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상사는 악마밖에 없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절대 아니다. 좋은 상사보다는 나쁜 상사가 많은 것이 서글픈 현실이지만, 그래도 분명히 귀감이 되고 배울 점이 많은 상사도 많다. 조금 “자뻑”스러워서 내 입으로 말하기 그렇지만, 다른 입이 말해주지 않을 테니 내 회사 시절 얘기를 조금 해보겠다.

 

회사에서 연말에 익명으로 크리스마스 카드를 주고받는 행사를 했다. 보통은 훈훈하게 사수가 부사수에게 또 반대로 부사수가 사수에게 덕담과 감사의 마음을 전달하는 분위기였는데, 당시 내 부사수가 아니라 이전 연도에 부사수였던 친구들도 전부 나한테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내서 속으로는 기분이 엄청 좋았지만, 실제 상사들이 편지를 못 받아서 머쓱한 상황이 벌어졌다.

 

 

 

 

나는 왜 부사수들과 관계가 좋았을까? 핵심은 딱 3가지로 정리된다.

 

1. 할 일 다 했으면 무조건 묻지도 말고 알아서 퇴근

 

나는 언제나 새로운 부사수와 만나면 나랑 일하면서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고과를 원하는지 아니면 여유로운 회사생활을 원하는지. 당연히 여유롭게 회사생활 하면서 상위 고과를 받을 수는 없다. 그래서 여유를 선택한 부사수들은 문제가 없으면 거의 다 칼퇴를 했다. 칼퇴 정도가 아니라 자율 출근제에 탄력 근무제까지 시행되어 금요일에는 2시에 퇴근하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회사에서 회식비가 나오는 업무적 회식 외에는 퇴근 후 개인 시간을 보장해주기 위해 부장님들의 사적인 회식 자리도 필사적으로 막아주었다.

 

2. 성장하게 도와주었다

 

나는 박사를 마치고 회사에 책임직으로 입사했기 때문에 논문이나 특허 관련해서는 당연히 일반 선임, 사원보다 훨씬 잘 알았다. 그래서 선임, 사원급 친구들에게 특허 쓰는 요령도 알려주고 논문 쓰는 것도 많이 도와줬다. (사실상 이게 비업무인데 상무 실적이라서 무조건 누군가는 해야 한다. 또 잘하면 실적으로 반영되어 좋은 고과를 받는 데 유리하다. 그런데 학부만 마치고 오면 논문을, 특히 영어로 쓰는 게 여간 고역이 아니다. 내가 정말 많이 도와줬다.) 그리고 독서 토론도 하고 점심시간에 운동도 같이했다. 다이어트 워(war)를 할 때는 개인 돈으로 상금도 지원해주고 영어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 공부하기도 했다. 그리고 내가 읽은 책이 많았기 때문에 부사수뿐만 아니라 상사들에게도 해줄 얘기가 많았다.

 

3. 고과를 잘 챙겨줬다.

 

부사수가 고과를 받는 것은 사수가 얼마나 잘하느냐에 달려있다. 당시 우리 부서에 고과 평균을 못 받아서 대리 진급이 일 년 누락될 것 같은 친구가 내 부사수로 배정되었다. 나는 이 친구에게 B 고과를 받게 해주려고 진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다. 혹시 못 받을 것을 대비해서 어학 점수로 고과를 채우기 위해 부장님과 쇼부를 봐서 칼퇴 후 중국어 학원에 보내기까지 했다. 결국 이 친구는 상위 고과를 받았고 심지어 중국어 실력까지 늘었다.

 

나는 퇴사한 지 5년도 넘었지만, 예전 직장동료 모두와 아직도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 결국, 관계는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나는 어린 나이에 바로 과장으로 입사했다. 당시 우리 부서에 나보다 한 살 많은 두 명의 형이 있었는데, 한 명은 사원이고 다른 한 명은 대리 1년차였다. 그리고 나보다 호봉으로 1년 높은 선배는 5살이 많았다. 그래서 맨 처음에는 좋지 않은 시선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우선 실력으로 문제가 없음을 증명하고, 비업무같이 귀찮은 부분도 먼저 나서서 열심히 하니 금방 모두와 친해질 수 있었다. 어디를 가도 나쁜 사람은 있다. 심지어 가족 중에도 있을지 모른다. 결국에는 내가 어떻게 하기 나름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관계는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도저히 답이 없으면 끊어내는 것도 만드는 것의 일부분임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