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수저가 말하는 [기생충]의 치명적인 오류

 

2019년 최고의 영화이자, 칸과 아카데미를 동시 석권한 명작 <기생충>. 봉준호 감독은 이 영화에서도 봉테일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세심한 연출을 통해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것은 가난을 묘사하는 방식이었다. 봉준호는 가난을 ‘냄새’로 정의했다. “가끔 지하철 타다 보면 나는 냄새 있어.” 아마 이 대사가 나올 때 영화를 보던 관객 대부분이 자신의 소매를 킁킁거렸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봉준호는 종종 이런 식으로 가슴을 쿡 찌르고 들어오는 대사를 아무렇지 않게 넣어놓고는 한다.

 

이외에도 영화는 다양한 방식을 통해 가난과 빈부격차를 감각적으로 표현했다. 너무 생생하게 다가와서 영화를 보기가 불편했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여기에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기생충>이 가난을 제대로 모르는 사람이 만들었다는 지적이다. 사실 봉준호는 지식인 집안의 명문대 출신이라 가난과 거리가 있는 사람이긴 하다. 하지만 그런 영화 외적인 요소 때문에 가난을 모른다고 지적한 것이 아니다. 영화 자체만으로도 치명적인 오류가 있었다.

 

“흙수저가 보기에 <기생충>은 말이 안 되는 게, 아들이 과외 선생으로 취업하고 나서 동생에 아빠에 엄마까지 온 가족을 다 끌어들이잖아? 진짜 가난에 시달려 본 사람은 저렇게 안 해. 절대 가족하고 뭘 도모하지 않아. 그러다 잘 되는 일까지 말아먹은 경험이 다들 하나씩 있거든.”

 

잔인하지만, 일리가 있는 말이다. 가난이 정말 무서운 것은 혼자만 잘한다고 벗어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작은 성공을 눈덩이 굴리듯 굴려야 성공의 궤도에 올라설 수 있는데, 이때 가족이 도와주지 않으면 아직 다 커지지도 못한 눈덩이를 고스란히 써버리는 수가 있다. 그렇다고 가족을 아예 손절하라는 말을 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가난을 벗어나고 싶다면, 무턱대고 가족을 도와주기보다 지혜롭게 대처할 줄 알아야 한다. 다음 3가지 지혜를 갖춘다면 (본인이 열심히 산다는 가정하에)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1) 멘토를 찾아라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아버지고 어머니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면접볼 때 그런 사람 꼭 한 명씩 있더라) 하지만 가난에 시달리는 사람 중에는 그런 부모를 갖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빚쟁이에게 쫓기는 아버지 정도면 그나마 준수한 경우다. 알코올에 의존하는 사람도 있고, 주먹을 휘두르는 사람도 있다. 한 번 말아먹은 것도 모자라 매번 새로운 빚쟁이를 불러들이는 사람도 있다. 그런 부모 밑에서 과연 자수성가하는 게 가능한 일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가능하다. 단, 자신을 이끌어 줄 멘토가 있어야 한다. 미국의 심리학자들은 1960년대 하와이 군도의 카우아이섬에서 출생아 전원을 장기간 추적 조사하는 종단 연구를 시작했다. 그들이 카우아이섬을 고른 이유는 그곳이 너무도 처참했기 때문이다. 섬 주민 대부분이 지독한 가난에 시달렸다. 제대로 된 가정도 거의 없었다. 부모가 범죄자이거나, 술에 절어 살거나, 편부모인 가정이 대부분이었다. ‘불우한 환경이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 이것이 심리학자들의 연구 주제였다.

 

연구는 실패로 돌아갔다. 생각보다 많은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랐기 때문이다. 추적 조사한 아이 중 1/3이 명문대에 진학하고, 좋은 직장에 취업했으며, 단란한 가정을 이루며 살았다. 이때 에이미 워너라는 심리학자가 새로운 연구 주제를 떠올렸다. ‘최악의 환경에서도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연구 방향을 바꾸고 조사에 들어간 뒤, 그녀는 훌륭하게 자란 아이들의 공통점을 하나 발견하게 된다. 어떤 상황에서도 그들을 응원하고 도와준 멘토가 존재했다는 점이다. 당신이 가난을 벗어나야겠다고 다짐했다면, 먼저 당신을 좋은 방향으로 끌어줄 멘토부터 찾길 바란다. 주변에서 찾기 힘들다면 멀리서라도 찾아야 한다. 또는 책을 벗 삼는 법도 있다. 독서는 저자와의 소통이기 때문이다.

 

2) 삶에 투자하라

 

열심히 노력해도, 심지어 성공해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가난한 20살 청년이 운 좋게 대박이 나서 1억을 얻게 되었다고 해보자. 1억이 생겼으니 빚도 갚고, 전세도 구하고, 가난에서 조금은 벗어나기 위해 돈을 써야 할까? 아니다. 그러면 평생 가난을 벗어나지 못한다. 1억을 얻었다면 해야 할 일은 그 1억을 재투자하는 것이다.

 

투자라고 해서 꼭 부동산이나 주식을 하라는 말이 아니다. 그 돈으로 대학을 갈 수도 있고, 유학을 갈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소중한 돈을 조급하게 써버리지 말라는 말이다. 20살에 1억을 벌기는 금수저 출신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 소중한 기회를 당장의 괴로움에서 벗어나겠다고 날려버리면 안 된다. 차라리 사업했다 망하면 경험이라도 남는다. 그러니 방법이 뭐가 됐든 돈이 생기면 투자하는 게 답이다.

 

이때 멘토의 존재가 위력을 발휘한다. 1억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서 우왕좌왕할 때 멘토가 있다면 어디에 어떻게 써야 더 큰 이익으로 돌아올지 제시해줄 수 있다. 최악은 부모님께 효도하겠다고 차 사드리고 해외여행 보내드리고 하면서 번 돈을 써버리는 것이다. 앞으로도 계속 1억이 굴러들어온다는 보장이 있다면 모를까, 그게 아니라면 주변 사람들에게 결국 이런 말을 들을 수밖에 없다. ‘돈 좀 번다고 펑펑 쓰더니 결국 가난을 못 벗어나네.’

 

3) 돈이 아니라 사람을 봐라

 

본인이 여유가 생기면, 힘들게 사는 가족을 도와주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이때 조심해야 한다. 가난한 이유가 단지 밑천이 없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가난을 벗어날 실력과 태도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인지 구분해야 한다. 집에서 빌빌대고 힘 못 쓰는 형제가 안쓰럽다며 치킨집이라도 해보라고 큰돈을 주면 어떻게 될까? 그 사람이 사업을 성공시킬 역량이 있다면 좋은 투자가 되겠지만, 그런 게 없다면 그냥 생돈을 날리는 일밖에 되지 않는다.

 

게다가 이런 일은 도움받는 사람에게도 실상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 하는 일이기도 하다. 정말 도와주고 싶다면 물고기를 줄 게 아니라 물고기 잡는 방법을 알려줘야 한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물고기 잡을 의지가 있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니 항상 돈이 아니라 사람을 보고, 사람에 투자하는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그것이 궁극적으로 자립하는 길이자, 온 가족이 힘을 합쳐 가난을 벗어나는 방법이 된다.

 

참고 : 영화 <기생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