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대 합격한 70대 할아버지, 입학을 포기한 사연

도대체 공부는 언제까지 해야하는 걸까? 어린 시절에는 이런 고민을 참 많이 했다. 아마도 주변에서 강압적으로 공부를 시켜서 더 그랬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명문대만 가면 공부하는 삶이 끝날 줄 알았다. 어리석은 착각이었다. 대학가서 공부 안하고 펑펑 놀면서 20대 절반을 날려먹었다. 결국, 20대 끝자락에 다시 공부에 돌입하느라 꽤 고생했었다. 끔찍한 경험이었다. 군대 다시 가는 꿈은 안 꾸는데, 졸업 못한다는 꿈은 종종 꿀 정도다. (누가 이런 게 PTSD의 일종이라고 했는데…)

 

나이가 더 들고, 이제 직장에 다니다보니 앞선 고민이 참 쓸데 없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제는 공부하고 싶어도 시간이 없어서 못할 때도 있다. 한해 한해 지날수록 체력도 딸린다. ‘공부해야지, 공부해야 하는데, 공부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도대체 공부는 언제까지 해야하는 걸까? 답은 명확하다. 평생 해야한다. 공부하지 않고 안주하면 뒤쳐질 수밖에 없다. 그런 게 아니더라도 공부는 그 자체로 즐겁기도 하다.

 

하지만 정답은 알아도 의지가 없는 경우가 많다. 세상의 진리라는 것들이 대개 그렇다. 3살짜리가 알 정도로 단순한데, 그 단순한 걸 80살 노인도 해내기 힘들다. 그런데 한 커뮤니티에서 늦은 나이에 공부에 도전한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보게 되었다. 더 놀라운 것은 이 할아버지가 공부 끝에 한의대에 붙었는데, 합격을 포기했다는 것이었다.

 

 

도대체 70대 할아버지가 왜 수능 공부를 했을까? 한창 젊은 아이들도 어려워하는 공부를 따라갈 수 있었을까? 강사가 궁금해서 할아버지에게 물어봤더니 이렇게 답하셨다고 한다. “나는 공부하는 게 목적이오. 공부해서 한의대에 합격하고 싶습니다.” 이 말을 들은 주변 어린 학생들이 킥킥댔다고 한다. 우등생도 가기 힘든 한의대를 할아버지가 도전하는 게 어림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모두가 불신하는 와중에 할아버지는 일년 반동안 강의를 들었다. 인기 강사의 수업을 앞자리에서 듣기 위해 새벽같이 학원에 와 줄을 섯다고 한다. 일년 반 동안 늘 맨 앞자리에 앉으셨다고 한다. 처음에는 알파벳도 제대로 몰랐는데, 나중에는 질문에도 대답할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강사는 “그 할아버지는 단 한번도 ‘힘들다’는 얘기를 하신 적이 없다.”라는 말도 덧붙였다.

수능이 끝난 어느 추운 겨울날, 할아버지가 학원 교무실로 찾아왔다. 검정 비닐봉지를 꼭 안고 오셨는데, 새벽에 시장에 가서 직접 빻은 쌀가루로 빚은 인절미였다고 한다. 혹시나 인절미가 식을까봐 품 안에 안고 오신 거였다. 할아버지는 떡을 건네면서 “선생님, 됐습니다.”라고 합격 소식을 전했다. (강사가 가르쳤던 외국어 영역에서는 80점 만점을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뒤에 충격적인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런데 저는 등록하지 않겠습니다.”

 

아니, 어렵게 공부해서 이룬 꿈인데, 왜 포기하려는 걸까? 할아버지는 이어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한국전쟁을 겪은 세대지요. 아무것도 없이 힘들게 살며 자식들을 키워냈습니다. 자식들이 다 크고 이제 조금 여유가 생겨서, 제가 어렸을 때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할 수 있었어요. 공부가 하고 싶었던 것이지, 열심이 공부해 한의대에 붙는 게 목표였지, 일흔이 넘은 내가 한의대에 가봤자 무엇하겠습니까. 내가 지금 여기서 학교에 등록하지 않으면 간절히 입학을 기다리는 대기 번호 1번 학생이 대신 들어갈 것 아닙니까. 그 젊은 청년이 나 대신 얼마나 멋진 한의사가 되어주겠습니까. 나는 여기서 포기하는 게 맞습니다.”

 

이 얘기를 듣고 참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우선 할아버지는 아무런 지식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해 1년 반만에 만점을 받으셨다. 평소에 조금만 어려워보여도 쉽사리 포기하곤 했던 내 모습을 돌아볼 수밖에 없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합격을 포기한 사유에 가슴이 뭉클했다. 아마 당시에는 한의대가 가장 붙기 어려운 학과 중 하나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그걸 포기하셨다. 한의대 진학이 공부의 목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의 목표는 공부 그 자체였다. 배우는 것에서 기쁨을 찾으셨고, 그걸 이뤘으니 굳이 한의대에 진학할 필요가 없으셨던 셈이다. 아마 수능이 끝난 뒤에는 또 다른 공부 거리를 찾아 계속 배움을 이어가셨을 것 같다.

 

나는 이분과 비교해서 부족한 게 있었는지, 이토록 배움을 목말라했는지, 그리고 그 목마름을 행동으로 옮기기 위해 치열하게 살았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절로 내 자신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동시에 나도 할 수 있다는 동기가 샘솟았다. 나를 포함한 수많은 청년들에게 큰 깨달음과 강력한 동기를 심어주신 것만으로도, 할아버지의 수능 도전은 실로 위대한 도전이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참고 : 이토랜드, 한의대 합격하고 입학포기한 70대 할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