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신뢰는 비용의 문제다
위 사례는 신뢰가 비용의 문제라는 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우리나라가 택배 천국인 데는 여러 가지 요소가 있다. 일단 땅이 좁고 (흨 ㅠㅠ) 교통망이 훌륭해 요즘에는 웬만한 상품이면 당일 배송까지 이뤄질 정도다. 여기에 치안까지 좋다. CCTV가 곳곳에 설치된 덕분이기도 하지만, 애당초 남의 집 택배는 건들지 않는다는 국룰이라도 있는 것처럼 좀도둑 문제가 웬만해선 벌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 신뢰가 깨지면 비용이 발생한다. 위 사례의 경우 그 비용을 택배기사가 처리하고 있다.
2) 비용은 왜 약자에게 부과되는가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은, 왜 피해 비용을 택배기사가 처리하느냐는 점이다. 만약 택배기사가 잘못해서 분실했다면, 이는 택배기사가 책임지는 게 맞다. 하지만 수령인이 집 앞에 두고 가라고 했다가 없어졌다면, 이게 택배기사의 잘못일까? 물건을 직접 수령하거나 경비실에 맡기는 등 도난을 방지할 방법이 이미 존재한다. 그런 방법을 꺼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귀찮으니까. 경비실까지 가지러 가기 귀찮은 마음이야 이해한다. 하지만 도난이 걱정된다면 그 정도 수고는 감수해야 하지 않을까? (이 수고로움 또한 비용이다. 애당초 도둑놈이 제일 문제다)
그럼에도 모든 책임을 택배기사가 져야 하는 이유는? 약자이기 때문이다. 택배기사 대부분은 택배회사의 직원이 아니라 개인사업자다. 직영으로 운영되는 곳은 얼마 없다. 그러니 택배기사는 수령인에게도 을이고, 택배회사에도 을이다. 어느 쪽으로나 약자니, 불만이 들어오면 잠자코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다. 적자를 보면서 사업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국, 배송 기사가 8번이나 바뀌는 일이 벌어질 수밖에…
3)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그럼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가장 좋은 방법은 좀도둑을 잡는 것이다. 여기에는 비용이 들어간다. CCTV를 추가로 설치해야 할 수도 있고, 무인 택배함을 설치하는 방법도 있다. 경비원이나 경찰 등 추가 인력이 필요할 수도 있다. 택배 수령인이 귀찮음을 감수하는 방법도 있다. 앞서 말했듯이 이 수고로움 또한 비용이다. 어떤 해결 방법이 되었든 공짜로 해결하기는 불가능하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신뢰가 깨지면 비용이 들어간다.
중요한 것은 그 비용을 약자에게 몰아주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아마 가장 적은 비용이 들어가는 방법은 수령인이 귀찮음을 감수하는 일일 것이다. 도둑을 잡는 일은 초기 비용이 많이 들지만, 장기적으로 비용이 더 이상 들지 않는 방법이기도 하다. 하지만 약자라는 이유로 택배기사에게 비용을 몰아주는 게 현실이다. 당장은 내가 손해 보지 않으니 별일 아니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렇게 부담이 심해지다 택배기사가 배송을 포기하면 그때 받는 피해는 무척 크다. 택배를 받을 수 없는 삶을 생각해보자. 대략 30년쯤 뒤처진 과거에 사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비용이 발생했을 때 약자에게 내몰지 않아야 한다. ‘나만 아니면 돼’라고 생각할 게 아니라 부담을 나눌 방안을 고민하는 게 더불어 사는 미덕이 아닐까? 오늘도 전국에서 무거운 택배를 나르며 고생하고 있는 많은 택배기사님께 감사한다는 말을 전하며 글을 마친다.
참고 : 어느 아파트 택배기사가 보낸 단체문자.JPG, 이토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