 모를 가능성이 크기에, 천천히 읽더라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배경지식의 차이에 따른 결과다.

 

학습자가 자신의 배경지식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CNN 등 미국 뉴스를 본다면 기대와 달리 영어 능력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이는 특히 성인 학습자가 쉽게 저지르는 실수다. ‘대학생인데 수능이나 토익 듣기에만 머무를 수 없다’며 미국 뉴스를 무작정 듣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다. 미국 언론은 당연히 미국 내 중요 이슈와 (미국 관점에서의) 국제 뉴스를 다룬다. 만약 미국 사회와 국제 이슈에 대한 배경지식이 부족하다면, 시간 투입 대비 학습자의 영어 듣기 능력 향상에 별 도움이 되지 못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2016년 11월 초 기준 미국과 전 세계의 가장 뜨거운 이슈인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에 관해 생각해 보자. 대선 내내 주요 이슈였던 이민자와 소수자에 대한 공화당과 민주당의 정책 차이, 미국 주별 정치 경제적 배경과 그에 따른 후보 간 전략 차이, 선거인단 독식 체제라는 미국의 독특한 대통령 선거 방식, 그리고 힐러리 클린턴과 도널드 트럼프에 대한 여러 문제까지……. 이런 상황들에 관해 아는 내용이 없다면, CNN을 시청하든 NBC를 시청하든 그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기는 힘들 것이다.

 

이런 ‘배경지식 부족’ 문제를 깊게 생각하지 않는 학습자들이 영어학원 청취 강좌를 들으면서 빠질 수 있는 함정이 있다. 자신의 실제 영어 듣기가 나아진 것인지, 해당 강좌에서 미리 주어지는 배경 설명 덕분에 일시적으로 해당 뉴스에서만 내용이 잘 들리는 것인지 명확하게 구분하지 못하는 현상을 말하는 것이다.

 

강사가 제공하는 사실과 사전 지식으로 배경지식을 늘리는 것에 잘못된 점은 없다. 다만 우리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그러한 배경지식의 확충을 학원에서만 해결해서는 곤란하다는 점이다. 스스로 끊임없이 독서를 해야 하고, 지속해서 세상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실용서적, 문학작품, 인문사회과학, 과학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고, 언론사 뉴스뿐 아니라 블로그와 소셜 미디어 등에서 다양한 정보와 의견을 접하고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영어 발음의 이해 – 귀가 뜨이지 않는 이유 3

 

 

한국어와 영어는 각자 보유한 소리의 종류가 상당히 다르다. 이 글은 영어 발음을 모두 다루려는 설명이 아니기에, 한국인인 우리가 음성 영어의 각기 다른 소리를 구분해서 인식하지 못하는 큰 원리만 간략하게 살피고 넘어가겠다.

 

음성 한국어는 /ㅂ/, /ㅍ/, /ㅃ/의 세 가지 소리를 구분한다. 한국어 화자인 우리는 아주 쉽게 세 소리를 구분하고, 해당 소리 각각의 존재를 의식적으로 인지한다. ‘바’와 ‘파’와 ‘빠’를 다르게 인식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어를 배우는 영어 원어민들은 저 소리를 쉽게 구분하지 못한다. 영어엔 그와 같은 3쌍의 소리 구분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반대로, 음성 한국어는 음성 영어의 /l/과 /r/에 해당하는 구분되는 소리의 쌍이 없다. 그 결과 많은 한국인 영어 학습자들이 두 소리를 구분해서 인식하지 못하고, 구분해서 발음하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는다.

개념 설명을 간단하게 곁들여 보자. 음성 영어와 음성 한국어가 매우 다른 지점으로 ‘유성음’과 ‘무성음’이 있다. 유성/무성이란 소리를 낼 때 성대의 진동 여부를 구분하는 개념이다.

 

뱀 흉내를 낸다고 생각하고 ‘ 스- ’ 소리를 내 보자. 이때 목 위에 손을 대 보면 아무 진동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젠 그냥 편하게 ‘아-’ 소리를 내 보면서 똑같이 해 보자. 지속적인 떨림이 느껴진다.

 

한국어든 영어든 모음은 성대가 진동하는 유성음이다. 문제는 자음이다. 영어보다 한국어에는 무성 자음의 비중이 크다. 앞서 언급한 /ㅂ/도 무성음이다. 한국어 “바”를 소리 낼 때, 처음 “ㅂ” 구간에서는 성대가 울리지 않지만 “ㅏ” 소리로 넘어가면서 성대가 울리게 된다.

 

이와 같은 차이가 바로 한국인이 음성 영어 소리를 구분해서 듣고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주요 원인이다. 영어에서 /b/와 /p/ 소리는 유·무성 차이를 제외하면 같은 특성을 공유하는 소리다. 그러나 한국인에겐 같은 특성을 공유하는 유·무성 소리의 쌍을 비교해 감지하는 민감도가 영어 화자에 비해 낮을 수밖에 없다.

 

또한, 한국어의 모음 /ㅏ/와 영어의 모음 /a/는 굉장히 다른 소리지만, 많은 한국어 학습자들이 이러한 차이를 쉽게 간과한다. /a/의 정체를 파악하지 않은 채, 단순히 ‘a 소리인데 왜 아까는 안 들렸을까?’라고 생각하고 끝낸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는 무작정 영어를 많이 듣는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한국어 음성 체계가 확립된 우리는 영어 특유의 소리를 인지하는 감각 자체가 무뎌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영어의 개별 소리가 어떻게 발성되는지를 의도적으로 공부해야 한다. 읽기 편에서 말했던 ‘ 자발적 학습 ’의 일종이다.

 

이때 원어민의 음성을 무작정 듣는 것은 시간 투입 대비 효율이 오히려 떨어지는 접근 방법이다. 우리의 귀와 두뇌에 영어 소리를 구분하는 기준값 자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탓에 한국어와 영어의 소리 차이를 정확하게 알고, 그것에 관해 설명해 줄 수 있는 교사 혹은 교재가 필요한 것이다.

 

효율적인 학습을 위해서라면 교재를 사거나 오프라인/온라인 학원에 등록하는 게 좋지만, 학습 의지가 뒷받침된다면 유튜브를 활용하길 추천한다. 유튜브에는 훌륭한 자료가 무료로 정말 많이 공개돼 있다. 듣기뿐 아니라 ‘말하기’ 또는 ‘발음’ 등으로 검색한다면 다양한 강좌를 볼 수 있다.

 

한국어와 영어의 발음 차이에 주목해서 그러한 강좌들을 시청하고 공부해 보자. 음성 영어 자음과 모음의 개별 소리를 공부한 뒤 강세와 연음, 그리고 인토네이션 등 발음 현상을 공부하면 금상첨화다. 다만 이것은 말하기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기에, 말하기 편에서 다루도록 하겠다.

 

 

문장 이해 능력(혹은 읽기 속도) – 귀가 뜨이지 않는 이유 4

 

 

듣기에는 읽기 능력도 개입한다. 일상적인 상황에서 서로 편안한 이해가 가능한 말하기 속도는 1분당 150~160단어 수준이다. 치열한 토론에서는 분당 350단어에서 500단어 수준까지 속도가 올라가기도 한다. 한편 평범한 영어 원어민의 ‘읽기’ 속도는 말하기보다 조금 빠르다. 1분에 228단어 전후를 읽는 게 평균적인 속도다.

 

영어를 듣고 바로 이해하려면, 머릿속에서 단어를 한국어 뜻으로 치환하거나 문법을 헤아리는 과정을 모두 포함하더라도 상대방의 말하기 속도와 비슷한 수준으로 그 뜻을 이해해야 한다.

 

이것을 스스로 가늠해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자신의 읽기 속도다. 간단히 말해, 최소 ‘150단어/1분’ 속도로 글을 읽어야 기본적인 대화를 무리 없이 이해할 수 있다는 뜻이다. 다행히 이런 속도가 어떤 느낌인지 경험할 수 있는 인터넷 서비스가 있다. ‘Breaking News English(www.breakingnewsenglish.com)’라는 곳이며 최신 영어 뉴스를 활용한 각종 학습 자료를 다양하게 제공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기능은 ‘스피드 리딩(Speed Reading)’이다. 해당 메뉴로 들어가서 각 글을 선택해 보면 분당 100단어 혹은 200단어의 속도로 기사 본문이 스크롤 된다. 분당 100단어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면, 아직 일상적인 수준의 영어 대화를 듣고 바로 이해할 준비가 부족하다는 뜻이다. 수월하게 읽은 분들은 페이지 아래 “Next Activity”를 통해 더 빠른 속도에 도전해 보시기 바란다.

이렇듯 읽기 실력은 듣기 능력도 좌우한다. 안타까운 소식이 있다면, 한국인을 비롯한 대부분 비영어권 영어 학습자들의 평균 읽기 속도가 분당 50~100단어 사이라는 점이다. 잘 듣기 위해서는 읽기부터 탄탄하게 다져야 한다.

 

한국에 거주하는 한국인에게 아리랑 라디오, tbs eFM, 부산영어방송, 광주영어방송 등 한국의 영어 방송사를 추천하고 싶다. CNN과 BBC에 비해 국제 소식이나 현지의 감성을 느끼긴 어렵겠지만, 친숙한 소재로 영어 듣기를 시작할 수 있기에 초보자에게 추천한다. 우리가 매일 보고 듣는 것을 영어 음성으로 먼저 들어 보자는 전략이다.

 

 

참고 <완벽한 공부법>, 고영성· 신영준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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