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왜 가족이 중요한지 알면서 소홀히 대할까?

 

앞으로 한 시간 안에 죽는다면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해보자. 이 질문을 받으면 대부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겠다고 이야기할 것이다.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부분 큰 고민 없이 ‘가족’이라고 대답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평소에 가족을 잊고 살다가 중요한 순간에만 가족이 생각날까? 나아가 왜 가장 많이 싸우는 상대 중의 하나가 가족일까? 이 모순적인 상황에 대해 조금이라도 고민해본다면 인생의 행복도가 조금은 올라갈 것 같다.

 

 

1. 소중함이 당연함에 잊혀지다

 

당연함은 망각의 뿌리이다. 우리는 당연한 것에 대해 잊고 살다가 그것의 부재를 직접적으로 인지해야 소중함을 깨닫는다. 평소에 먹는 김치찌개랑 유럽 배낭여행 두 달 하다가 만난 김치찌개는 전혀 다른 차원의 음식이다. 맑은 하늘을 무심히 바라보며 살다가 미세먼지 오염이 심각해지고 여기저기서 스트레스를 토해내듯 떠들고 나서야 맑은 하늘의 소중함을 깨닫기 시작한다. 가족도 그렇다. 우리가 왜 가족이 되었을까? 설명하기가 너무 힘들다. 그냥 운명이나 섭리 같은 단어들로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방법이 가장 적합하다. 그래서 가족은 우리 인생에서 당연함의 시작이다. 그래서 잊고 산다. 그러다가 소중함이 가슴 속에서 머리로 문득문득 넘어올 때야 그 소중함에 대해 ‘깨닫는다’.

 

 

2. 가깝기 때문에 더 멀어진다

 

아이를 키워본 부모라면 공감하는 것이 있다. 언제나 함께 하기 때문에 아이가 크는 것이 체감적으로 잘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데 가끔 와서 아이를 보는 사람들은 “아이구! 벌써 이렇게 컸어!”라는 말을 한다. 늘 함께하면 변화를 더 잘 알아차릴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늘 함께하면 변화가 생겨도 누구보다 그 변화를 일찍 보고 자주 보기 때문에 바로 적응한다. 그렇게 변화를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딱히 나눌 대화가 없다. 맨날 보는 친구랑 대화를 많이 하는가? 오랜만에 보는 친구랑 대화를 많이 하는가? 당연히 후자이다. 오랫동안 보지 못한 사이에 바뀐 것이 많기 때문이다. 가족은 너무 가깝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멀어진다.

 

 

3. 연습하지 않았다

 

우리는 유독 애정표현에 서투르다. 내가 캐나다에서 백인 가족들과 살 때 당황했던 것은 가족 간에도 매우 적극적으로 스킨십을 하며 인사한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미국에서 살 때 3명의 룸메이트가 다 농구선수로 활동해서 그들의 온 가족이 가끔 학교로 오고는 했었다. 10년도 더 된 일이지만, 아직도 그 엄청난 숫자의 흑인 가족을 처음 만난 순간이 잊혀지지 않는다. 특히 내 절친이었던 EJ의 엄마를 처음 봤을 때가 인상 깊었다. “Hi. Nice to meet y…”를 끝내기도 전에 EJ 엄마는 “Come on, son.”하고 나를 와락 안아주었다.

 

요즘은 많이 바뀌고 있지만, 예전에는 가족 간의 스킨십은 고사하고 애정 표현도 서툰 것이 대한민국 가족들이었다. 행복의 뿌리를 단단하게 만들고 싶다면 작은 일에도 진심으로 고맙다고 표현하고 별일 없어도 사랑한다고 말해야 한다. 가족 간에도 말하는 연습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게 연습하면 익숙해지고, 익숙해지면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튀어나온다. 결국은 습관이다. 우리는 가족의 소중함에 대해 표현하는 습관이 부족했던 것이다. 노력하는 만큼, 익숙해지는 만큼, 자연스럽게 맑은 공기를 마시면 상쾌해지는 것처럼 은은한 가족의 행복이 내 삶에 스며들면서 내 인생의 전반적인 행복감이 올라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