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인의 유언

부조리(不條理). 우리가 사는 세상을 세 단어로 축약하자면 딱 적절한 단어가 아닐까 싶다. 분명 책에서는 정의를 외치고 사랑과 행복, 우정, 용기, 배려 등을 가르치고 있는데 막상 현실은 그렇지 않은가. 책에서 명시한 삶의 태도와 정반대의 길을 가는 사람이 더욱 세상에서 목소리를 높여서 살고 있지 않은가. 혹은 이렇게 말하는 나조차 ‘부조리’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데 한몫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 자신은 매순간 내면의 두 손에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들고 있어야 한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류근 시인이 페이스북에 올려놓은 장문의 시가 회자됐다. 이른바 <류근 시인의 유언.jpg>로 올라온 이 시는 페이스북에서도 수백회 공유와 댓글들이 달렸다. 시의 내용 중 가장 와닿았던 내용을 일부 소개할까 한다.

 

 

시의 끝부분이다. 시인은 두번이나 강조한다.

 

‘너 하나만 잘 살면 된다’
‘오직 너 하나만 잘 살면 된다’

 

물론 이 시를 읽는 독자들이 이 시를 읽고 속으로 정말 저렇게 살아야겠다고 진정 결심하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 (아예 없지는 않으리라고 본다.) 시인은 매스미디어와 소위 지식인들이 말하는 ‘올바른 소리’와 현실의 모순에 돌직구를 날리고 있다. 오히려 현실의 부정함으로서 거듭, 거듭,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외치고 있는 것 같다.

 

최근 우리나라를 둘러싼 주요 이슈들을 보고 있노라면, 무엇이 정의고 불의인지 딱딱 나눌 수가 없다. (이분법적 사고를 하려는 그 자체가 위험하다) 더 혼란스럽고 복잡하지만 천천히 얽히고 섥힌 갈등 관계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자기계발의 하나로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유식과 성찰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 사고와 행동의 폭을 넓히는 데는 크든 작든 그만큼의 고통이 따른다.

 

만약 이 시의 호소대로 나만 잘 살아도 된다면 그 고통을 감내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개개인은 각자 가진 선한 영향력을 세상에 보여주고픈 욕구가 있다.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각자가 만들어내는 유식과 성찰의 확장에 따르는 고통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조금 힘들겠지만, 그래도 이 고통이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기에. 그리고 철학자 니체의 말처럼 이 고통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 줄 것임이 분명하기에.

 

참고 : 류근 시인 페이스북 게시물 일부 인용
<https://www.facebook.com/keun.reu/posts/28914100743043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