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라는 말은 언제 생겼을까? 과거에도 꼰대라는 말을 쓰긴 했지만, 그때는 그저 나이 많은 사람을 불량스럽게 부르는 정도였다. 그러다 2000년대 이후부터 나이와 권력을 앞세워 기성세대의 규칙을 강요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것으로 뜻이 굳어졌다. 역사가 긴 단어이지만, 의미가 굳어진 것은 오래되지 않은 셈이다. 그럼 과거에는 꼰대짓이 없었을까? 옛날에도 꼰대는 존재했다. 심지어 역사에 길이 남을 정도로 유명한 꼰대도 있다. 다음은 고려 시대에 쓰여진 ‘괴토실설’이라는 글이다.
——————–
10월 초하룻날 이자(李子, 이규보 자신을 가리키는 말)가 밖에서 돌아오니, 종들이 흙을 파서 집을 만들었는데, 그 모양이 무덤과 같았다. 이자는 모른 체하며 묻기를, “어인 일로 집에다 무덤을 만들었느냐?” 하니, 종들이 답하기를, “이것은 무덤이 아니라 토실입니다.” 라고 하기에, “어찌하여 이런 것을 만들었느냐?” 하였더니, “겨울에 화초나 과일을 저장하기에 좋고, 또 길쌈하는 부인들에게 편리하니, 아무리 추울 때라도 따뜻한 봄 날씨와 같아서 손이 얼어 터지지 않아 참 좋습니다.” 하였다.
이자는 더욱 화를 내며 말하기를, “여름은 덥고 겨울이 추운 것은 사계절의 정상적인 이치인데, 만약 이와 반대로 한다면 더 이상해진다. 옛날에 성인이 겨울에는 털옷을 입고 여름에는 베옷을 입도록 하였으니, 그만하면 충분할 것인데, 다시 토실을 만들어 추위를 더위로 바꾸어 놓는다면 이는 하늘의 이치를 거역하는 것이다. 사람은 뱀이나 두꺼비가 아닌데 겨울에 굴속에 엎드려 지낸다면 이보다 상서롭지 않은 것이 없다. 길쌈은 하는 시기가 따로 있는데 하필이면 겨울에 하느냐? 또 봄에 꽃이 피었다가 겨울에 시드는 것은 초목의 정상적인 생태인데, 만약 이와 반대로 한다면 이것은 이상한 물건이다. 이상한 물건을 길러서 때아닌 구경거리로 삼는다는 것은 하늘의 권한을 빼앗은 것이다.”
“이것은 모두 내가 하고 싶은 뜻이 아니다. 빨리 헐어 버리지 않으면 너희들을 용서하지 않겠다.” 하였더니, 종들이 무서워하여 재빨리 토실을 헐고 그 재목으로 땔나무를 마련하였다. 그런 후에야 나의 마음이 편안해졌다.
——————-
저자는 추위를 피하고자 토실을 짓는 것이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는 일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여름이라고 반드시 더워야 하는 것은 아니고, 겨울이라고 꼭 추워야 하는 것은 아니다. 삼한사온이라는 말이 있듯이 자연 그대로의 상태에서도 춥거나 따뜻할 수 있다. 게다가 환경을 적극적으로 바꿀 줄 아는 것은 인간의 타고난 능력이기도 하다. 추우면 토실을 만드는 게 지극히 자연스럽고 인간적인 행동이 아닐까?
게다가 이 모든 행동에 배려가 1도 없다. 까놓고 말해서 저자는 귀족이니 추운 곳에서 일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종들이 일할 방이라도 마련해주지는 못할망정, 스스로 방을 지어 일을 더 잘하겠다는데, 자기 맘에 안 든다고 그걸 훼방 놓았다. 심지어 훼방 놓을 때도 ‘모른 체 하며 묻는’ 등 흉악한 꼰대짓은 죄다 저지른다. 끝에서 토실 재료를 땔감으로 쓰며 제 등만 덥히는 것까지… 마무리까지 완벽한 전설의 꼰대라 하겠다.
이 글의 저자는 고려시대 유학자인 이규보다. 뛰어난 문인으로 역사에 남는 작품을 여럿 남기기도 했는데, 괴토실설도 그러한 작품 중 하나로 교과서에 등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글발이 좋아도 내용이 이 모양이니 사실상 역사에 박제된 굴욕이 되어버렸다. 실상 이규보가 최충헌 무신정권에 아첨했던 어용 지식인이었던 만큼, 그의 인성이 이렇게나마 글로 드러난 게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