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언니가 혼자있을때 자꾸 에어컨을 틀어요

나는 진심으로 20세기 최고의 발명품이 에어컨이라고 생각한다. 쪄 죽을 것 같은 여름을 몇 해 보내고 나니 에어컨 없으면 살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내 작은 방에 에어컨을 설치한 이후로는 에어컨 없이는 살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에어컨이 마냥 좋지만은 않은 게 전기료의 압박이 심하다. 그나마 요즘에는 전력 효율이 좋은 에어컨이 나와서 다행이지, 옛날에는 집안에 딱 한 대 있는 에어컨도 맘대로 켜지 못했다. 그래서 에어컨 통제권을 쥔 엄마의 단호한 절약 정신에 짜증을 낸 적도 있다. (짜증 내도 소용없긴 하다. 안 틀어줘~) 이런 갈등이 요즘에도 여전한 것 같다. 한 커뮤니티에 에어컨 사용을 두고 글이 올라왔는데, 글쓴이에게 여러모로 아쉬움이 느껴졌다.

 

 

 

새언니가 에어컨을 트는 게 그렇게 아까운 일일까? 물론 집안 사정에 따라 정말 아까울 수도 있다. 전기료가 압박이면 에어컨 트는 것도 절약하는 게 맞다. 하지만 글쓴이의 논리는 너무도 자기중심적이었다. 자기는 공부하는 사람이라 에어컨이 필요하지만, 혼자서 집안일 하는 사람은 에어컨이 아깝다는 식으로 말한다. 오히려 집안일이 몸을 쓰는 일이니 더 더운 것 아닐까? 댓글에서도 이를 지적하는 말이 나왔다. 글쓴이 논리대로라면 혼자만 위하는 공부보다 여럿을 위하는 집안일에 에어컨을 사용해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이 갈등은 에어컨이 문제가 아닌 듯하다. 에어컨은 구실일 뿐이고, 근본은 새언니와 시누이 사이의 갈등이 아닐까 싶다.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말도 있듯이 며느리와 시누이의 갈등은 그 유래가 무척이나 깊다. 왜 이들은 서로 화합하지 못하고 이렇게 티격태격하는 사이가 되는 걸까?

 

결혼과 함께 새언니라 부르고 가족처럼 대하지만, 사실 시누이 입장에서 새언니는 남이나 다름없다. 결혼 전에 많이 만나고 친하게 지냈으면 모를까 그런 시간이 없다면 서먹할 수밖에 없는 사이다. 그러니 ‘내 사람’이라는 인식이 약할 수밖에 없고, 이 사람을 배려하거나 위하는 마음도 부족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친하지도 않은 동네 아는 언니가 한창 더울 때만 우리 집에 와서 에어컨 틀었다가 시원해지면 돌아간다고 해보자. 이러면 미워 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새언니는 남이 아니라 가족이다. 내 사람이고 운명 공동체이다. 당연히 배려하고 아끼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물론 머리로는 알아도 가슴까지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하니, 이래저래 갈등이 생기게 된다. 위 글쓴이가 아쉬운 것은 그러한 사실을 머리로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최소한 가족이라는 인식이 있었다면, 마음 한켠에 아깝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그게 잘못된 생각이라고 반성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배려와 사랑의 다른 말이 ‘아끼는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그 아끼는 대상이 가족이나 친한 사람에 머물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잘 모르는 사람까지 뻗치기도 한다. 꼭 그렇게 만인을 사랑하는 훌륭한 사람이 될 필요는 없다. 그래도 가족이나 친한 사람이라면 아끼는 마음을 갖는 게 맞다. 가족에게조차 그런 마음을 느낄 수 없다면 너무도 슬플 것이다. (안타깝지만 그런 가정도 있다)

 

사람 마음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하루아침에 새언니를 아끼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샘솟기는 힘들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말만 가족이지 아직 남이나 다름없는 관계이다. 하지만 가족으로 받아들였다면, 마땅히 가족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를 따를 필요도 있다. 나는 이런 게 예의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 도리를 너무 가혹하게 적용해서 부조리한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되지만, (이게 심하면 꼰대가 된다) 최소한 나를 위해 집안일을 해주는 사람에게 ‘돈 아까우니까 에어컨 틀지 마세요’라고 말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런 걸 생각해볼 줄 아는 사람을 두고 ‘철들었다’라고 말하는 게 아닐까 싶다.

 

참고 : 새언니가 혼자있을때 자꾸 에어컨을 틀어요, 네이트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