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0명을 살린 한 남자의 생각

세상에서 가장 어쩔 수 없는 불행은 바로 천재지변이 아닐까. 예고는 없다. 다만 대형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았음에도 대비하지 않았던 것 뿐이다. ‘이런 일이 과거엔 없었으니 지금도, 앞으로도 없겠지’하는 잘못된 예측 때문이다.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은 발생한지 10년이 다 돼감에도 일본 사회에선 아직도 현재 진행형인 상처로, 지구촌에는 잊지 못할 충격으로 다가온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 동일본 대지진과 관련하여 대중에게 교훈을 주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당시 일본 동북부 이와테 현에서도 대지진에 이은 해일로 8000여명에 달하는 피해자가 발생했다. 그런데 북부 후다이 마을에선 단 한 명도 목숨을 잃지 않았다. 해일이 덮친 일본 해안지역에서 직접적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이 전혀 없는 유일한 지역이었다.

 

 

 

당시 주민들을 살린 것은 높이 15.5m, 길이 155m의 방조제(두번째 사진)와 높이 15.5m, 길이 205m에 달하는 수문이었다. 방조제는 1967년, 수문은 1984년도에 완공된 것이다. 이 방조제와 수문 설치를 적극 추진한 사람은 ‘와무라 고토쿠’라는 촌장이었다. 후다이 마을은 1896년과 1933년 두차례 대형 해일을 겪었다고 한다. 촌장은 1933년 극적으로 살아남은 사람이었으며, 어른들로부터 1896년에 15m 해일이 몰려왔다는 소리를 들으며 자란 유일한 사람이었다.

 

촌장은 생전 “예산 낭비”라는 주변의 지적에도높이 15m 이상의 방조제와 수문 건설을 추진했다. 당시 옆 도시의 10m 방조제도 ‘규모가 너무 크다’는 비판을 받고 있던 상황이었다. 촌장은 정부와 지자체를 끊임없이 설득해 마침내 방조제와 수문 건설을 완성(1984년)시켰다. 1980년대 후반에 세상을 떠난 촌장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손가락질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촌장이 남기고 간 방조제와 수문은 20여년 뒤인 2011년에 그 빛을 발한다. 옆 동네의 10m 방조제는 14m에 달하는 파도를 이겨내지 못하고 무너졌지만, 후다이 마을은 굳건했다. 

 

 

1960년대에 홀로 방조제와 수문의 필요성을 역설했던 와무라 촌장. 마을 주민들은 2016년 촌장을 기리는 비석을 세웠는데 그 비석에는 다음과 같은 촌장의 한마디를 새겼다.

 

“2번이나 겪었던 것을 3번 겪을 수는 없다”

 

촌장의 이야기에서, 지난날의 과오를 받아들이는 자세와 이를 실제로 바로 잡기 위한 태도는 어떠해야 하는가를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우리는 매일 하루를 돌아보고, 주말에는 한 주를 그리고 연말에는 한 해를 돌아본다. 그 다음 습관처럼 후회와 반성을 한다. ‘올해는 이것만큼은 더 잘해볼걸…’ 이라고. 그 다음 내일의 계획을 한 달의 계획을, 한 해의 계획을 세운다. 누가 뭐라하지 않아도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패턴이다. 만약 오늘 반성한 것을 내일엔 달라진 행동으로 실천한다면 다행이지만 그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게으름일 수도 있고, 예상치 못한 외부의 탓일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어떻게든 과거의 자신보다 더 나은 나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기존의 익숙해져버린 잘못된 습관을 과감히 바꾸려는 시도, 필요하다면 타인으로부터 소외당할 수도 있다는 각오도 필요하다. 한평생 마을의 평화를 위해 애쓴 촌장의 삶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배운다.

 

참고 <3000명을 살린 촌장의 고집> 스브스뉴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