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읽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나에게 큰 감동을 준 글이 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강 이런 내용이었다.
어느 겨울날 골목길 담벼락 위에서 새끼 고양이를 발견했다. 조그만 녀석이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야옹~ 야옹~’ 소리를 우렁차게도 외쳐댔다. 아침에 녀석을 보고 별생각 없이 내 갈 길을 갔다. 그런데 저녁이 되어 돌아왔을 때도 그대로였다. 새끼 고양이가 담벼락 위에서 ‘야옹~ 야옹~’ 큰 소리로 울고 있었다. 어미를 잃은 듯했다. 아마도 어미는 어딘가에서 차에 치여 비명횡사했을지도 모른다. 우렁찬 울음은 애타게 어미를 찾는 소리였다. 나는 새끼 고양이를 덥석 잡아 집으로 데려왔다.
집에 오는 동안 조그만 녀석이 손안에서 바들바들 떨었다. 추위에 떨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새끼 고양이는 집에 도착해서도 여전히 떨고 있었다. 추위보다 새로운 환경이 더 무서운 모양이었다. 그래도 종일 굶었으니 뭐라도 먹여야겠다는 생각에 접시에 우유를 담아 바닥에 두었다. 그리고 새끼 고양이를 우유 옆에 내려 두었는데… 녀석은 우유를 쳐다보지도 않고 쌩하니 주방 밑으로 도망쳐버렸다. 손이 닿지 않아 꺼낼 수도 없고, 아무리 불러도 나오지 않았다. ‘배가 고프면 알아서 먹겠지’라고 생각하며 그대로 두었다.
하지만 다음 날 퇴근하고 돌아왔을 때도 우유는 그대로 있었다. 녀석은 이틀째 아무것도 못 먹은 셈이었다. 이대로 굶어 죽을까 봐 걱정됐다. 녀석을 잡으려고 애를 쓰고, 막대기로 가구 밑을 훑어봤지만, 새끼 고양이는 요리조리 잘만 피해 다녔다. 그러다 담아 놓은 우유까지 바닥에 엎어버렸다. 에라 모르겠다. 나도 할 만큼 했다. 지친 마음에 쏟아진 우유를 치우지도 않고 거실 소파에 엎어졌다.
그런데 잠시 뒤에 새끼 고양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는 바닥에 엎어진 우유를 핥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깨달았다. 녀석은 길고양이다. 그릇에 담긴 음식을 먹어본 적이 없다. 어쩌면 그릇에 담긴 음식을 건드렸다가 인간이나 다른 애완동물에게 호되게 당했을 수도 있다. 녀석에게 음식이란, 바닥에 버려진 상태가 당연했다. 엎지른 우유가 되어서야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된 것이다.
여러분은 이 이야기에서 무엇을 느꼈는가? 나는 진정한 배려가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강요가 되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며칠이나 굶은 새끼 고양이에게 음식은 꼭 필요한 것이었다. 하지만 인간의 방식대로 주어졌을 때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길고양이의 방식이 돼서야 받아들여졌다. 배려는 이렇게 해야 한다. 상대의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걸 놓치면 꼰대가 되기 쉽다. 꼰대짓 하는 사람 중에 나쁜 의도를 가진 사람은 별로 없다.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교훈이야.’라며 전하는 이야기다. 문제는 아무도 그 교훈을 원하지 않는 데 있다. 아무리 좋은 소리라도 원하지 않는 상황에서 늘어놓으면 꼰대짓이 된다. 조언은 상대가 원할 때 해주면 된다. 그게 아니라면 조언이 아니라 훈계, 지적, 꾸중이 된다.
사람들은 올바른 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올바르다고 당연한 것은 아니다. 새끼 고양이에게 접시에 담긴 우유는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선의는 강요하는 게 아니다. 배려하는 것이다. 잊지 말자. 선의도 강요가 되면 폭력과 다름없다.
더 깊은 이야기를 듣고 싶은 분에게 다음 영상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