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이 행복한 사람은 얼마나 될까? 솔직히 그런 사람이 전 세계에 1%라도 있을까? 한 커뮤니티에 직장생활의 고충을 토로하는 글이 올라왔다. 글쓴이는 학창 시절 학교 부적응자였는데 교사가 되었고, 여전히 부적응 중이라는 내용이었다.
이게 위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글쓴이가 앞에 있다면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그래. 네 말이 맞아. 원래 다 그런 거야.” 직장생활이 행복한 사람, 자기 직업이 천직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솔직히 별로 없다. 요즘에는 취미가 직업이 되는 덕업일치를 이룬 사람도 꽤 있지만, 그들도 ‘직업이 되니 다르더라.’라고 말한다. 어렵게 취업에 성공하거나, 힘겹게 사업을 시작했다면,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감격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일이 마냥 즐겁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된다. 직장인이라면 매일 해야 하는 지루한 반복 업무가 시작될 것이고, 사업가라면 직원 관리부터 세금 문제까지 신경 써야 할 잡무가 넘쳐난다. 그런 일에 치여 살다 보면 ‘이게 과연 내가 원하는 일이었나?’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끝내는 ‘적성이 아닌가 봐…’라는 넋두리를 늘어놓게 된다.
그럼에도 자기가 하는 일이 천직이라고 생각하고, 일에서 행복을 느낀다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을 보고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어서 좋겠다.’라고만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일이 행복하다는 사람들을 보면 육체적, 정신적 고통이 더 심한 경우가 많다. 당연한 일이다. 그들이 하는 일도 똑같이 힘들고, 똑같이 지겹다. 그런데도 행복하다며 잠자는 시간까지 아껴 일에 몰두한다. 진짜 옆에서 보면 죽을 만큼 힘들어 보인다. 그런데도 행복하다고 말한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첫째, 일에서 ‘의미’를 찾았기 때문이다. 일에서 행복을 찾는 사람은 자기가 하는 일을 돈벌이 수단으로만 생각하지 않는다. 돈을 뛰어넘는 의미를 부여한다. 이에 관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미국이 달 탐사선을 개발하던 시절 케네디 대통령이 NASA를 방문했다. 그곳에서 한 직원을 만나 무슨 일을 하는지 물었는데,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사람을 달에 보내는 일을 돕고 있습니다.” 원래 그가 맡은 일은 청소부였다. 하지만 청소라는 일에 ‘달에 사람을 보내는 일’이라는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아마 이 청소부는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청소부였을 것 같다.
일이 행복해지는 두 번째 방법은 ‘성장’이다. 자기가 하는 일에서 실력이 나아지면 재미를 느끼고 몰입할 수 있다. 이러한 성장과 몰입의 관계를 가장 잘 이용한 것이 바로 게임이다. 모든 게임은 유저의 실력이 나아짐에 따라 적당한 난이도의 과제를 계속해서 던져준다. 조금씩 어려워지는 일을 완수하면서 게이머의 실력은 성장하고, 그러면서 더 강하게 게임에 몰입하게 된다. 간혹 일이 재밌다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들이 일을 대하는 태도가 딱 게임과 흡사하다. 어떻게 하면 1초라도 시간을 단축할까? 어떻게 하면 1%라도 매출을 높일 수 있을까? 이렇게 조금이라도 나은 성과를 내려고 애쓴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실력이 성장하고, 재미도 붙는다. 물론 일은 여전히 힘들지만, 마냥 힘들지만은 않게 된다.
세 번째 방법은 스트레스를 다르게 바라보는 것이다. 흔히 스트레스가 나쁜 거라고 생각하지만, 적당한 스트레스가 있어야 업무 효율도 높아지고, 성과도 좋아진다. 그런데 여기서 핵심은 적당한 스트레스의 조건이 스트레스의 양과 무관하다는 점이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든 적게 받든 상관없다. 내가 받는 스트레스가 더 나은 성과를 가져온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부정적 효과는 감소하고 긍정적 효과가 늘어난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다르게 바라보면 성과도 좋아지고, 스트레스로 인한 건강 악화도 줄일 수 있다.
좋아하는 일이란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좋아 보이는 일도 직업이 되면 마냥 좋아하기가 힘들다. 그렇다고 하기 싫어 죽겠다는 마음이 인간의 운명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내가 하는 일을 좋아하는 일로 만드는 방법이 존재한다. 정말로 적성이 아니라면 다른 직업을 찾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그 전에 일에서 행복을 찾는 방법을 시도해보면 어떨까? 지금 하는 일이 천직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참고 : 평생 학교 부적응자였는데.jpg, 더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