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에서 괴물은 어떻게 탄생하나?

 

소셜 미디어의 발달로 우리는 더욱 다양한 사람들과 연결되었다. 누구나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다는 것은 공동체 관점에서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정보의 폐쇄성으로 기득권이 취하던 이권이 사라지고 있다. 여전히 기울어진 운동장이지만, 그 운동장의 경사를 반전시킬 기회가 미약하더라도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약간의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보이지만 0과 0.1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그런 장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셜미디어의 치명적인 단점도 있다. 바로 인정 욕구의 부작용에서 나온 ‘따봉충’이라는 괴물의 탄생이다. 이 괴물들은 마치 사막에서 길 잃은 사람이 물을 찾듯 다른 사람의 관심을 받기 위해 거대한 SNS 사막을 미친 듯이 돌아다닌다. 물을 얻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듯이, 이들은 ‘좋아요’를 받기 위해 사력을 다해 글을 쓰고 무언가를 포스팅한다.

 

원래부터 이들은 괴물이 아니었다. 우연한 계기로 자신의 글이 대중과 연결되고 세상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 뇌가 도파민 범벅이 된다. 그때 그 쾌감이 계속해서 관심을 갈구하고, 결국에는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포스팅하면서 괴물로 돌변하게 된다. 특히 한 번 엄청난 관심을 받았다가 관심이 식어버리면 손실 회피 편향에서 오는 괴로움이 이성을 넘어 괴물을 조종하기 시작한다.

 

여기서도 끝판왕급 괴물들이 있다. 바로 좋은 학벌을 가진 사람이다. 좋은 학벌을 가졌음에도 비슷한 학벌을 가진 사람에 비해 경제적 성공이나 명예를 얻지 못하면, 사람들은 더욱 SNS에 목숨을 거는 경향이 있다. (모두가 그런 것은 절대 아니다) 이런 사람들은 일반인보다 어설프지만, 그래도 읽은 것이 많기 때문에 특히 논쟁적인 영역에 뛰어들어서 세상의 모든 따봉을 쟁취하고 싶어 한다. 조금이라도 그럴듯한 맥락으로 글을 쓰면 적게나마 추종자가 생기기 마련이다. 그렇게 생기는 왜곡된 자부심과 어린 시절에 공교육에서 성취했던 우월감이 합쳐지면서 선민의식이 싹트기 시작한다. 그렇게 거대한 괴물이 탄생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 괴물들은 세상의 어두운 면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최근 허위사실로 문제가 많았던 모 교수도 사람들의 따봉에 취하지 않았다면, 또 그 교수에게 올바른 조언을 하는 온라인 친구가 있었더라면,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커리어로 강연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관련 분야 전공자와 박사들도 친하다는 이유로 괜찮다며 그 교수의 만행을 무마했다. 오히려 ‘좋아요’를 눌러주면서 그의 교감신경은 억제되고 반대로 부교감 신경이 더욱 활성화되었다. 정말 안타깝게도 그의 옛 동료들은 그가 엄청나게 잘못된 길을 가고 있은 것을 알고 있었다. 이것은 순전히 추측이지만, 그는 옛 동료들의 조언을 받았어도 이미 뇌가 도파민 범벅이 되어 이성적으로 판단할 힘이 없었을 것이다. 아무튼 괴물의 탄생을 막을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우리는 이를 막지 못했다.

 

어떻게 나는 이런 글을 쓸 수 있는가? 내가 괴물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언제 또 괴물로 변할지 모를 잠재적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글을 하나 올리고 왜 사람들이 ‘좋아요’를 눌러주지 않는지 초조함에 마음이 사시나무 떨리듯이 떨어봤다. 반대로 많은 따봉을 받으면 마치 내가 세상의 주인공처럼 의기양양해졌다. 고작 몇백 개에서 운이 좋으면 몇천 개의 관심에 불과한데도 말이다. 이 글을 쓰는 목적은 순전히 나를 다스리기 위함이고 괴물의 존재를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함이다. 이들은 그럴듯한 글을 써서 사람들을 현혹한다. 이슈가 있으면 뛰어든다. 그리고 철저히 자신의 낮은 자존감을 채우기 위해 글을 쓰고 포스팅한다. 그러면서 피해자가 발생해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 이슈는 또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니 SNS를 하면서 우리 자신이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해, 또 괴물들의 글에 놀아나지 않기 위해 문해력을 높이고 정신 바짝 차리고 글을 읽자. 그리고 친구의 게시물에 따봉을 남발하지 말자. 그게 친구를 위한 길이 절대 아님을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