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통한다.’ 이것만큼 의사소통의 핵심을 잘 드러내는 말이 또 있을까? 말은 단순히 소리만 내는 것도 아니고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것도 아니다. 서로가 뜻이 ‘통’해야 의미가 있다. 때로는 말이 없어도 뜻이 통할 수 있고, 반대로 열심히 떠들어도 아무것도 통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후자에 관한 좋은 예시가 있다. 한 커뮤니티에 올라온 카톡 대화인데, 이를 통해 소통이란 무엇인지 생각해보고자 한다.
좌측(검정)이 아이언맨 피규어를 사고 싶은 일반인이고, 우측(노랑)이 피규어를 설명해주는 덕후인 듯하다. 그런데 둘 사이의 대화가 전혀 통하지 않는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
우선, 일반인이 대화를 이어가기에 사전 지식이 부족하다. 아이언맨 수트는 한두 벌이 아니다. 만화에 나온 것까지 합치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고(과장이 아니라 웬만한 덕력이 아니고서는 전부 다 파악하기 힘들다), 영화에 나온 것만 해도 마크 49까지 있다. 그런 걸 모르고 ‘그냥 아이언맨!’이라고 외쳐봤자 원하는 피규어를 얻기는 힘들 것이다. 뭐, 사실 빨간 아이언맨이면 다 괜찮을 수도 있지만, 그러다 나중에 ‘내가 기대했던 건 이게 아니었는데…’라고 후회할 공산이 크다.
기본 소양이 없는 것도 문제지만, 남의 이야기를 경청하지 않는 것도 문제다. 사실 덕후 입장에서는 할 만큼 했다. 여러 가지 모델이 있다는 것도 설명했고, 심지어 상대방에게 ‘이런 방식으로 말해줘’라고 알려주기까지 한다. 하지만 일반인 친구는 그딴 거 모르겠고, 일단 아이언맨만 외치고 있으니 덕후로선 조커짤이 절로 튀어나올 만하다.
그럼 덕후 입장에서는 할 만큼 했으니 더 애쓸 필요가 없는 걸까? 아니다. 덕후는 이런 고통을 견디면서도 더 쉽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더 많은 사람을 같은 취미의 영역으로 데려올 수 있다. (사실 위 대화도 덕후가 일반인에게 피규어 영업하고 있는 현장이다) ‘다른 사람은 모르고 나만 좋아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이런 걸 홍대병이라고 하더라), 함께 즐기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게 취미인지라, 기왕 영업할 거면 더 쉽게, 이해할 때까지 집요하게 해야 한다.
이러한 자세는 글쓰기의 영역에서도 통한다. 글을 아주 어렵게 쓰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좋지 않은 자세라고 생각한다. 물론 내용 자체가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어려운 것도 쉽게 풀어내는 것이 작가의 실력이다. 하지만 무작정 쉬워서도 안 된다. 쉽게 쓰겠다고 내용에 왜곡이 생기면 어렵게 쓰느니만 못하다. 결국, 똑바로 쓰면서도 쉽게 써야 하기에 어려운 것이다. 그런데 이 작업이 너무 어렵기 때문일까? 쉽게 쓰려는 노력을 아예 포기해버리는 경우가 있다. 작가의 의무를 내팽개치는 짓이다.
그런데 힘들어서 포기하는 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일부러 어렵게 쓰는 경우다. 어렵게 쓰는 게 유식하고 있어 보인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절대 그렇지 않다. 어려운 내용을 쉽게 설명하는 게 진짜 제대도 알고 있다는 증거다. 어설프게 아는 사람은 쉽게 설명하지 못한다. 그런데 일부러 어렵게 쓰면서(= 잘 모르는 거 티내면서), 독자가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고 거들먹거리는 작자들이 있다. 작가라고 불러주기도 싫다…
앞서 말했듯이 ‘통’해야 한다. 말이든 글이든 통하지 않으면 아무 쓸모가 없다. 혼자만 간직하고 싶으면 일기장에 쓰면 될 일이다. 굳이 글이나 말을 세상에 내놓는 것은 이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읽는 사람, 즉 독자를 고려해야 한다. 그래서 글은 쉽게 읽혀야 한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어렵게 쓰여야 한다. 어찌 보면 글이란 글쓰기를 좋아하는 덕후들의 결과물인 셈이다. 덕후라면 어쩔 수 없다. 더 쉽게, 이해할 때까지 집요하게 해야 한다.
참고 : 흔한 덕후와 일반인의 커뮤니케이션의 오류.jpg, 이토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