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을 지배하는 존재가 누구인가? 운명을 지배하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의식을 갖추고 선택하는 주체인가? 아니면 내면에 자리 잡은 장치로 작동하는 기계에 가까운 존재인가?
시간과 장소에 따라 인류는 이 질문에 다른 방식의 대답을 내놓았다. 누군가는 인간은 신의 권능으로 부여받은 영혼에 의해 생명력을 얻은 존재라고 주장했다. 혹은 신에 가까운 지적 능력에 영감을 받아서, 혹은 뇌 속을 돌아다니는 신경화학 물질에서 힘을 얻어 생명을 얻은 존재라고도 말했다. 이 모든 주장은 하나의 질문에서 시작된다.
‘자신의 운명을 통제할 수 있느냐?’
이 질문이 등장하는 이유는 인간이 의식에 대해 고민할 수 있을 정도로 의식이 발달한 동물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문화에서 운명은 해결하지 못한 숙제였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신조차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믿었고, 유일신 종교가 지배하는 시대에서 신은 인간의 운명을 결정하는 전지전능한 존재였다. 산업사회 이후 현대인 대다수는 자기 자신만이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여전히 누군가를 두고 위대한 인물이 될 운명을 타고났다거나, 누구와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났다는 식으로 말하기도 하지만 현대인에게 운명은 비유적 표현에 불과하다.
상당수의 사람에게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국가, 계급, 인종 같은 제약이 존재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제약 안에서 인간은 자유롭게 운명을 선택할 수 있다고 믿으며 살아간다. 아침 식사로 무엇을 먹을 것인지부터 어떤 친구를 만나고, 어떤 의견을 가질 것인지까지 인간은 이성적인 의사 결정 과정을 바탕으로 선택을 내릴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선택들이 쌓여 점점 행동 방식과 습관으로, 그리고 결국에는 삶을 구성하는 경험의 집합체로 진화한다.
우리는 기억, 언어, 이야기를 이용해서 삶을 합리화하고, 또한 삶을 이해하고 통제할 수 있다고 느껴지는 존재로 자신을 다듬어 놓는다. 하지만 의식을 통제한다고 생각하며 살아가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이것이 간단한 문제가 아님을 모두가 알고 있다. 정신은 생각보다 거칠고 복잡하기 때문이다. 의식을 갖고 선택하는 순간은 인생 전체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우리는 판단을 내릴 때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 일상적인 결정의 상당 부분은 그것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일어난다.
만약 모든 결정을 인식하고, 상황을 평가해야 한다면 직장에 나가 책상에 앉아 있어야 할 시간까지 현관문도 나서지 못할 것이다. 사람들 대부분은 강력한 무의식의 힘뿐만 아니라 외부 환경도 어느 정도까지는 자신의 삶을 빚어내고 결정한다는 사실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예전처럼 운명을 심각하게 믿지 않지만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운이 삶의 이야기에서 어느 정도 역할을 했음을 믿는다. 시간과 장소가 우연히 맞아떨어져서 미래의 배우자를 만나거나, 꿈에 그리던 직장을 구하기도 한다.
우연한 행운 덕분에 풀리지 않던 고민을 해결해주는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그리고 인생을 바꿀 소중한 기회를 운명의 장난 때문에 놓치기도 한다. 우리의 의식과 무의식의 핵심에는 뇌가 자리 잡고 있다. 뇌가 없었다면 우리에게는 인식도, 기억도, 정신도 없었을 것이다. 현대 신경과학은 인간의 운명을 물리적 자아 깊숙한 곳, 뇌의 회로와 유전자 속에 묻혀 있다고 말한다. 뇌는 수십억 개의 세포가 수조 개의 연결로 뒤얽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복잡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철학자와 심리학자, 인공지능 연구자, 정신의학자, 신경과학자 등의 전문가들은 이러한 뇌의 복잡한 활동을 잘 이해하려면 다각적으로 접근하는 것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인간의 행동은 어떤 것이든 원인이 다양하다.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가지 요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점심 메뉴를 고르는 간단한 일도 엄청나게 많은 결정이 필요하다. 뇌의 무게는 전체의 2퍼센트 정도에 불과하지만 하루 칼로리 섭취량의 20퍼센트 정도를 소비한다. 굶주린 뇌는 사람에게 고칼로리, 고당도, 고염 음식을 선택하라고 하지만,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평생에 걸쳐 생긴 식습관이나 기호는 물론, 개인이 의식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능력도 함께 작용한다. 음식을 고르는 일만 해도 의사결정 과정은 복잡하다. 게다가 대체로 무의식으로 이루어진다. 누구와 결혼할 것인지, 신은 존재하는지 같은 문제로 오면 인지과정이 기하급수적으로 복잡해진다.
이런 인지과정은 훨씬 긴 시간으로 이루어지고 훨씬 많은 뇌 영역이 가동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간단한 정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행동, 결정, 혹은 인생의 결과가 유전자에 의해 운명 지워져 있거나 태어날 때부터 뇌에 새겨져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의식적 통제 아래 놓여 있다고 생각되는 부분들도 우리가 어린 시절을 거치면서 강화된 선천적 요인에 의해 깊숙한 수준에서 형성된다. 성격, 자기 자신과 세상의 작동 방식에 대한 믿음, 위기에서 반응하는 방식, 사랑, 위험, 부모 역할, 사후세계에 대한 태도 등 추상적인 의견과 성격적 특성들은 어느 것이든 뇌가 세상으로부터 받은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에 의해 깊숙한 곳에서 빚어진다.
아는 것이 곧 힘이다. 뇌, 몸, 환경이 함께 작동하는 방식을 잘 이해할수록 실제로 통제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 결정을 내릴 때 더 나은 위치에 설 수 있게 될 것이다.
참고: 《운명의 과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