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한 트위터에 넷플릭스를 공짜로 쓰는 방법이 올라왔다. 사실 따지고 보면 공짜가 아니라 도둑질인데, 그 방법이 너무도 기발하다. 글을 올린 당사자도 상대에게 화가 나기보다 알아차리지 못한 자신에게 실망했다고 말할 정도다.
그 방법이란 프로필 이름과 사진을 ‘Settings’로 바꾼 것이었다. 계정 주인은 모르는 프로필이 버젓이 올라와 있음에도, 당연히 설정 메뉴인 줄 알고 연결을 끊을 생각을 못 했다. 이 글을 읽은 나도 나빴다는 생각보다 ‘진짜 잔머리 천재다’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option이나 reset profiles 같은 이름도 효과적이지 않을까?)
글쓴이는 settings의 정체를 알아차리지 못한 자신이 실망스러웠다고 했지만, 굳이 실망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이 정도로 공들인 함정에 빠지는 것은 인간이라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넷플릭스에서 프로필 선택 화면을 유심히 보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다들 습관적으로 자기 프로필을 누른 뒤 보고 싶은 영상을 검색할 것이다.
이렇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대상을 보지 못하는 현상을 가리켜 ‘부주의 맹(inattention blindness)’이라고 한다. 혹시 ‘에이… 나는 안 그런다. 바보도 아니고!’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다음 영상을 보고 질문에 답해보도록 하자. 흰옷을 입은 사람들이 몇 번이나 패스를 주고받는가?
패스 회수를 맞춘 사람은 많아도 중간에 고릴라가 튀어나온 것을 알아차린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고릴라가 화면 귀퉁이에나 잠깐 나온 것도 아니고, 재빠르게 지나간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화면 정중앙에 뚜벅뚜벅 걸어와 가슴까지 두드리고 나갔다. 그래서 처음에 고릴라를 눈치채지 못한 사람은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내가 어떻게 저걸 못 볼 수 있지?’ 하지만 걱정하지 말자. 그게 정상이다.
인간의 인지 능력은 멀티태스킹이 안 된다.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할 수는 있지만, 진짜 동시에 진행하는 게 아니다. 한 가지 일에 집중했다가, 다른 일에 집중하는 간격을 빠르게 두는 것뿐이다. (사실 컴퓨터도 같은 방식으로 멀티태스킹을 한다) 그래서 여러 일을 동시에 진행하면 몰입이 되지 않아 작업 효율이 떨어진다. 그리고 진짜 문제가 되는 것은 돌발상황이다. 아무리 주의력을 빠르게 전환해도 교통사고처럼 급박한 상황까지 커버할 수는 없다. 그래서 운전 중 휴대폰 사용이 술 마시고 운전하는 것만큼 위험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인간의 인지 능력은 완벽하지 않다. 방심하면 허점이 생긴다. 넷플릭스를 몰래 쓴 전 여친은 그 허점을 파고든 셈이다. 진심 잔머리 천재이거나 심리학에 능통한 사람이 아닐까 싶다. 똑같은 허점을 찔리고 싶지 않다면, 당신의 인지 능력이 낭비되는 곳이 없는지 꼼꼼하게 따져봐야 할 것이다. 아니면 우리가 그 허점을 파고들거나!
참고
1) @yellowgengar2, 트위터
2) selective attention test, 유튜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