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잇값을 못하는 사람들…

속된 말로 나잇값을 못 하는 사람들에게 X구멍으로 나이를 먹었다는 표현을 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표현이 과격하지 않다. 장유유서와 연공서열이 아직도 주류 문화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지구가 태양을 돈 횟수를 벼슬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아래 사례도 그런 경우이다.

 

 

노약자석은 나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일반적인 사람보다 거동이 불편한 사람이 앉는 자리이다. (본래 명칭도 ‘교통약자석’이다) 과연 몇 살부터 늙(老)었다는 기준을 적용할 수 있을까? 이것은 매우 상대적인 개념이다.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는 두 분 다 60대 중반이시지만 지하철을 타실 때 누가 양보하면 괜찮다고 아직 그렇게 늙지 않았다고 말씀하신다. 실제로 아버지는 50대 후반부터 PT를 받으시고 회춘하셔서 나보다 플랭크를 더 오래 하신다…

 

사실 이것은 단순히 나이 많은 누군가의 무례와 무지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는 그 어떤 나라보다 초고령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어서 조금만 지나도 노인이 많은 나라가 될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의 나이에 대한 대우를 터무니없이 주장하는 문화가 활개 친다면 그것이야말로 살아있는 지옥이 될 것이다.

 

내가 20살 때 40대를 보면서 엄청 늙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조만간 마흔 살이 된다. 하지만 나 자신을 전혀 늙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직도 할 수 있는 게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항문으로 나이 먹은 꼰대 의식이 있었는데, 요즘은 젊은 친구들과 많이 어울리면서 그들의 능력과 논리를 보고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우리 회사는 이사가 두 명 있는데, 한 명은 내 친구이고 다른 한 명은 6살 어린 친구이다. 그리고 차기 대표이사는 6살 어린 친구가 될 것이다. 나도 내 친구도 불만이 없다. 당연히 능력이 우선 되어야 하고 그 친구가 리더가 되는 게 공동체를 위해서 최선이기 때문이다.

 

저런 뉴스가 나오면 나이 많은 사람들을 향한 질타가 쏟아져 나온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나라 전반에 퍼져있는 고질적인 병폐이다. 대학만 가도 군기를 잡고 어디를 먼저 들어가면 선후배가 생겨서 자연스럽게 꼰대질이 피어난다. 우리는 저런 뉴스를 보면서 단순히 혀만 ‘쯧쯧’ 찰 것이 아니라 우리 몸 깊숙이 박혀 있는 꼰대 DNA 발현을 억제하기 위한 의식적 반성이 필요하다. 나부터 무의식적으로 무식한 나이 갑질을 한 것은 아닌가 깊게 반성해 본다.

 

참고 : 노약자석은 ‘no약자석?’, 에펨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