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지가 필요할 때

 

젊은 친구들이 취업하기가 쉽지 않다. 힘든 원인이 우리나라 내부에만 있지 않기 때문에 현 상황이 개선될 여지가 별로 없다. 중국에서는 매년 800만 이상의 대학 졸업자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대부분의 제조 관련 일을 중국 젊은이들이 1/3의 인건비로 할 수가 있다. 또, IT 기술의 발달로 단순 업무의 대부분은 로봇과 소프트웨어가 대체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앞으로의 취업 상황은 쉽게 개선되지 않을 것이다. 안타깝지만 신세 한탄한다고 나아지는 것은 없다. 최악의 상황이 올수록 마음을 더 단단히 다잡아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는 어느 때보다도 굳은 의지가 필요하다. 그런 의지가 필요한 우리에게 절단 장애인 신명진씨의 이야기 <지금 행복하세요>는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신명진 씨는 다섯 살 때 기차 사고로 한쪽 팔과 양다리를 잃었다. 비록 성한 부분은 한쪽 팔뿐이지만, 수영으로 한강을 횡단하고 42,195km 풀 코스 마라톤을 완주했다. 그의 모습을 보면서 사지 멀쩡한 나는 무엇을 하면서 살았는지 반성하게 된다. 신명진 씨 지닌 의지의 절정은 육체적 장애를 극복한 것이 아니라 그의 장애를 삐딱하게 바라보는 편견을 극복한 데에 있다. 장애인의 기준을 신체가 아닌 ‘마음’으로 한다면 우리 ‘보통’ 사람들은 과연 장애인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지 묻고 싶어졌다. 우리에겐 햇살같이 공기같이 너무 쉽게 주어진 당연함이 신명진 씨에게는 너무도 갖고 싶은 처절한 소중함이었다. 천 번은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면 만 번 이상 넘어진 신명진 씨의 하루하루는 정말로 우리에게 무엇보다 어른스러운 조언이다. 그의 끈덕지게 노력하는 삶을 짧은 발췌로 담아내기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 희망의 실마리를 애타게 찾고 있을 젊은 친구들에게 신명진 이라는 의지의 등대가 조금이나마 길잡이가 되기를 바라면서, 자신의 한계에 매일매일 도전하는 그의 이야기를 여기서 소개하고자 한다.

 

<지금 행복하세요 中, 신명진>

 

[처음으로 의족 착용 후]
모두의 간결한 기대 속에서 의수와 의족을 착용했지만 걷기도 전에 고통이 심각했다. 하지만 그대로 머뭇거릴 수가 없어 나는 침대를 박차고 일어났다. 이런! 나는 그대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환부가 찢어질 듯이 아파왔다. <중간생략> 이미 없어진 다리로 하루아침에 걸을 수 있다고 기대한 것부터가 무리였다. 걷고 또 걸으며 연습해야 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오직 걷기 위해 살았다.

 

[어머니와 자전거를 타고 가다 논두렁에 굴러떨어진 후]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안절부절못하는 내 눈빛을 그제야 읽은 어머니는 다시금 “괜찮아. 엄마는.” 하고 또 한 번 밝게 웃었다. 그리고 저벅저벅 흙탕물을 걸어가 자전거를 일으켜 세우고 나를 태웠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넘어지고 깨지는 것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것처럼. 어머니는 정말이지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아마도 근 순간이었을 것이다. 넘어지는 일에 겁먹지 말자고 다짐했던 것이. 다시 일어서는 일에 지나치게 비장하지 않기로 한 것이. 다 괜찮은 일, 다시 일어서면 그뿐인 일이라 담담히 마음먹기 시작한 순간이.

 

[억지로 공부를 배우던 누나에게 쓴소리를 들은 후]
사실 장애를 얻은 뒤로 어떤 어른도 내게 쓴소리를 하지 않았었다. 5살 때 장애를 얻었으니 어쩌면 평생 동안 쓴소리라는 건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이미 불쌍한 인생, 가엾고 안된 녀석을 다그쳐봐야 무엇 하냐는 심정이었을지라도 나를 안쓰러워하는 마음들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누나가 내게 일침을 가한 것이다.

 

누나의 말마따나 나는 신나게 놀지도 무엇에 빠져 열정을 불태워보지도 않고 심지어 공부마저 하기 싫다는 이유로 빈둥빈둥 시간을 때우는 한량 그 자체였다. 야구를 보러 다니고 TV를 보면서 남들은 꿈을 찾아 밤을 지새우는 그 시간에 하염없이 내 청춘과 시간을 낭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양쪽 시력을 망막박리 증상으로 모두 잃어버릴 뻔 한 후]
그것은(망막박리 증상) 찾아올 수도 있는 사고 같은 불행이었을 뿐이다. 내가 얼마나 성실하든 내가 나의 불행을 떨쳐내기 위해 얼마나 발버둥을 치든 아무런 상관이 없다. 불행은 그렇게 관용을 베푸는 녀석이 아니다. 그래서 이젠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는다. 불행이 올까 전전긍하고 다시는 불행해지지 않겠다 비장해지지도 않으니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인생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받아들이면 오히려 주어진 것들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두 눈을 잃을 수도 있는 것이 인생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운전면허 취득 후]
내게는 면허를 땄다는 기쁨보다 무언가를 성취하기 위해 누구보다 걸림돌이 많은 내가, 절대로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가슴 벅차도록 기뻤다.

 

“목표를 달성하려면 이 정도는 해야 하는구나. 다른 이들에겐 모두 달려 있는 팔다리, 내겐 그것이 없다. 그러니 몇 곱절로 더 노력해야 한다. 나는 쉽게 이룰 수 없는 사람이다.”

 

어쩌면 내 인생 첫 성취감이었던 것도 같다. 무엇을 이룬다는 것이 그토록 기쁜 일인 줄 왜 미쳐 몰랐던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