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적 꾸물거림morbid procrastination’이라는 정신의학 용어가 있다. 누구나 한 번쯤은 당장 내일이 시험인데 공부 대신에 책상 정리를 하거나, 마감이 코앞인데도 인터넷 서핑으로 시간을 보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런 망설임은 선택이나 과제를 앞두고 두려움과 부담감이 클 때 나타나는 정상적인 행동에 속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간혹 그 정도가 심해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을 정도다. 이들은 남들 눈엔 게으른 사람으로 비치기 십상이지만, 그들의 내면은 해야할 것에 대한 불안과 스트레스로 가득하다.
그들은 완벽주의자다. 그들은 실패를 두려워하고, 자신의 흠을 용인하지 못한다. 그래서 머릿속은 온갖 생각으로 넘쳐 나지만 정작 그 생각을 행동에 옮기는 데는 너무나 많은 시간이 걸린다. 제대로 해내지 못할 것에 대한 두려움과 부담감은 주어진 과제를 실체보다 더 부풀려 과장되게 만든다. 사람들은 부담스러운 것은 외면하고 회피하려는 본능이 있다. 그래서 완벽주의자들은 과제가 주어지면 자꾸만 딴짓을 하거나 꾸물거리거나 잠으로 도피하는 경향을 보인다.
하버드 대학교에서 심리학을 가르치는 탈 벤 샤하르에 따르면 완벽주의자는 삶의 여행을 직선 도로로 생각하고 오직 결과에만 초점을 둔다. 그래서 그들은 목표를 향해 가는 과정의 즐거움을 누릴 줄 모른다. 그리고 똑같은 상황을 보고도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모든 것을 ‘모’ 아니면 ‘도’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소한 실수도 실패로 간주한다. 그런데 실패에 대한 극도의 두려움은 새로운 도전과 모험을 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래서 무언가를 시도하기보다 무작정 일을 미루는데, 그 핑계로 자신의 게으름을 든다. 시도해 보지 않아서 그렇지, 한번 하면 남들보다 훨씬 잘할 거라고 자신을 합리화하면서 말이다.
사람들은 보통 어떤 이가 성공했을 때 그가 유난히 똑똑하거나 남다른 재능을 타고났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최고의 자리에 오른 사람들에게 성공은 수많은 경험을 통해 찾은 하나의 방법일 뿐이다. 그들은 기꺼이 실험하고 새로운 도전을 멈추지 않는다. 종종 실패를 겪지만 이 과정에서 좌절을 극복할 수 있다는 믿음과 자신감도 얻는다. 두려워만 하던 실패를 막상 해 보니 그것이 생각보다 별게 아님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실패는 아무것도 아니다. 오히려 실패를 많이 해 본 사람일수록 성공할 확률도 높다. 그만큼 경험을 통해 얻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어느 미대 수업에서는 학생들에게 100개의 시안을 한 번에 제출하라는 과제를 내 준다고 한다. 뛰어난 작품 하나를 만들기 위해 고심하는 것보다 어떤 것이든 100개를 그리면 그중에 뛰어난 작품이 나올 가능성이 더 크기 때문이다. 미완성을 견디는 것도 습관이다. 그리고 일단 하는 것 자체가 습관이 되면 정교하게 다듬는 일은 비교적 쉽게 할 수 있다. 그런 식으로 작은 목표를 이룬 경험들이 쌓이면 어느 순간 최종 목적지에 도달해 있을 것이다.
늦은 나이에 그림을 시작한 중견 화가가 있다. 그는 아무리 지친 날이라도 캔버스에 점 하나라도 찍고서 하루를 마감한다. 대작도 차근차근 찍은 점들이 모여 탄생하는 거라며, 그는 자기가 쉼 없이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비결을 설명했다. 그 말을 들으니 우리의 인생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하루가 쌓여 인생이라는 작품을 이룬다. 그 인생의 그림에는 기쁨, 성공, 희망의 색깔뿐만 아니라 고통, 실패, 좌절의 색채도 가득하다. 그러나 멀리서 바라보면 모든 색깔이 조화를 이루어 한 폭의 작품이 된다.
아무것도 안 하면 실패는 없겠지만 대신 성공도 없다. 그리고 사람들이 죽을 때 가장 후회하는 것은 실패한 일보다는 해 보지 못한 일이라고 한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고 일단 뭐든 시도해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나중에 후회를 덜하기 위해서라도 인생이라는 그림에 다양한 색깔을 칠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딸에게 보내는 심리학 편지>
자유롭고 당당한 삶을 꿈꾸는 딸에게 전하는 자기 돌봄의 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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