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주변에서 돈 욕심이 없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보통은 이 말을 좋은 뜻으로 생각한다. 눈앞의 작은 이익에 휘둘리거나 돈 몇 푼 벌겠다고 주변을 배신할 사람은 아니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또는 돈보다 확실한 자신만의 꿈이 있다는 뜻으로 통하기도 한다. 아마 내가 돈 한 푼 못 버는 아마추어 시절부터 글쓰기에 진지한 자세로 임하는 걸 보고 주변에서 이런 말을 해주었던 것 같다. (그때의 노력 덕분에 지금은 회사에서 돈 받고 글 쓰는 일을 하고 있다)
하지만 돈 욕심이 없다는 말이 마냥 좋은 소리라고 보기는 어렵다.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살고 있고, 그런 만큼 돈이 많은 것을 결정하고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부와 능력은 별개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사실 조금만 살펴보면 돈이 곧 능력이 되는 순간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 특히 시간을 절약하려면 돈이 많이 든다. 예를 들어 기사님이 모는 고급차를 타고 출근하는 부자를 생각해보자. 평범한 사람이 지옥철에서 부대끼거나 교통지옥 속에서 핸들만 붙들고 있는 동안 기사님을 대동한 부자는 뒷좌석에 앉아 다양한 일을 할 수 있다. 책을 볼 수도 있고, 노트북으로 업무를 볼 수도 있다. 다른 사람들이 출퇴근에 1~2시간을 허비하는 동안 돈이 많은 사람은 꿈을 위해 매진하거나, 더 부가가치가 높은 일을 하는 셈이다. 그래서 나도 돈을 열심히 벌어야겠다고 생각한다. 설령 욕심은 없어도 (없을리가…) 전략적으로 그게 더 유리하다는 사실을 머리로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자가 되는 것 이전에 돈과 관련하여 다짐한 것이 있다. 바로 가난하게 살지 않겠다는 것이다. 사실 큰 부자가 되는 것은 어렵지만(실력과 운이 모두 있어야 한다), 가난한 자가 되지 않는 것은 육체와 정신이 건강하고 성실한 태도만 갖춘다면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매사에 열심히 살려고 노력한다. 가난하면 포기해야 하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그중에서 가장 치명적인 것이 무엇일까? 한 커뮤니티에 올라온 게시물에서 내 생각을 대변하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가난하면 그만큼 다양한 경험을 포기하게 된다. 이게 어릴 때는 큰 문제로 다가오지 않지만, 나이가 들면서 누적되면 의외의 타격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물론 고급 식당 안 가봤다고, 영화관 못 가봤다고 생존에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특정 장소에서 요구하는 격식과 매너가 존재하는 법이고, 그걸 몰랐다가 중요한 순간에 일을 그르칠 수도 있기 때문에, 관심이 없더라도 한 번쯤 경험해보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가난하면 그런 기회를 놓치게 된다.
또한 문화 활동에 많은 제약을 받는다. 우리집이 위 게시물의 작성자처럼 가난하진 않아서 영화는 실컷 볼 수 있었다. 그렇다고 아주 여유로운 건 아니다 보니 다른 문화 활동을 경험해 볼 기회가 많지 않았다. 특히 뮤지컬이나 오페라 같은 경우 비용이 만만치 않아서 30대가 다 되도록 관람하지 못했다. 나중에서야 몇 편의 뮤지컬을 관람할 수 있었고, 그런 뒤에야 관련 소양을 쌓을 수 있었다. 조금 더 일찍 접했다면 그만큼 삶이 풍요로웠을 거라 생각한다. 어쩌면 내 꿈인 글쓰기에 많은 도움을 주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마 많은 도움을 주었을 것 같다)
그리고 종종 부끄럽다. 물론 이것은 자격지심에 불과하다. 마음 쓰지 않는 게 최선이다. 모르면 모른다고 당당히 말해도 되고, 그걸 가지고 비웃는 사람이야말로 인성이 글러 먹은 게 맞다. 하지만 그런 상황을 자주 마주하다 보면 자존감이 떨어지기도 한다. 괜히 의기소침하게 지내다 보면 저절로 힘이 빠진다. 그런 기분을 몇 번 느끼다 보면 절대 가난하게 살지 않겠다는 마음이 든다.
마지막으로 신경림 시인의 <가난한 사랑 노래>라는 시를 소개하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아마 가난해서 포기하는 것 중에 가장 쓰라린 것은 사랑이 아닐까 싶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도 가난하게 살고 싶지 않다. 열심히 살아서 돈 많이 벌고 싶다. 아마 많은 직장인들이 같은 심정으로 오늘도 묵묵히 출근했을 것 같다.
<가난한 사랑 노래>, 신경림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 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 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서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 소리도 그려 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참고
1) 흙수저가 진짜 서러울때.ssul, 에펨코리아
2) 시 <가난한 사랑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