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 건강을 좌우하는 놀라운 사실 1가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드라마 명장면이 있다. 17년 전 방영된 KBS 드라마 <꽃보다 아름다워>에서 고두심이 연기한 ‘영자’는 어느 날 치매에 걸린다. 가족을 위해 한평생 헌신하며 살던 영자는 서서히 기억을 잃어갔고, 마음이 아프다며 큰딸 앞에서 빨간 약을 제 가슴에 덕지덕지 발랐다. 어린 시절 그 장면은 안타까운 마음에 앞서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 모두에게 상처가 되는 이 병을 낫게 하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알츠하이머병에 걸리면 완치가 어렵고 속도를 늦추는 정도에 그치는 치료법에 의존할 뿐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알츠하이머병이 진행되면 기분과 기억을 관장하는 해마가 확연하게 쪼그라든다. 현대인에게 친숙한 신경정신 질환과 뇌질환의 상당 부분은 건강한 시냅스의 소실과 얽혀 있다. 즉 뉴런이 떼로 죽어나가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불과 8~9년 전만 해도 과학계는 이러한 사실 외에는 발병의 원인을 명확하게 알지 못했다. 무엇 때문에 이런 사태가 머릿속에서 일어나고 있는지 오랜 세월 아무도 몰랐다는 이야기다.

 

2012년 분수령이 된 논문이 세상에 공개됐다. 이 논문으로 온 학계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알츠하이며병을 비롯해 우울증, 불안장애, 자폐증, 강박장애와 같이 뇌 질환과 정신 질환을 일으키는 문제 해결의 단초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이번에 읽은 <너무 놀라운 작은 뇌세포 이야기>가 바로 이와 관련해 의과학계의 판도를 뒤집은 연구와 사례들을 엮은 책이다.

 

 

 

 

합리적인 의심,
몸뚱이가 아프면 뇌도 아플까?

 

 

<너무 놀라운 작은 뇌세포 이야기>의 저자 도나 잭슨 나카자와는 과학 전문 기자이다. 그녀는 희귀한 자가면역질환에 걸려 무려 5년 동안 걷지 못했다. 몸속에 침입한 병원균에 맞서 싸워야 할 백혈구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멀쩡한 신경세포를 공격해 파괴하는 ‘길랑바레 증후군’을 앓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걷지 못하는 병뿐만 아니라 인지기능에도 문제가 있었다. 기억력이 뛰어나기로 유명했던 자신이 가족의 이름조차 기억을 못했다. 거기에 우울증까지 찾아왔다. 도나는 당시 누군가에게 자신의 뇌가 점령당하는 것만 같았다고 한다.

 

몸뚱이의 병이 머릿속의 물리적인 병까지 불러오는 건 아닐까? 그녀는 합리적인 의심이 들었고 면역학자들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면역학계에서는 신체 면역기능의 이상이 뇌 관련 질환, 정신 질환과 생물학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여길까?

 

2010년에 발표된 연구 17건을 종합 분석해 보니 전신의 거의 모든 장기에 염증이 생기는 루푸스가 우울증과 정신병의 발생 확률을 크게 높인다는 결론이 나왔다. 같은 해에 실시된 또 다른 연구에서는 박테리아 감염으로 입원한 적이 있는 사람들은 우울증, 양극성 장애, 기억력 저하를 겪을 확률이 62% 더 높다는, 비슷한 맥락의 결론을 내린 바 있다. 

 

이런 연구들이 속속 발표되었지만 여전히 과학계는 몸의 병과 머릿속 병이 연결되어 있다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뇌가 면역학적으로 특별한 장기라는 게 대세 이론이었기 때문이다. 책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인체에는 이런 몸통 면역계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고 과학계가 100년 넘게 믿어 온 장기가 딱 하나 있다. 바로 우리의 뇌다.” 이 오랜 믿음이 지배적이었던 이유는 면역세포를 비롯한 입자들이 몸통부에서 혈액을 타고 올라가다가, 뇌로는 넘어가지 못하는 점 때문이었다. 뇌까지 신체 면역계의 손길이 닿지 않는다는 건 몸뚱이에 병이 생긴다 해도 뇌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증거였다.

 

 

 

뇌 속 보안관,
보잘것없다 여겼던 작은 세포의 위력

 

 

대세론에 대적할 증거가 없던 그때 혜성처럼 나타난 이가 있었다. 뇌에도 백혈구 역할을 하는 작디작은 세포가 있음을 주장한 하버드 의대 신경학과 부교수인 베스 스티븐스 박사였다. 그녀는 ‘미세아교세포(microglia)’라는 뇌 속 작은 세포의 기능을 규명했다. 이 미세아교세포가 뇌 건강을 좌지우지해 왔다는 주장이었다. 미세아교세포가 수조 개의 시냅스를 보호 및 복원하고 번성시키면서 때로는 암살자의 역할도 서슴지 않는 무섭도록 전능한 존재라며 오랜 정설을 정면으로 부정했다.

 

이 충격적인 이론에 힘이 실린 건 그전부터 이루어진 연구 결과도 그렇지만, 때마침 첨단 과학기술이 개발되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신기술로 뇌의 고해상도 동영상 촬영이 가능해지면서 작디작은 세포를 집채만하게 확대해 볼 수 있었다. 그전까지 미세아교세포는 죽은 뉴런을 먹어치우는 뇌 속의 청소부 정도로 생각했지만, 이 세포가 실은 뇌만이 아니라 몸속 면역계까지 면밀히 정찰하는 보안관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된 데에는 기술의 역할도 컸다. 

 

 

 

 

인체의 허브,
미세아교세포를 공부하고 의미를 되새겨야 하는 이유

 

 

그동안 나는 몸 건강 따로 챙기고, 정신 건강 따로 챙겼다. 그래서 운동을 하면 몸이 단련되는 건 알겠는데, 정신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하라는 말이 잘 이해되지가 않았다. 와닿지 않으니 우울감이 들면 만사가 귀찮아 몸을 돌보지 않았다. 그렇게 과목별로 나눠 시험공부하듯 습득한 여러 지식들이 <너무 놀라운 작은 뇌세포 이야기>를 통해 하나로 연결되었다.

 

저자가 이 책을 내려고 마음먹은 건 과학계의 최신 정보와 실제 혜택을 받을 환자들이 얻는 정보의 간극을 좁히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우리가 최신 과학에 관심을 가지고 주시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 지식을 얻고 적용한 점은, 몸과 마음의 건강을 완전히 분리해 생각하면 안 된다는 사실이었다. 어느 한쪽만 보살펴서는 안 된다. 정신 건강을 위해서는 몸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하며,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라는 점을 알았다.

 

미세아교세포를 알게 된 후 주위를 둘러보니, 이 놀라운 세포의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여러 분야에 걸쳐 상당히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포트, 백업 중심의 일을 하는 사람들을 떠올려 보자. 크고 작은 혁신을 일으켜 변화를 만든 이들에게는 반드시 그런 사람들이 곁에 있다.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는 모든 일은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조용히 맡은 바 소임을 다하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게 아닐까. 아주 작은 일도 사명감을 가지고 충실히 이행하는 사람들이 인체를 관장하는 뇌, 그 속에서 정찰하는 미세아교세포와 많이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과학계에서 연구 실험을 방해하는 천덕꾸러기로 여겨졌던 작은 세포가 실은 뇌의 전반을 다루고 있었다는 점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본인의 능력을 과대 포장하면서 남들을 보잘것없다고 평가절하하고 업신여기면 큰코다친다. 과학서에서 세상사와 내 삶을 돌아보게 되다니, 참 여러모로 대단한 책이다.

 

 

 

참고: 도나 잭슨 나카자와, <너무 놀라운 작은 뇌세포 이야기>
이미지 출처: KBS 드라마_꽃보다 아름다워

 

*본 콘텐츠는 제작비를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