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학부모라면 학년 초에 항상 받는 가정통신문이 있다. 녹색어머니회와 어머니폴리스 가입 신청서. 아이가 셋, 학부모 5년 차가 된 나는 이 안내문에 익숙하다.
작년까지 아이마다 당연히 참여하는 것으로 했는데, 올해는 신청하지 않았다. 여러 가지 이유(변명)가 있다. 나는 일을 하고 있어서 시간을 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1시간만 내면 될 것 같지만 앞뒤로 준비 시간 및 엄마들과의 인사 시간까지 은근히 신경이 쓰인다. 한편으로는 이런 이유도 있다. 한 엄마가 지나가면서 한 이야기도 영향을 주었다.
“그걸 왜 해? 찻길 건너는 0단지 애들 엄마들이 해야지”
학교에서 가입하라면 하라는 대로 말을 잘 듣던 나는 이 말을 듣고 엄마들이 이해관계를 분리하고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한편으로는 내가 근본적으로 갖고 있던 의문에 불을 지폈다. 이 활동이 아이들에게 과연 도움이 되냐는 것이다. 신호등 앞에서 깃발과 호루라기를 들고 아이들이 신호등을 잘 건널 수 있도록 돌봐주는 것인데, 2차선 학교 앞 좁은 도로인 데다 아이들은 알아서 잘 건너고, 심지어 길 건너편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관리해 주시는 분들이 나와 주도적으로 교통 관리를 해주고 계시기 때문이다. 나는 하긴 하면서도 들러리 같다는 느낌, 내가 왜 이걸 하고 있느냐는 의문이 강하게 들었었다. 그러던 와중에 아이 알림장에 선생님의 메시지를 보았다.
“우리 반 현재 학부모회 0명, 녹색 5명, 어머니폴리스 3명입니다. 맙.소.사.”
선생님은 왜 이런 알림 메시지를 보내게 된 걸까? 여기에는 인간의 심리를 활용한 행동경제학적 원리가 숨어 있다. 최근 읽었던 <실험의 힘>에서는 이와 비슷하게 한 문장으로 많은 것을 바꾸는 사례가 많이 등장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영국 국세청에서 체납자에게 보내던 기계적인 세금 독촉 편지에서 한 문장을 바꿔보는 실험을 한 것인데, 기존의 이런 편지에서
아래와 같이 다양한 규범에 따라 문장을 추가해 본 것이다.
결과는? 위 다섯 문장에서 ‘소수자 규범’이 가장 효과가 좋았는데, ‘소수자 규범’을 덧붙인 독촉 편지는 190만 파운드(약 30억)를 추가로 거두었다고 한다. (다른 규범들도 기존 편지보다는 효과적이었다고 함) 만약 실험 대상에 포함된 모든 체납자에게 이 규범을 사용했다면 1,130만 파운드를 추가로 징수할 수 있었다… 그 후로도 실험은 계속 업그레이드되었고, 국세청 내에서 실험에 대한 의심은 유효하다는 확신으로 바뀌었다.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작은 표현과 문장 하나로도 결과를 크게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사례는 이미 너무 많다. 그러면 우리 일상생활에서 적용하지 못할 이유는 없지 않을까? 학교의 가정통신문 사례로 돌아간다면, 선생님이 인원을 제시하고 ‘맙.소.사.’라는 말을 사용한 것은 학부모의 죄책감을 자극하는 일종의 소수자 규범과 비슷한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학부모의 죄책감을 자극하는 메시지를 5년 연속 받고 나니 더 나은 방법은 없을까 고민하게 된다.
어떤 메시지가 가장 효과적일까? 이를 파악할 방법은 역시 실험이다. 만약 학부모 참여가 미진하여 문제가 된다면, 반마다 다른 방식으로 메시지를 전달해 가장 효과적인 메시지가 무엇인지 실험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실험은 우리 일상생활에서 언제든지 활용할 수 있다. 당신도 이러한 실험의 힘을 활용하고 싶다면, 책 <실험의 힘>을 꼭 읽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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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실험의 힘>, 마이클 루카, 맥스 베이저만
※ 본 콘텐츠는 로크미디어로부터 제작비를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