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에게 털려본 적 있는가? 어느 날 거리를 걷고 있는데 11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 아이가 다가왔다. 아이는 자기소개를 하더니 토요일에 열릴 보이스카우트 행사 입장권을 판매 중이라며 5천 원짜리 티켓을 사줄 수 있겠냐고 물었다. 토요일 저녁에 초등학생 아이들의 재롱잔치를 보는 것만큼 지루한 일은 없다고 생각했기에 나는 바로 거절했다. 그러자 아이가 물었다. “티켓을 사주실 수 없다면 사탕 몇 개만 사주시겠어요? 하나에 천 원밖에 안 해요.” 그래서 사탕 2개를 사주고 나니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사탕을 싫어하고, 돈을 좋아한다. 결정적으로 이 사탕은 아무리 쳐줘도 300원이면 충분해 보인다. 고개를 들어 아이를 바라보니 천 원짜리 두 장을 팔랑거리며 뛰어가고 있었다. 그제야 나는 초등학생에게 털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위 이야기는 책 <설득의 심리학>에 나오는 일화를 우리 상황에 맞게 각색한 것이다. 저자는 위 사례를 이야기하며 설득을 성공시키는 가장 강력한 비결에 관해 설명한다. 실제로 그 효과가 실험적으로 증명된 아주 효과적인 방법이다.
초등학생에게 털린 이유는 ‘상호성의 법칙’이 작동했기 때문이다. 인간은 상대방의 호의에 보답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는데 이를 ‘상호성의 법칙’이라고 한다. 그런데 상호성의 법칙은 호의뿐만이 아니라 양보에도 적용된다. 그래서 아이가 5천 원짜리 상품 대신 천 원짜리 상품으로 양보하자, 상대도 한 발 물러나 원하지도 않는 사탕을 구매한 것이다. 상대의 양보에 양보로 보답한 셈이다.
이러한 심리를 이용한 설득 전략이 바로 ‘거절 후 양보’ 전략이다. 만약 당신이 누군가에게 어떤 부탁을 하고 싶다고 가정해보자. 승낙 확률을 높이고 싶다면 틀림없이 거절할 만한 무리한 부탁을 먼저 하면 된다. 그래서 거절당하면 그제야 원래 요청하고 싶었던 작은 부탁을 내밀면 된다. 상대는 두 번째 내놓은 작은 부탁을 자신에 대한 양보로 인식하고, 그에 따라 두 번째 부탁을 들어줄 수밖에 없다.
‘거절 후 양보’ 전략은 설득 확률을 높여주기도 하지만,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장점도 있다. ‘거절 후 양보’ 전략에 당한 사람들은 설득 전략에 넘어갔음에도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추가 부탁을 들어줄 확률도 높아졌다. 왜 그럴까? 첫째, 양보라는 합의 사항에 책임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둘째, 실질적인 이해득실을 따지기 전에 합의를 끌어냈다는 사실에 만족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거절 후 양보’는 승낙 확률도 높이고, 기분도 좋게 해주는 최고의 설득 전략인 셈이다.
이를 어떻게 현실에 적용할 수 있을까? 만약 당신이 누군가와 함께 밥을 먹고 싶다면, 밥을 먹자고 제안하면 안 된다. 술을 먹자고 제안해야 한다. 친한 사이가 아니라면 술을 먹자는 제안은 아무래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상대방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대부분 술을 잘 못 먹는다고 할 것이다) 제안을 거절할 것이다. 그다음에 술 대신 밥을 먹자고 제안해보자. 당신이 술 대신 밥으로 한발 물러섰기 때문에 상대도 승낙이라는 양보로 나오게 된다. 이마저도 거절한다면 저녁 대신 점심을 먹자고 해보자. 핵심은 먼저 거절당하고 상대가 덜 부담스럽게 느끼는 제안을 다시 건네는 것이다. (점심마저 까이면 그냥 포기하자. 세상에는 다른 매력적인 이성이 얼마든지 있다. 구질구질하게 차 한잔하자는 제안까지 가지는 말자…)
단, ‘거절 후 양보’ 전략을 사용할 때도 주의할 점이 있다. 처음에 제시하는 요구가 터무니없으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타날 수도 있다. 거래에 성실하지 못하다고 보이거나, 한발 물러서는 게 진짜 양보처럼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처음 보자마자 대뜸 100만 원짜리 시계를 사달라고 하면 다음 제안이 500원 사탕이 되어도 상대는 무조건 거절할 것이다. 만나고 10분 만에 첫눈에 반했다며 사귀자고 말하면, 이후에 차 한잔하자는 제안도 먹히지 않는다. (이런 제안이 통하는 건 영화 속 일일 뿐이다… 나만 그런가??) 상호성의 법칙에서 핵심은 상대방이 마음의 빚을 지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를 끌어낼 수 있는 적당히 과장된 첫 제안을 던지는 것이 ‘거절 후 양보’ 전략을 성공시키는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참고 <설득의 심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