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살 친구라 이해한다 VS 손절한다

인간의 감정 중 가장 격하고 공포스럽게 느껴지는 건 ‘분노’다. 그 표현이 얼굴 표정과 말투, 행동에서 모두 드러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살다보니 가장 무서운 감정은 따로 있는 것 같다. 바로 ‘서운함’이다. 서운하다의 사전적 뜻은 ‘마음에 모자라 아쉽거나 섭섭한 느낌이 있다’는 건데, 이 섭섭한 느낌을 상대가 알아준다면 모를까, 몰라준다면 언젠가는 더 큰 분노로 돌아올 갈등의 씨앗이 되기 때문이다.

 

온라인 커뮤니티 에펨코리아에 다음과 같은 사진 한컷과 메시지가 네티즌 사이에서 댓글과 댓글로 분주한 소통이 오가고 있었다.

 

 

얼핏 보면 친구의 이사를 도와준 후 중국 음식으로 뒷풀이를 하는 것 같은데, 문제는 이사를 한 친구가 ‘더치페이’를 제안했다는 거다. 게시물만 보면 자신을 위해 시간을 내어준 친구에게 한 말 치고는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게끔 하기 충분하다. 친구는 그 현장에서 당장 불쾌함을 표시하지 않은 것 같다. 아직 돈이 별로 없는 친구의 사정을 어떻게든 이해해보려고 애썼을 것 같다. 커뮤니티에도 ’25살 친구’라는 전제를 붙인 걸 보면. 그저 돌이켜보니 친구의 행동이 섭섭하게 느껴졌고, 그 섭섭함이 커져 답답함을 커뮤니티에 털어버린 것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이런 사례를 보면서 인간관계에서 지켜야 할 예의와, 감사 또는 사과를 표현하는 ‘타이밍’의 중요성을 배운다. 아무리 좋은 행동도 그 행동을 드러내야할 때를 지나쳐버리면 안 하느니만 못한 것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친구의 도움을 받은, 그러니까 이사의 주인공이 더 늦기 전에 저 게시물을 확인했기를 하는 바람이다. (물론 이해하기보다 분노했다면 이미 손절을 했을테다) 그리고 친구 마음에 있는 서운함의 불씨를 꺼트렸기를 바란다. 에세이집 ‘사소한 것들의 구원’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조심(操心) 한다는 건 소극적인 태도가 아니라 남에게 ‘마음을 쓴다’는 의미에서 오히려 조용한 적극성을 뜻합니다.”

 

평소 상대방에게 말이나 행동으로 적극적인 표현은 못할지라도 평소 상대방을 ‘조심’스럽게 대하는 것. 이것만 잘 지켜도 관계에 ‘빨간불’이 들어올 일은 없지 않을까? 우리의 삶과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조심하는 일상을 만들어나가자.

 

참고 <25살 친구라 이해한다 VS 손절한다> 에펨코리아(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