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를 사랑한 걸까? 그의 조건을 사랑한 걸까?

 

연애 3년 차에 차였다가 소개팅으로 만나 운명처럼 사랑에 빠진 커플이 있다. 그들은 여느 연인처럼 깨도 쏟고, 싸움도 하며 사랑을 키워갔다. 그런데 최근 여자 쪽에서 관계에 대해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발단은 남자의 퇴사였다. 몇 년간 불황에 허덕이던 회사는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승승장구하던 청년에게 전문성과 관련이 먼 조직으로 발령을 내렸고 남자는 원치 않는 부서에서 일하느니 그만두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이후 남자는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되는 작은 중소업체에 취직해 일을 배우고 있다. 남자는 소모품에 불과했던 대기업 직원으로 남기보다 작아도 전문성을 키울 수 있는 지금 직장에서 성공하고 싶어 한다. 문제는 여자가 그의 선택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데에 있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만한 이등 기업에서 일하던 그가 그리운 것이다. 그를 사랑하지만, 그녀에게는 자신이 그리는 남편으로서의 조건 또한 중요하다. 그래서 관계에 혼란이 왔다. ‘나는 정말 그를 사랑한 걸까? 아니면 그의 직업을 사랑한 걸까?’

 

우리는 외모든 경제력이든 이성을 만날 때 조건을 따지는 사람을 부끄러워하는 경향이 있다. 속 깊은 곳에서는 모두 비슷한 마음이라고 해도,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는 게 예의라고 여겨서다. 또 조건 없는 사랑이 순수한 사랑이라는 통념 때문이기도 하다. “순수한 사랑은 조건이 아니라 그 사람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다. 외모, 경제력, 건강은 언제든 변할 수 있지만, 그가 그 사람인 것은 변하지 않는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1) 조건 없는 사랑이라는 게 가능할까?

 

 

조건에서 자유로운 순수 결정체인 그 사람을 알아보고 사랑에 빠지는 일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많은 학자들은 사랑에 빠지는 과정이 매우 조건적이라고 말한다. 그 조건은 비단 경제력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성격, 외모, 말투, 행동 등 사랑하는 사람을 선택하는 기준을 조건이라고 보는데, 이 조건은 대부분 어린 시절 형성된 우리의 무의식에 따라 결정된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무의식에 의해서 사랑의 대상을 선택한다. 그 과정에서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보다 우리가 원하고 바라는 대로 재단하고 판단한다. 이미 무의식에서 많은 것을 취사선택하고 결정해 버린다. 그래서 프로이트는 “우리가 선택하는 사랑은 결코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며 사랑할 대상의 발견은 이미 결정된 이전 관계의 재발견이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즉, 사랑의 선택에 있어 이미 많은 조건이 포함되어 있다는 말이다.

 

2) 순수한 ‘그 사람’은 존재할 수 있을까?

 

 

설령 내가 조건 없는 사랑을 선택할 수 있다고 해도 ‘그 사람’을 알아보고 사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람의 본질은 변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따뜻한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런데 그가 냉랭하고 무심하게 행동한다면? 그래도 그 사람은 여전히 따뜻한 사람일까?

 

보통 현상은 변해도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대상이 사람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사람의 본질을 결정하는 것은 겉으로 보이는 현상이다. 그가 따뜻한 말씨를 쓰고, 행동을 보여줘야 따뜻한 사람이 된다. 냉랭하고 무심한 모습을 보이면 차가운 사람일 뿐이다. 그러니 사랑에 있어 변치 않는 본질만 보겠다는 건 불가능한 말이다. 사람의 본질은 정해진 게 아니라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이 결정하기 때문이다.

 

3) 절대로 사랑에 냉소적이 되지 마라

 

 

어떤 사람은 무의식의 조건이 사랑의 대상을 선택한다는 얘기를 들으면, 사랑에 대해 냉소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세상에 진정한 사랑은 없다는 듯이 말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우리가 사랑에 회의적이어야만 하는 걸까? 오히려 무수한 사람들 가운데 내 조건에 맞는 누군가가 있다는 게 놀랍고 감사한 일 아닐까? 그 조건이 어린 시절 경험 때문이라고 해도, 서로가 살아온 역사에 의해 엮인 인연이라 생각한다면 오히려 더 애틋하고 신비롭게 느껴지지 않을까?

 

그러니 사랑에 대해 냉소적이 되지 말자. 조건 없는 사랑만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말하지도 말자. 우리는 누구나 자기만이 가진 조건에 의해 사랑에 빠진다. 그렇다고 그 사랑이 순수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우리는 어차피 그 사랑의 배후를 다 알지도, 좌지우지할 수도 없으니까. 그러니 지금 하고 있는 사랑에 충실하라. 비록 그 끝이 이별일지라도 사랑을 통해 자기 자신에 대해 조금은 더 알 수 있는 성장의 기회가 될 테니까.

 

어차피 끝날 사랑인데 시간 끌 필요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그럼에도 서둘러 사랑을 끝내 버리면 남는 건 후회뿐이고 다음 사랑도 잘할 수 없다고 말이다.

 

<딸에게 보내는 심리학 편지>
자유롭고 당당한 삶을 꿈꾸는 딸에게 전하는 자기 돌봄의 심리학

 

※ 본 콘텐츠는 유료 광고로서 출판사와 협력하여 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