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평소에 사람을 섣불리 배경으로 판단하지 말자는 생각을 뚜렷이 가지고 있다. 그러한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고등학교 때부터이다. 절친한 친구들은 이른바 명문대에서 전문대까지 꽤 다양하게 입학했지만, 그 친구들과 일을 추진할 때 그들의 지적인 차이를 별로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한 각자 강점이 다 달랐기 때문에 언론에서 평가하는 대학순위의 편차는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과 꽤 괴리가 있었다. 그리고 고등학교 졸업 후에도 다양한 배경의 선후배들과 오랫동안 여러 공동체에서 많은 프로젝트를 하면서도 그들의 배경과 실적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별로 없다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몇 년전에 TV를 보고 나 역시 편견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느꼈다. 모유산균음료 광고에 노벨상을 받은 인물이 등장했다. 꽤 저명한 의사 처럼 생긴 그를 보고 머릿 속에 미국의 명문대학을 그렸던 것 같다. 후에 우연히 헬리코박터와 관련된 글을 보고 그 광고에 나온 인물이 배리 마셜(Barry J. Marshall)이라는 것과 배경까지 알게 되었다.

‘엉?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 대학 출신에 퍼스 병원의 생리학자?’

세계대학평가 기준으로 호주에서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 대학보다 앞서는 학교는 무려 6개나 된다. 그리고 퍼스병원은 세계 수준의 의료센터도 아니었다.

‘아, 나도 모르게 그 사람에 대해 고정된 이미지를 만들어 놓았구나’라고 생각하며, 역시 배경이나 출신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를 새삼 깨달았다. 아니나 다를까, 헬리코박터균으로 노벨상을 받은 배리 마셜은 동료 연구자인 로빈 워런과 함께 배경 때문에 엄청난 곤욕을 치렀다고 한다.

당시 의학계에서 위궤양의 발생원인은 수수께끼에 싸여 있었다. 그렇지만 많은 이들이궤양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그 원인을 명백히 밝히는 일은 인류의 건강증진에 매우 중요한 사안이었다. 그런데 1980년대 초반 오스트레일리아 퍼스 병원 출신의 두 생리학자가 헬리코박터가 위 궤양의 중요한 원인이라고 발표했다. 이 발견은 정말 노벨상을 받을 만한 엄청난 것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놀라운 발견은 세계 의학계에서 받아 들여지지 않았고 심지어 의학 잡지들마저 외면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그 이유는 이들의 출신 때문이다. 이들은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대학 출신도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세계 의학계에서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호주의 퍼스라는 병원에서 노벨상급의 연구가 나올 리는 더더욱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게다가 배리 마셜은 인턴이었다!

그러다 보니 연구를 더 깊이 할 수 있는 여건도 마련되지 않았고 심지어 임상연구를 할환자도 없었다. 그때 그는 결단을 내리고 스스로 실험 대상이 되었다. 헬리코박터를 마시고 증상을 살펴보았더니 전형적인 위궤양이 발생했다. 그리고 박테리아를 제거하는 항생제 등을 마시고 치료 했다.이후 이들의 행보에 몇 몇 학자들이 관심을 보이게 되고 후속 연구로 이들의 연구가 맞았다는 증거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드디어 배리 마셜은 2005년에 노벨 의학상을 받았다.

혹시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언제나 예외는 있고 이번 경우가 바로 그 예외라고. 그렇다면 최근 노벨 의학상을 수상한 미국인 연구자 25명이 학사학위를 받은 대학의 목록을 살펴보자.

안티오크칼리지, 브라운대학교, UC버클리, 워싱턴버클리, 컬럼비아대학교, 케이스기술대학교, 캘리포니아공과대학교, 하버드대학교, 해밀턴대학교,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 드포대학교, 펜실베이니아대학교, 미네소타대학교, 노 틀담대학교, 존스홉킨스대학교, 예일대학교, 켄터키유니온대학교, 일리노이대학교, 텍사스대학교, 홀리크로스대학교, 암허스트대학교, 게티스버그대학교, 헌터대학교

물론 세계적 명성의 대학교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대학교도 많다. 특히 몇몇은 대학의 세계적인 명성이 노벨상과는 상관성이 별로 없음을 느끼게 한다.

위는 한 트위터 유저가 올린 글이다. 글쓴이는 조카가 ‘파란색=남자색’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편견에 사로잡힌 것은 자기 자신이었다. 조카는 뿔이 달렸다는 사실을 관찰했고, 그에 따라 사슴이 수컷이라는 결론을 내놓았다. (마지막 통렬한 반성이 인상적이다)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보기만 한다면, 외부에 의해, 혹은 스스로 만든 편견에 휘둘려 진짜를 보지 못할 수 있다. 그래서 인물을 평가할 때는 배경이나 출신에 대한 사회적 통념은 쓰레기통에 처넣고 편견 없이 유심히 관찰해야 한다. 호주의 일개 대학을 갓 졸업하고 들어보지도 못한 퍼스 병원의 인턴이라 할지라도 노벨상급의 연구를 할 수 있음을 바라보아야 한다.

셜록 홈스는 왓슨이 사건현장을 보고는 엉뚱한 분석을 내놓자 이렇게 말했다.

“자네는 보기만 할 뿐 관찰하지는 않는군.”

노란색 배경 속에 있는 황금은 눈에 잘 보일 리가 없다. 배경을 없애고 관찰할 때에야 비로소 황금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그 황금은 당신의 삶을 분명히 빛내줄 것이다.

참고 <조카와 사슴>, 웃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