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묵적 합의가 깨진 스타벅스

 

 

카페에서 장시간 머무르며 공부하는 사람들을 ‘카공족’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왜 집이나 독서실을 놔두고 카페에서 공부하는 걸까? 집에서 공부하면 이런저런 유혹에 빠지기 쉬워 집보다 낫고, 독서실의 경직된 분위기에 비하면 적당한 소음을 낼 수 있는 카페가 공부하기 더 마음 편하기도 하다.

 

하지만 카공족은 카페 주인이나 다른 손님 입장에서 환영하기 어려운 부류이기도 하다. 일단 자리 순환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카페 수익에 악영향을 줄 수도 있다. 그래서 일부 카페에서는 카공족을 거부하기도 한다. 다른 손님 입장에서도 카공족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 자리가 없어 카페를 이용하지 못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딱히 남에게 큰 피해를 주지 않기도 하고, 카페 입장에서는 아예 카공족을 대상으로 매출을 올리는 전략을 구사할 수도 있기에, 어느 정도의 손해와 불편함은 넘어가 줄 수 있다. 그런데 카페에서 도서관 분위기를 강요한다면… 이것이 정당한 요구가 될 수 있을까? 이거야말로 호의를 권리로 착각하는 게 아닐까?

 

그런 면에서 ‘암묵적 합의’라는 말에 이 논쟁의 핵심이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원래는 없는 것, 명문화할 수 없는 것, 그렇기 때문에 ‘암묵적’이라는 말이 붙는다. 암묵적이라는 말 자체에 배려받고 있음이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이 외에도 차마 드러낼 수 없는 부당한 관습에도 암묵적이라는 말이 붙기도 한다. 암묵적인 것이 정당할 수 있는가? 이 점을 한 번쯤 고민해보면 좋을 듯하다.

 

덧. ‘현직’ 스타벅스라길래 직원이 쓴 줄 알았…

 

덧2. 그렇다고 아주머니 3분이 잘했다는 건 아니다. 조용히 공부하는 사람들을 광역으로 도발하는 것은 분명 잘못이다. 다만, 그들의 부당함을 지적하는 논리가 또 다른 부당함을 강요하고 있다는 게 원 글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참고 : 현직 스타벅스 3층인데요, MLB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