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어릴 때 유모차를 밀고 다니면 종종 우리를 가로막는 거대한 장애물을 마주친다. 바로 계단이다. 계단을 마주칠 때마다 나는 쿵푸팬더의 이 명대사가 생각난다.
“My old enemy… stairs…”
진지한 상황에서 주인공이 이 대사를 하던 그 장면이 나의 현실과 교차 되면서 웃기기도 슬프기도 했던 것 같다. 내가 한참 유모차를 밀고 다니던 시절 5~10년 전 그 때는 지금처럼 엘레베이터가 많지는 않았다. 혼자 유모차를 들 수 있었지만 큰 아이 아래 동생들이 생기고 형이 계단을 혼자 못 올라갈 때는 그야말로 이런 난관이 따로 없었다.
얼른 유모차를 계단위로 올려다 놓고 고정시켜 놓은 뒤, 뛰어 내려와 아이를 안고 손을 잡고 급하게 올라가기도 하고 어느 날은 유모차를 들고 계단을 올라가다가 발을 헛디뎌서 그대로 넘어졌는데, 유모차를 떨어뜨리면 안된다는 엄마 본능에 온 몸으로 충격을 받아냈다. 내 다리에는 온통 피멍이 들고 일어설 수가 없어서 바닥에 한참 앉아 있었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주위에 아무도 없었다) 아이는 잠이 깨지 않고 곤하게 자고 있었던 기억도 난다.
그러다 아이가 셋이 되자 내 힘으로는 도저히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부터 적극적으로 주위 사람의 도움을 받기 시작했다. 멀리서 계단이 보이기 시작하면 내 눈은 건장한 청년들을 탐색하기 시작한다. (청년이 없으면 누구라도 괜찮다)
“죄송한데 유모차 좀 같이 들어주실래요?”
내가 도움을 요청했을 때 거절했던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그러자 그렇게 어려웠던 계단 오르기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여기서 내가 느낀 인생의 교훈은, 누구도 순수하게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 당장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무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르는 사람이라도 도움이 필요해 보이면, ‘내가 도와줄께요. 당신을 돕고 싶어요’라는 뜻으로 선뜻 손을 내밉니다. 도움을 받는 쪽은 고맙게 받아들입니다. 무척 의미심장한 광경이죠.” – <움직임의 힘>, p. 180
책 <신뢰의 법칙>에서는 포유류에서 발견되는 유주초 미주신경이 우리가 서로 협력하도록 진화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다시 말해 포유류, 특히 인간은 싸우거나 달아나거나 죽은 척하는 전략만으로는 성공하기 힘든 다양한 상황에 직면하기 때문에 ‘살아남기 위해’ 협력하고 신뢰해야 한다’는 것이다.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도망치거나 공격하거나 기절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부모, 배우자, 친구들에게 의존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우리는 자신의 약점을 숨기거나 남의 일에 간섭하지 않으려는 성향을 보인다.
예를 들어 외국인이 길을 헤매는 것처럼 보일 때, 나는 영어를 못하니까 혹은 내 도움 없이도 잘 찾아갈 수 있을꺼야 혹은 나 아니어도 누군가 다른 사람이 도와주겠지 하는 반응으로 도움 주고자 하는 마음을 외면한다. 반대로 내가 도움이 필요할 때에는 사람들이 나의 요청을 거절할 지 모른다는 두려움 혹은 그 사람의 사정을 너무 헤아린 나머지 도움을 요청할 마음을 쉽게 접기도 한다.
하지만 기억하자. 우리는 협력하도록 태어났다는 사실을. 혼자 일할 때보다 협력할 때 더 쉽게 더 많이 성취할 수 있으며 돕는 행위를 통해 기쁨을 느낀다는 것을.
도움이 필요한 상대방이 보내는 신호에 민감하게 반응해보자. 그리고 도움이 필요할 때 용기를 내서 요청해 보자. 그러면 그동안 어려웠던 거대한 장애물이 마법처럼 사라지는 느낌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방법은 간단하다. 이렇게 말하기만 하면 된다.
“나 여기 있어요. 좀 도와주세요.”
“나 여기 있어요. 내가 도와줄게요!”
참고
1) <움직임의 힘>, 캘리 맥고니걸
2) <신뢰의 법칙>, 데이비드 데스테노
그림 출처: <쿵푸팬더 1> 드림웍스, <유모차 들고 계단으로…’불친절한’ 지하철역> JTBC
written by 김팀장/체인지그라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