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진에게 복수하는 방법, 현실에서도 통할까?

 

한 커뮤니티에 일진에게 복수했다는 피해 학생의 이야기가 올라왔다. 해당 내용은 “고등학교 선생님이 해주셨던 이야기인데…”라며 시작되는데, 사실 나는 비슷한 이야기를 인터넷 게시판에서 숱하게 봤었다. 이젠 거의 도시 전설처럼 되어버린 사이다 복수썰인 셈이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A라는 일진 학생이 있었는데, 그는 같은 반 학생인 B를 유독 심하게 건드렸다고 한다. 누가 봐도 ‘저건 뉴스감인데…’ 싶을 정도로 심했다고 한다. 애들이 말리기도 하고, 신고하라고도 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때마다 B는 ‘난 괜찮아 ㅎㅎ’라며 바보처럼 웃기만 했다고 한다.

 

아이들은 모두 B를 모자란 사람 취급했고, A는 B가 반항하지 않자 맘 놓고 더 막 대했다. 심지어 이 만행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이어졌는데, 둘이 다른 대학에 진학했는데도 A는 B를 불러서 계속 셔틀을 시켰다고 한다. 대리출석은 물론 대리시험까지 해야 했다.

 

그런데 어느 날, B가 A를 찾아와서는 아무 말도 안 하고 실실 쪼개기만 했다. 그리고는 A를 고소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A는 B에게 고소를 취하하지 않으면 가만 두지 않겠다고 했지만, 이것까지 녹취되어 증거물이 되어버렸고, 결국 A는 금품갈취, 협박, 폭행 등의 죄목으로 감옥에 가게 되었다.

 

하지만 B의 복수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A가 출소한 이후에는 A가 다니던 대학에 대리출석, 대리시험을 신고해서 퇴학당하게 만들고, A가 취직하게 된 회사나 아르바이트하는 곳마다 찾아가서 전과 사실을 알려주었다. 당연히 A는 가는 곳마다 쫓겨났다.

 

그 와중에 B는 계속 피해 보상 민사소송을 진행했다. 알고 보니 B 아빠가 변호사여서 소송비용 걱정 없이 수년 동안 A의 인생을 철저하게 박살 내버렸다. 결국 A는 나이 서른에 배운 것도 없고, 취업도 못 하고, 소송하느라 모아놓은 돈도 없는 폐인이 됐다고 한다.”

 

워낙 많이 돌아다니던 이야기고, 그런 만큼 왜곡된 것도 많을 것이기에 이 이야기를 전부 믿을 수는 없다. 아마도 통쾌한 사이다 스토리라 진실 여부에 상관없이 널리 퍼졌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런 일이 아예 불가능하다고 생각할 필요도 없다. 실제로 가능할 수도 있지 않은가? 그래서 아는 변호사님께 직접 물어보았다.

 

Q) 이게 실제로 가능한가요?

 

A) 뭔가 좀 현실감이 떨어지는 내용이네요. 일단 손해배상청구는 불법행위 시점으로부터 3년 안에 제기해야 합니다.

 

Q) 그걸 노리고 대학 시절까지 셔틀을 자처해서 죄가 이어지게 한 것 아닌가요?

 

A) 그런데 2년 동안 감방 생활을 했고, 출소 후에 민사소송을 진행했다고 하는데, 불법행위 시점에서 감옥 갈 때까지 1년 정도 걸렸을 거고, 당연히 형사 재판하면 검찰이 기소한 이후로는 저런 행위를 멈췄겠죠. 그래서 수사 1년, 옥살이 2년 감안하면, 출소 이후에 시간이 지나서 또 민사소송을 했다? 이건 좀 의구심이 드네요.

 

Q) 그럼 출소 이후에 소송 등으로 계속 복수했다는 것은 허구일 가능성이 크겠군요?

 

A) 형사랑 민사랑 동시에 진행하면 민사소송도 가능하긴 합니다. 이걸 질질 끌면서 했다고 보기는 어렵고요. 게다가 현실에서 B처럼 학교나 직장에 찾아가서 훼방을 놓으면 명예훼손이나 업무방해가 될 수도 있습니다.

 

변호사님 말씀에 따르면, 위 사이다 스토리는 소설일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특히 현실에서 ‘명예훼손’이나 ‘업무방해’가 될 수 있다는 말을 보면, 이 이야기를 보고 복수를 따라 하는 사람이 생겨선 안 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글을 굳이 쓰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게 이 이야기가 조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또 하나의 결정적 근거가 눈에 들어왔다. 이걸 생각해보니 법적인 자문을 구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허구라는 걸 알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년 동안 시달림을 꾹 참기만 한다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책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들>에는 매우 충격적인 이야기가 나온다. 어린 시절 당했던 고통 때문에 우리의 유전자가 발현하는 방식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처럼 생후 환경에 따라 유전자 발현이 달라지는 걸 ‘후성유전학’이라고 한다. 학창 시절 일진에게 시달리는 일은 후성유전학적으로 영향을 끼칠 정도로 사람에게 큰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 스트레스를 복수하겠다고 오랜 시간 참을 필요가 없다. 차라리 당한 즉시 신고하는 게 낫다. 몸과 마음의 건강을 생각하면 그게 이득이다. 게다가 3년의 시효를 생각하면 법적으로도 즉시 신고하는 게 정답이다.

 

그리고 혹시나 친구들을 괴롭히는 가해자가 이 글을 보고 있다면, 이 말을 꼭 해주고 싶다. 이제는 B의 복수를 SNS가 대신해주는 세상이 되었다. 연예계와 스포츠계에서 학창 시절 악행이 폭로되어 경력에 큰 손해를 입는 사례가 많이 등장하고 있다. 지금 저지른 악행은 언젠가 반드시 돌아오게 되어 있다. 그러니 복수 당하고 싶지 않다면, 복수 당할 일을 만들지 말자. 복수가 반드시 이뤄지는 세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참고

1) 일진의 만행을 참았던 소름 끼치는 이유, 이토랜드 (링크)

2) 책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