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살이 된 한 여성이 있다. 그녀의 직업은 백수. 부모님 집에 얹혀살면서 조카와 게임하며 시간을 보내는 게 하루 일과다.
한심한 언니를 보며 동생이 ‘애인이 생길 리 없지~’라고 핀잔을 주자, 그녀는 ‘나는 여자이길 포기했으니까’라고 대답한다. 여자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독립적인 인격체로서 인정받는 것조차 포기한 듯하다.
결국 동생과 대판 싸우게 되고(그 나이 먹고 이게 무슨 짓이냐…), 그녀는 집에서 쫓겨나듯 독립하게 된다.
그녀는 생존을 위해 ‘백엔샵’이라는 편의점에서 일을 구하게 되고, 험한 세상에 홀로 부딪혀 나가기 시작한다. 영화 <백엔의 사랑>에 등장하는 주인공 이치코의 이야기다. 영화 초반 그녀는 그냥 되는대로 사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유는 간단하다. 꿈도 희망도 없으니까. 미래에 더 나아질 거라는 희망이 보이지 않으니 스스로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 이처럼 스스로 ‘실패할 것이다’라는 사고방식이 바로 패배주의다. 이치코는 패배주의에 절어있었다.
그녀는 독립한 뒤 어떤 삶을 살게 됐을까? 다소 과격하게 표현하자면 ‘세상이 얼마나 개떡 같은지’ 배우게 된다. 아무 문제 없어 보이는 세상 뒤편에는 각자의 고통이 담겨 있었다. 편의점 점장은 우울증에 시달렸고, 편의점 뒷문에는 날짜가 다 된 도시락을 구하러 다니는 정신 나간 아줌마가 찾아왔다. 세상은 생각만큼 아름답지도 않았고, 그 속에서 살아가기가 마냥 즐거워 보이지도 않았다.
그러다 한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기도 하지만, 그 사랑이라는 것도 생각과는 달랐다. 다이아몬드처럼 아름답고 영원히 이어지는 사랑이 아니었다. 상처를 보듬어 주던 사람에게 또다시 상처받는 아픔을 겪어야만 했다.
그런 그녀에게 위안이 되어준 것은 복싱이었다. 남자친구에게 차이고 나서 (ㅠㅠ) 그녀는 복싱에만 미친 듯이 매달렸다.
심지어 프로 시험도 통과하고 (보통 32살이면 은퇴한다) 마침내 첫 프로 무대에까지 오른다. 하지만…
그녀의 프로 데뷔는 처참한 패배로 끝났다. 경기가 끝난 후 이기고 싶었다고, 정말 이기고 싶었다고 서럽게 흐느꼈지만, 결론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녀는 패배자였다.
이렇게 영화는 이치코가 패배자가 되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하지만 그녀는 패배자일지언정 패배주의자는 아니었다. 이치코는 달라졌다. 이전처럼 꿈도 희망도 없는 삶을 살지 않았다. 그렇다고 무언가 확고한 비전이 생긴 것은 아니다. 다만 태도가 달라졌다.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변할 수 있는 희망을 찾았다.
이치코가 패배주의자에서 패배자로 변한 모습을 보면 절로 ‘인생의 아이러니’라는 말이 떠오른다. 실제로 패배주의에 절어있는 사람을 보면, 막상 크게 패배해본 적이 없는 경우가 많다. 살면서 작은 패배를 하나둘 겪다가 그게 만성적으로 이어져 패배주의로 굳어진다. 그리고는 실패가 두려워 도전조차 하지 않는 삶을 살 게 된다. 그러다가 남 탓, 세상 탓만 하며 더 부정적인 사람이 되기도 한다.
반면 제대로 패배해본 사람은 패배주의를 모른다. 물론 패배는 아프다. 억울하고 분해서 절로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하지만 이들은 패배주의에 빠지지 않는다. 한바탕 눈물을 쏟은 다음에는 오히려 다시 도전하려고 한다. 원래 억울하면 미치고 팔짝 뛰게 되어 있다. 패배가 억울한 사람은 엉덩이를 땅에 붙이지 않는다. 다시 일어나 부딪힌다. 당연히 남 탓 따위 할 시간이 없다.
당신은 어느 쪽이 되고 싶은가? 변하고 싶다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패배주의자인가, 패배자인가?
책 <베스트 셀프>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우리는 자신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깊이 파고들다가 ‘자기비하’라는 토끼굴에 빠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깊이 파고들수록 부정적인 생각과 행동으로 향하기가 십상이다. 그 방향으로 가는 듯하면 즉각 멈추고 방향을 재조정해야 한다. 자신에게 호기심을 갖는다는 것은 자신의 결함을 찾는 게 아니다. 내 생각과 행동 간의 관련성을 파악하는 것이다. 자신의 현재 위치를 알기 위해서라도 생각과 행동의 관계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지향하는 목표를 이해할 수 있다.”
살다 보면 실패가 두려워 패배주의에 빠질 수 있다. 그런 자신을 바라보다 자기비하에 빠질 수도 있다. 생각이 갈수록 부정적이 되고, 그 부정적 생각이 더 큰 부정적 생각을 부르는 되먹임 상황에 빠지게 된다. 그럴 때면 생각을 바로잡아야 한다. 계속 부정적 생각에 끌려가다 보면 인생마저 부정적이 되고 만다.
그럴 땐 오히려 패배해보는 게 낫다. 제대로 깨져보는 것이다. 그렇게 실패하고 나면 생각보다 많은 것을 얻는다는 걸 깨닫게 된다. 사후 해석, 피드백, 성공 전략… 이런 걸 말하는 게 아니다. 무언가 간절히 바라는 마음. 그 마음을 다해서 최선을 다했던 경험. 그런 것들이 나를 성장시킨다.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고, 행동하는 데 주저하지 않게 한다.
그러니 패배를 두려워하지 말자. 패배주의자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자. 자기비하에 빠지지 말고, 해내는 것만 생각하자. 당신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 누구나 그런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잠재력은 패배한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는다. 꺾이지 않는다. 오히려 패배했을 때 더 단단해진다.
마지막으로 시 한 편을 소개하고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인생에 바람이 불면 누울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신은 바람보다도 먼저 일어날 수 있다. 그 힘이 당신 안에 있다는 걸 꼭 기억하길 바란다.
너 자신이 되라
오로지 더 나은 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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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1) 영화 <백엔의 사랑>
2) 책 <베스트 셀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