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이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 사람 앞에서는 이렇게 행동하고, 저 사람 앞에서는 저렇게 행동하는 일 말이다. 다중인격도 아니고, 왜 이렇게 일관성 없게 행동할까? 왜 그때는 바보 같이 행동했을까? 왜 나답게 행동하지 못했을까?
사실 우리는 나다운 게 뭔지 잘 모른다. 우리는 ‘나’라는 사람을 일관성 있는 하나의 덩어리로 정의하고 싶어 한다. MBTI 검사에 따라 16가지 유형 중 하나로 자신을 정의하고, 어떤 상황이든 누구와 함께 있든 전형적인 나의 모습이 존재하길 바란다.
하지만 일관적이고 싶은 우리의 바람과 달리, 우리에게는 여러 가지 모습이 존재한다. 직장에서는 말 잘 듣는 직원이지만, 부모님 말씀은 더럽게 안 듣는다. 일할 때는 딱딱한 말투를 쓰지만, 집에서는 장난기 넘치는 모습을 보인다. (덕분에 등짝이 남아나질 않는다)
우리는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너무 달라서 이질감이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혼란스럽고 마음이 불편해지기도 한다. 나는 도대체 누구일까? 나다운 건 뭘까? 고민에 빠지며 한결같은 내 모습을 찾으려 노력한다.
하지만 어느 것이 진짜 나인지 잘 알 수는 없다. 당연하다. 사실 하나의 ‘나’는 없기 때문이다. 나는 다양한 모습의 총합이다. 이렇게 다양한 나의 총체를 ‘자기self’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런 모습이 많을수록 ‘자기 복잡성self-complexity’이 높다고 한다.
자기 복잡성이 낮거나 하나에 집중하면 한결같은 사람으로 보인다. 하지만 ‘한결같다’는 게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융통성 없는 모습으로 주변 사람을 힘들게 할 수도 있고, 실패를 만났을 때 유연하게 대처하는 데도 어려울 수 있다.
예를 들어 많은 사람이 19살이 될 때까지 ‘수험생 자기’로 살아간다. 오직 좋은 대학을 목표로 공부하며, 여기에 다른 자기가 끼어들 틈은 없다. 그러다가 수능을 망치면 19년 인생이 송두리째 무너진다. 인생 전부가 부정당하는 기분에 빠져 좌절할 수밖에 없다. 하나의 자기로만 살다가 그 자기가 실패하면, 나라는 존재 자체가 실패한 것처럼 느끼게 된다.
반면에 자기 복잡성이 높은 사람은 다양한 자기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삶의 다양한 어려움으로부터 나를 보호할 수 있다. 오로지 좋은 대학을 목표로만 살아온 고3 학생은 수능을 망치면 인생이 끝났다고 좌절한다. 하지만 고3의 자기, 취미를 즐기는 자기, 아르바이트를 하는 자기를 가진 사람은 대학 이외의 다양한 가능성을 통해 나의 가치를 높일 수 있다. 자기가 복잡해서 좋은 점은 하나의 자기가 실패할 때 다른 자기로 살아갈 수 있다는 데 있다.
우리에게는 여러 가지 자기가 있다. 어떤 자기는 긍정적이지만, 다른 자기는 부정적일 수 있다. 어떤 자기는 성공할지라도 다른 자기는 실패할 수 있다. 좋아하는 내 모습도 있고, 바꾸고 싶은 내 모습도 있다. 이렇게 다양하고 복잡한 자기가 존재하지만, 확실한 것은 모두가 나의 일부라는 사실이다.
위선적으로 가면을 쓰며 꾸민 모습이 아니고, 해리성 인격 장애 같은 정신 질환도 아니다. 모든 모습이 다 존중받아야 할 내 본질 자체이다. 다양한 자기를 인정하다 보면 친구가 친구에게 힘이 되어주듯, 가족이 가족에게 위로가 되어주듯, 내가 나의 편이 되어줄 수 있다.
혹시 상황에 따라 다른 내 모습이 혼란스럽게 느껴진다면? 일관성을 지키고 싶다면? 꼭 그러지 않아도 괜찮다. 그 모든 모습이 당신 자신이기 때문이다.
나와 너를 이해하는
관계의 심리학
참고 : 책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는 수업>
이미지 출처 : 영화 <23 아이덴티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