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과 관련하여 흔히 듣는 말이 있다.
“대학에서 공부한 거 사회 나가면 아무 쓸모 없다.”
꼭 대학을 졸업해 사회생활을 경험해야지만 이런 말이 나오는 건 아니다. 대학을 다니고 있는 학생도 비슷한 고민을 한다.
“이걸 배워서 써먹을 때나 있나? 나는 이런 걸 배우고 싶은 게 아니었는데…”
이쯤 되면 뭐하러 대학을 다니는지, 대학이라는 교육기관이 왜 필요한지 의문이 생긴다. 나아가 교육의 목적이 무엇이고, 어떤 철학을 가져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대학을 갈 예정이거나, 대학에 다니고 있거나, 혹은 자식을 대학에 보내야 하는 입장이라면 반드시 한 번은 고민해봐야 할 일이다. 너무 어려운 이야기를 꺼내서 미안하다. 그래서 이 심각한 고민을 가볍게 시작할 수 있도록 영화 한 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제목은 <억셉티드>다
주인공 바틀비 게인스는 자신이 지원했던 모든 대학에서 불합격했다. 부모님은 실망하고, 어딜 가도 낙제생이라는 딱지가 따라다녔다. 이에 괴로워하던 바틀비는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해서는 안 될 짓을 저지르고 만다. 지역 명문 ‘하몬 대학교’에서 날아온 낙방통지서를 조작하여 합격통지서를 만든 것. 존재하지도 않는 ‘사우스 하몬 공과대학교'(South Harmon Institute of Technology, 약자는 SHIT, 우리말로 똥이다)에 합격했다는 편지를 만든다. 여기에 그럴 듯한 홈페이지까지 만들어 부모님을 속이는데 성공한다.
한번 시작한 거짓말은 끝을 모르고 커지기 시작한다. 부모님이 기숙사에 데려다준다는 말에 빈 건물을 정비해 가짜 학교를 만들고, 가짜 학장까지 섭외하며, 가짜 학생들까지 불러오기에 이른다. 겉으로 멀쩡해보이는 학교의 모습에 부모님은 완전히 속아넘어가고, 그렇게 한바탕 소동이 끝나는 듯 싶었다. 여기까지만 해도 정말 대단하다는 소리가 나오는데, 진짜 큰 문제는 다음에 벌어진다.
사우스 하몬 공과대학교 홈페이지를 보고 수백 명의 사람들이 입학 신청을 한 것이다. 누구나 지원만 하면 받아준다는 말에 바틀비처럼 대학에 떨어진 사람들이 사우스 하몬을 찾아왔고, 그들이 낸 등록금만 100만 달러나 모였다. 사람들에게 진실을 말하고 돌려보내야 했지만, 대학에 합격했다는 말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바틀비는 차마 진실을 고백하지 못한다. 그렇게 짝퉁 대학교 사우스 하몬의 기념비적인 첫 학기가 시작된다.
글로 보면 황당하게 다가오지만, 영화를 보면 가짜 대학교를 만드는 과정이 의외로 설득력 있게 그려진다. 기본적으로는 코미디 영화지만 막나가는 재미를 보여주기 보다는 사뭇 진지한 이야기도 들려주는 작품이다. 특히, 바틀비가 학교를 운영하는 모습을 보며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쩌다 보니 시설도 갖췄고, 돈도 있고, 학생까지 모였다. 하지만 바틀비는 대학을 운영해보기는커녕 다닌 적도 없었다. 과연 대학이란 무엇일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 하몬 대학교를 찾아가지만, 그가 목격한 것은 이상과 거리가 멀었다. 지루하기만 한 수업. 일부는 졸기 바쁘고, 일부는 그 지루한 수업에서 A를 받기 위해 애쓴다. 원하는 강의는 배울 수 없었고, 그저 학점만 바라보며 학교에 다닌다.
나도 대학을 다니던 시절 비슷한 일을 경험했다. 중고등학교 6년 동안 입시 경쟁에 시달리다 보니, 대학에 입학한 이후로 공부에 흥미를 잃었다. 철없던 1, 2학년 시절에는 수업 시간에 졸기 바빴다. 군대에 다녀온 후 졸업을 위해 학업에 열중하긴 했다. 하지만 그것이 ‘공부’였다는 생각이 들진 않는다. 그저 학점을 얻기 위한 몸부림에 지나지 않았다. 특히나 공대에 다니다 보니 그런 경향이 더 심했다. 무언가를 탐구하기보다는 수업 내용을 받아 적는데 급급할 수밖에 없었다. 대학생이 아니라 고등학생 4학년이 된 기분이었다.
이런 대학의 실태를 보고 혼란에 빠진 바틀비에게 가짜 총장 벤 루이스가 던진 대사가 압권이다.
“대학은 서비스업이야. 원하는 걸 제공해야지.”
그렇게 사우스 하몬의 커리큘럼이 정해진다. 자신이 배우고 싶은 수업을 직접 개설하는 것이다. 사우스 하몬은 학생이 곧 교수가 되는 혁신적인 교육을 시작한다. 물론 수업 내용이 정상적으로 보이진 않는다. ‘꾸물거리기’, ‘아무것도 하지 않기’, ‘범퍼 스티커 만들기’. 애들 장난처럼 느껴지는 게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런 수업에서도 교육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걸으며 생각하기’ 수업에서는 스트레스 없는 환경에서 뭘 하고 싶은지 고민한다. ‘찾아 보기’ 수업은 개인적인 경험을 되돌아 보며 예술적 재능을 발견한다. ‘스케이트 보드’에서는 공학과 물리를 배운다.
이 모습을 보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나는 ‘학교’를 다니면서 내가 공부하고 싶은 걸 공부한 적이 있나?”
안타깝게도 그런 적이 없다. 나는 선생님과 부모님이 가르치고 싶은 걸 배워왔지, 내가 공부하고 싶은 걸 배운 적이 없다. 다행히 대학에 와서는 ‘교양’이라는 이름으로 내가 듣고 싶은 과목을 수강할 수 있었다. 나는 예술을 좋아했고, 그 중에서도 영화를 사랑했다. 그래서 글쓰기, 미학, 심리학 등 인간과 예술을 깊게 탐구하는 과목을 찾아 들었다. 개중에는 학문의 개론만 설파하는 수박 겉핥기 교양도 있었지만, 정말 운이 좋게도 깊은 사색을 끌어내는 좋은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 졸업 이후에는 관련 책을 찾아보고 스스로 훈련하며 실력을 키웠다. 그 결과 지금 이렇게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다.
교육 과정에 따라 억지로 배우는 것은 진정한 공부가 아니다. 진정한 공부는 내가 알고 싶은 내용을 스스로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공부하면 정말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 더 잘하기 위해 부족한 것을 항상 생각하게 되고, 이를 끌어올리기 위해 관련 내용을 탐색한다. 그렇게 알아낸 지식은 즉각 실전에 활용된다. 공부한 게 정말 효과가 있는지, 제대로 공부한 게 맞는지 확인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처럼 진정한 공부는 자연스럽게 지식의 탐색과 심화가 동시에 일어난다.
사우스 하몬의 학생들은 그런 교육을 실천하고 있었다. 강좌명은 우스꽝스럽지만, 오히려 교육의 본질에는 가까운 셈이다. 명문이라 불리는 하몬 대학교보다 오히려 나아 보인다. 그럼 우리의 교육은 어떨까? 억지로 배우기만 했던 초중고 12년, 대학교 4년의 교육 과정은 전부 쓸모없는 일이었을까?
영화를 넘어 현실을 생각해보자. 배우고 싶은 것만 배우며 살 수는 없다. 당신이 엔지니어가 되려면 최소한 미분 방정식은 할 줄 알아야 한다. 푸리에 변환이니, 라플라스 변환이니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도 어려운 내용을 공부해야 한다. 양자 역학이나 유체 역학처럼 좌절과 절망이 가득한 과목도 있다. 지루하고 하기 싫겠지만, 그래도 해야만 한다. 이걸 모르면 스마트폰도 없고, 우주선도 만들지 못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 문명의 위대한 업적은 모두 이 ‘지루한 과목’에서 태어난 것이다.
이런 내용을 머리로는 알고 있다. 수업 첫 날에 교수님께서 과목의 중요성을 설파하시며 해주신 말씀이니까. 하지만 머리로는 알아도 가슴으로 와닿지 않는다. 학부생 수준에서 배우는 내용은 기초 중의 기초다. 실제 산업 현장에서 활용되는 것과는 괴리가 있다. ‘너희가 지금 배우는 내용으로 스마트폰을 만들었다’고 이야기 해봤자, ‘그런가 보다’하는 정도에 그치고 만다. 교수님은 학생들에게 동기부여 하기 위해 이런 저런 말씀을 하시겠지만, 실상 별다른 자극을 주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왜 공부해야 하는지’ 그 동기를 찾지 못한 학생들은 결국 학점과 스펙에 몰두할 수밖에 없다. 진정한 공부도 먹고 살아야 할 수 있는 법이다. 어쨌든 좋은 직장, 대기업에 취업해야 한다. 결국 교육의 정점이라 불리는 대학이 취업 준비 학원으로 전락하고 만다. 어떤 어른들은 이런 현실을 바라보며 청년들을 탓하기도 한다. 열정이 없네, 도전 정신이 없네, 나름 쓴소리를 한다. 하지만 나는 미안하다고 생각한다. 먼저 대학을 나왔고, 같은 고민을 했으면서도, 학생들에게 공부해야 하는 진정한 의미를 일깨워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학생은 바보가 아니다. 게으름뱅이도 아니다. 공부해야 할 마땅한 동기가 주어지면, 기꺼이 스스로 찾아서 공부할 것이다. 기성세대라면 이를 일깨우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깨닫지 못한 학생들을 팔짱 끼고 비난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럼 지금 대학을 다니는 학생들은 어떡해야 할까? 학교에서 시키는 것만 공부하며 ‘고등학생 4학년’이 될 것인가? 아니면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겠다며 ‘꾸물거리기’ 강좌를 열어야 하나?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면 ‘장기 계획(3년 이상)’을 세우고 실행하는 법을 익히길 바란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도 ‘뭘 배웠는지 모르는’ 이유는 장기 계획이 없기 때문이다. 중간/기말고사만 모면하거나, 이력서에 들어갈 스펙만 쌓는 것은 단기 계획에 불과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업을 갖게 되었을 때, 자신에게 필요한 자질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이를 갖추기 위해 공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장기 계획이 뒷받침되어야 공부하는 의미를 찾을 수 있고, 진정한 공부를 시작할 수 있다.
앞서 말했듯이, 대학에서 쓸모 없는 공부를 가르치는 건 아니다. 다만 그것이 어떻게 비즈니스에 적용되는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할 뿐이다. 취업 커뮤니티나 직장인 커뮤니티를 돌며 자신이 갖고 싶은 직업에서 요구하는 자질이 무엇인지 탐색하길 바란다. 그러면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이 왜 필요한지 그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정보를 구할 수 없다면 현업에서 근무하는 선배들에게 직접 물어보는 것도 좋다. 그런 선배가 없다면? 점심 시간에 캔 커피 들고 입사하고 싶은 회사 앞에서 기다리는 것도 방법이다. 그토록 절실하게 지식을 탐구하는 사람에게 야박할 정도로 성격 나쁜 사람은 세상에 별로 없다.
열정은 장기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순간 불꽃처럼 타올라 으쌰으쌰하는 건 열정이 아니라 몽상이다. 짧게 끝나버린 성취를 열정이라 부르는 사람은 없다. 3년, 5년, 길게는 10년 동안 한 분야를 힘겹게 걸어온 사람에게만 열정이라는 단어가 허락된다. 열정을 찾고 싶다면, 꿈을 찾고 싶다면, 지금 당장 ‘장기 계획’을 세워보길 바란다. 그리고 이를 이루기 위해 힘겹게 노력하길 바란다. 그 기나긴 과정 하나하나가 바로 열정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