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적인 결혼 조건’이 비현실적인 이유

2021년 10월 16일
admin

위는 근래 여러 커뮤니티에서 ‘현실적인 결혼 조건’이라는 제목으로 화제가 되었던 글이다. 일단 이 글에서 결혼에 조건을 따지느냐 마느냐 하는 이야기는 하지 않으려 한다. 단지 위 조건이 타당할 수 있는지 논리적으로만 따져보고자 한다.

일단 보이는 조건들이 모두 현실적이진 않아 보인다. 직장에 해당하는 조건은 상위 10%에 해당하고, 연봉도 마찬가지다. 거주지도 부동산 가격이 비싸 보이는 곳이 대부분이라 비현실적이다. 하지만 이런 조건들이 ‘재벌’ 같은 아웃라이어의 조건이 아닌 것도 사실이다. 찾아보면 이런 조건을 만족하는 35세 미만 남성도 있지 않을까?

그럼 위 조건들 중에서 현실적인 것만 따져보자. 키 175이상, 체중 75미만, 허리 32미만, 얼굴 평범, 나이 35미만, 적당히 가정적, 부모님과 별거, 부모님 노후 준비 되어 있음… 이런 조건만 따진다면 원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절대 만날 수 없다. 그런 사람을 만날 확률은 사실상 로또 맞을 확률과 비슷하다. 책 <인생은 실전이다>에는 그 이유에 관한 수학적 예시가 등장한다.

계산 결과 400만 명의 후보 중에서 겨우 26명, 확률로 따지면 0.00065%만 남았다. 왜 이런 결과가 나올까? 사건이 동시에 일어날 확률은 곱으로 계산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동전을 하나 던져서 앞 면이 나올 확률은 1/2이다. 그럼 두 개를 던져서 동시에 앞면이 나올 확률은? 1/4(= 1/2 x 1/2)이 된다. 이처럼 각각의 확률이 모두 곱해진다. 따라서 조건이 붙을 수록 확률은 지수적으로 감소하게 된다.

이것이 평범함의 함정이다. 처음의 결혼 조건을 말한 사람은 “큰 욕심 없어요. 평범한 조건이면 돼요.”라고 말하겠지만, 이를 수학적으로 따져보면 극악의 확률이 나온다. 평범함은 생각보다 어려운 조건이 된다.

<인생은 실전이다>에는 이 외에도 평범하게 사는 것이 어려운 이유를 3가지나 더 제시한다. 먼저 평범함이 어떤 것이란 목표지점이 없기 때문에 실체도 없다. 게다가 상대적인 개념이기 때문에 주변이 바뀌면 평범의 기준도 바뀐다. 즉, 평범함을 추구한다는 건 정해지지 않은 모호함을 추구하겠다는 말이 된다.

평균값과 중앙값의 차이도 고려해야 한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임금근로자의 2019년 월평균 소득은 309만 원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몇몇 고연봉자가 평균값을 끌어올렸기 때문에 나온 수치다. 그럼 진짜 보통 사람의 소득은 얼마일까? 이럴 때는 중앙값을 봐야 한다. 임금근로자의 2019년 중위 소득은 234만 원이었다. 즉, 평균의 범주에 들어가려면 생각보다 많은 돈을 벌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임계점의 문제도 있다. 어떤 사람이 70%의 노력으로 대기업에 들어가고, 다른 사람은 69%의 노력으로 대기업에 들어가지 못했다면, 입사에 실패한 사람은 1%만큼만 경제적 보상을 덜 받게 될까? 아니다. 훨씬 적게 버는 삶이 될 확률이 높다.

노력에는 임계점이 있다. 70%라는 임계점을 넘어서 합격이라는 결과를 내야 원하는 보상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평범하게 적당히 살겠다는 마인드로는 그 임계점을 넘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임계점이 어디인지 정확히 모르기 때문이다. 만약 임계점이 75%라면 어쩌겠는가? 만약 90%라면? 그걸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임계점을 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만 한다. 이처럼 인생은 ‘적당히’가 통하는 곳이 아니다.

만약 “평범한 노력으로 적당히 살고 싶어요.”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그 생각은 매우 위험하다고 말하고 싶다. 평범함은 모호하고 실제로 극악의 난이도를 가지고 있으며 우리가 최선을 다하지 않도록 방해할 수 있다. 현실은 최선을 다하고 살아도 겨우 평범한 보상에 머물 수도 있다.

평범한 인생이란 이토록 어려운 일이다.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면 현실과 생각의 간극을 좁히지 못하고 착각과 괴로움 속에서 살아야 한다. 잊지 말자. 인생은 실전이다. 평범이라는 환상이 아니라 최선이라는 현실을 살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