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런 짓을 저지르는 사람을 도통 이해할 수가 없다. 백화점 신입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직원 뺨을 친 손님을 두고 하는 말이다. 단순히 행동이 무례해서 그런 게 아니다. 도대체 무슨 깡으로 저런 짓을 하는가 싶어서다. 속된 말로 밤길이 무섭지 않은 건가?
갑질하는 사람들이 심각하게 오해하는 점이 있다. 그들이 진정한 갑인 경우는 거의 없다는 점이다. 백화점 손님과 종업원은 갑을 사이가 맞다. 하지만 종업원이 퇴근하면? 그만두면? 그래도 손님이 갑인가? 아니다. 그냥 완전한 타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길 가다가 아무나 붙잡고 뺨다구를 걷어 올리면 무슨 일이 벌어지겠는가? 똑같이 후두러맞는 게 인지상정이다. 갑을 만드는 건 상황과 맥락이지 인간 그 자체가 아니다.
그럼 반대로 진정한 갑이라는 게 과연 있을까? 예를 들어 인사권을 쥐고 있는 직장 상사라든가, 커리어의 성공 여부를 쥐고 있는 대학원 교수라면 일개 백화점 손님보다는 막강한 갑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또한 ‘다 때려쳐!’ 소리가 나오면 갑이 아니다. 회사 때려치우고, 박사 과정 집어치우고 치킨집 차리기로 하는 순간 상사도 교수도 더는 갑이 아니다.
그렇다. 만인은 평등하다. 과거처럼 양반과 노비가 나뉘는 것도 아니고,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물론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돈이 많으면 그로 인한 우위를 점할 순 있지만, 그 또한 세상이 멀쩡하게 굴러간다는 상황과 맥락 속에서만 가능한 이야기다.
세상에 완전한 갑은 없다. 완전한 을도 없다. 상황과 맥락이 자신에게 유리할 때가 있고, 불리할 때가 있을 뿐이다. 대부분은 상황과 맥락, 즉 시스템 안에서 살아가고자 하기에 갑과 을이 구분되어 보일 뿐이다. 사람을 꼭지 돌게 만들어 시스템 밖으로 나가게 하면, 알량한 갑의 지위 따위는 아무것도 아닌 게 된다.
영화로도 제작되어 큰 인기를 누렸던 소설 <코난 더 바바리안>에는 위와 같은 대사가 나온다. 코난은 어떤 시스템에도 속해있지 않은 야만인이다. 하지만 무례하진 않다. 오히려 더 예의 바르고 정의로우며 인간의 도리를 지킨다. 왜냐하면, 야만인의 세계에서 그런 것들을 어기면 당장 뚝배기가 깨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디서 갑질한다고 설치지 말자. 하더라도 엔간히 하자. 선을 넘어 상대방이 ‘바바리안’이 되어버리면 당신은 더 이상 갑도 무엇도 아닌 게 되어 버린다. 그때도 당신의 뚝배기가 온전할 거란 보장은 없다.
참고 : 나 백화점인데 다른 매장에서 일터짐ㅋㅋㅋㅋ, 에펨코리아 (링크)
이미지 출처 : ‘바꿔줘 사모님’ 백화점 한 복판서 직원 따귀, YTN news 유튜브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