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가지고 싸우면 안 되는 이유

 

마을 회관 앞 공터에서 형과 누나들과 재밌게 어울려 놀고 있었다. 그런데 어떤 형이 “마징가Z 한다!”라는 소리를 쳤고 형들은 공터에서 바로 코 앞에 있는 집으로 우르르 달려갔다. 나도 형들을 쫓아 마징가Z를 보러갔다. 텔레비전 앞에 형들은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나도 어서 형들 사이에 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것이 내 ‘최초의 기억’이다. 난 아무리 애쓰려고 해도 여섯 살까지의 기억이 없다. 내 대부분의 기억의 시작은 일곱 살인데 흥미롭게도 앞에서 언급한 다섯 살 때 기억이 딱 하나난다. 와이프는 세 살 때 한 장면이 기억 난다고 한다. 몇 번 내 주변에 최초의 기억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는데 내가 상대적으로 기억의 시작이 꽤 늦다는 것을 알았다. 이유는 모르겠다.

 

당신이 갖고 있는 ‘최초의 기억’은 무엇인가? 시간이 된다면 한 번 ‘최초의 기억’을 적어보자.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가? 언제 일어난 일인가? 그곳에 있었던 사람과 없었던 사람은 누구인가? 명확하게 기억나는 부분과 전혀 기억나지 않는 부분, 희미하게 기억나는 부분은 무엇인가? 그때의 감정은 어떠했는가? 그리고.. 최초의 기억에 대한 당신의 생각과 감정은 어떠한가?

 

오스트리아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Alfred Adler)은 인간이 품은 최초의 기억이 그 사람의 인생을 보여주는 창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첫 상담 시간에는 언제나 환자에게 최초의 기억에 대해 물었고 환자의 현재를 이해하는 도구로 그 기억을 활용했다.

 

그런데 과연 기억은 정확한 것일까? 당신은 당신의 최초의 기억이 실제 경험한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가? 엘리자베스 로프터스(Elizabeth Loftus)의 연구팀은 두 그룹의 실험 참가자들에게 두 대의 자동차가 충돌하는 장면이 담긴 비디오를 보여주었다. 그런 다음 각 그룹에게 다른 단어를 사용해 차가 충돌할 때 얼마나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는지를 물었다.

 

한 그룹에게는 이렇게 물었다. “두 차가 정면으로 들이받았을 때 얼마의 속도로 달리고 있었을까요?” 평균 60킬로미터 정도인 것 같다고 대답했다. 다른 그룹에게는 이렇게 물었다. “두 차가 서로 닿았을 때 얼마의 속도로 달리고 있었을까요? 평균 50킬로미터 정도인 것 같다고 대답했다. 이후 참가자들에게 두 차가 충돌한 이후 깨진 유리 조각을 보았는지 질문했다. 유리 조각을 보았다고 답한 수는 첫 번째 구룹이 두 번째 그룹보다 세 배나 많았다.

 

실제 비디오에는 유리 조각이 나오지 않았다. 이들은 특정한 부분을 기억해내야 하는 상황에 되자 현재 자신이 갖고 있는 정보에 기초해 세부 사항들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첫 번째 그룹과 두 번째 그룹은 각각 ‘정면으로 들이받았을 때’와 ‘서로 닿았을 때’라는 내용이 들어간 다른 질문을 받았다. 즉 격렬한 표현이 들어있는 첫 번째 그룹에서 유리조각을 보았다는 사람들이 많이 생긴 것이다. ‘유도 심문’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우리는 기억이 단순한 기록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기억에 대한 매커니즘은 이미 신경학적 측면에서 어느 정도 답이 나온 상태이고 이 실험을 그대로 지지해 주고 있다. 물론 지금은 뇌과학적 세부사항을 밝히는 것이 핵심이 아니니 자세한 서술은 삼가고 추후에 기회가 되면 하는 것으로 하자.

 

이렇게 기억이 재구성될 수 있다는 사실은 ‘가짜 기억’을 만들어내는 일이 생각보다 쉽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로프터스 연구팀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디즈니랜드에서의 멋진 추억을 떠올려 보라는 문구가 들어간 디즈니랜드 광고지를 받았다. 광고지는 사람들이 다양한 놀이기구를 타고 벅스 버니와 악수를 나는 등의 추억들을 어찌나 따뜻하고 열정이고 아련하게 묘사해 놓았던지, 후에 많은 참가자들이 실제로 디즈니랜드를 다시 찾았을 정도였다고 한다.

 

광고지를 보게 한 후 연구팀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과거 디즈니랜드를 방문한 기억에 대해 묻자 16퍼센트가 벅스 버니와 악수한 기억이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벅스 버니는 디즈니랜드의 캐릭터가 아니라 워너브라더스의 캐릭터이다. 디즈니랜드에 있을 턱이 없다. 

 

다른 실험에서는 실험 참가자들이 실험 전 친척에게 네 가지 기억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참가자들은 친척에게서 그 일들이 진짜로 일어났었다는 말을 들었다. 실험 참가자들을 인터뷰하자 참가자들 대부분은 사건을 기억하고 있었고 특히 25퍼센트는 쇼핑몰에서 엄마를 잃고 울고 있다 나이 지긋한 여인에게 발견된 장면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하지만 그 사건은 거짓이었다. 연구팀은 친척들에게 네 개의 사건 중 하나를 거짓으로 말하라고 한 것이다. 4명 중 한명은 친척의 말만 듣고 그 사건에 대해 ‘생생하게’ 기억해냈다.

 

우리 기억의 얼마만큼이 사실이고 또 얼마만큼이 거짓일까? 일단 인정하자. 기억은 충분히 부정확하다. 그런데 다행스러운 점(?)은 법정 다툼같은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우리가 과거를 얼마나 정확히 기억했는가는 우리 현재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의 현재와 미래의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것은 과거의 사건 그 자체보다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그 사건에 대한 우리의 태도이다. 그런 의미에서 과거와 과거에 대한 해석은 별개라는 생각이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태도는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알프레드 아들러는 똑똑한 사람이었다. 그가 최초의 기억을 물었을 때 그가 관심을 가졌던 것은 기억의 진실성이 아니었다. 최초의 기억에 대한 태도에 관심을 가졌던 것이다. 우리는 진실의 토대 위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닌 자신이 진실이라고 믿는 기억을 바탕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무엇’을 기억하느냐보다 ‘어떻게’ 기억하는지 태도가 더 중요하다.

 

당신은 지금까지의 삶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가? 그 태도가 당신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