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떻게 1년에 300권을 읽었나?

 

제가 독서전문가이자 북 큐레이터로 활동을 해서 그런지 독서에 대한 문의를 많이 하십니다. 오늘은 왜 일반 성인에게 ‘다독’이 중요하며 어떻게 하면 다독의 길로 들어설 수 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특히 제가 2008년도에 300권을 읽었던 경험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다독을 계획하시는 분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왜 다독인가?

 

독서, 솔직히 좋다는 것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하기가 어렵죠. 그렇다면 왜 독서가 이리 어려운 것일까요? 스티븐 핑커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소리에 관한 한 아이들은 이미 선이 연결된 상태이지만, 문자는 고생스럽게 추가 조립해야 하는 악세사리다.”

 

이 말의 뜻은 우리의 뇌가 말은 들으면 자연스럽게 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는 반면 글을 읽는 것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특별한 교육이 없어도 말을 하지만 한글 독해는 교육을 통해서만 가능하죠. 글자에 단순히 노출 되어 있다고 글자를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한 나라에 글자를 모르는 비율인 문맹률은 있지만 한 나라에 말을 못하는 비율은 어맹률이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도 과거 글자 교육이 보편화되지 않았을 때에는 문맹률이 매우 높았습니다. 노인대학에서 이제야 한글을 배우는 어르신들을 떠올려 보면 되죠. 이분들은 수 십년 동안 한글에 노출되었던 분들이었습니다. 하지만 따로 교육을 받지 못해 한글을 알 수 없었던 것이죠.

 

게다가 독서는 뇌의 다양한 정보원, 특히 시각과 청각, 언어와 개념 영역을 기억과 감정의 부분들과 연결하고 통합하는 매우 복잡한 과정입니다. 한마디로 처음 독서를 할 때는 뇌를 풀가동해야 할 정도로 독서는 매우 부담스러운 행위인 셈이죠. 독서는 하는 뇌는 없고 독서에 타고나는 사람도 극히 드뭅니다. 전부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독서가 힘든 것은 뇌의 보편적인 특성이기 때문에 타고나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주변의 극소수는 일 년에 100권 이상의 책을 어려움 없이 읽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뇌의 가소성 때문입니다. 뇌는 변할 수 있습니다. 독서하는 뇌가 아닌데 독서하는 뇌로 변한 것입니다. 실제로 숙련된 독서가는 초보 독서가들보다 더 효율적인 뇌사용을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독서하는 뇌로 바꿀 수 있을까요? 다른 수는 없습니다. 오직 독서를 많이 하는 것으로 밖에.

 

그런데 보통 독서를 좀 한다는 사람들 중에 책을 많이 읽는 것보다는 좋은 책을 깊게 정독하는 것이 좋다고 말하며 초보 독서가에게 권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취지는 좋으나 뭘 모르는 말씀이죠. 초보 독서가의 경우 대부분 독서가 어렵기 때문에 초보독서가입니다. 이 사람들은 깊은 정독이 실상 거의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책을 너무 진지하게 읽으면 십중팔구 책 읽는 중간에 포기합니다. 게다가 경험상 좋은 책은 두껍고 매우 깊은 지식들이 포함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평소에 책이 습관이 들지 않는 사람에게 대부분의 양서는 초반 부분도 넘기지 힘든 산입니다.

 

초보독서가는 먼저 책과 친해지고 독서에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그래서 읽고 싶은 책을 골라 ‘이 책을 제대로 읽어야지’, ‘서평을 써야지’, ‘내용을 거의 숙지해야지’ 등의 생각은 절대 하지 말고 그냥 편하게 읽는 것이 중요합니다. 대신 매일 1시간 이상 꾸준하게 책을 읽음으로써 책과 친해지고 만약 이렇게 2~3달 꾸준히 하게 되면 서서히 습관이 들기 때문에 그 이후부터는 책 읽는 것이 점점 편해지게 됩니다. 게다가 책 읽는 절대 권수가 늘어났기 때문에 자신감 또한 생기며 뿌듯함도 생기게 되죠.

 

그리고 독서를 해보면 아는데 어느 정도 독서량과 수준이 되면 자신도 모르게 서서히 양서를 정독하고 재독하고 해부하는 자신을 보게 됩니다. 어떤 책은 하나의 책이 100권의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개인적으로 깨닫기 때문이죠. 그래서 정독이후 다독이 아니라 초보독서가라면 다독이후 정독을 하는 것입니다. 재차 말하지만 그것도 다독을 하게 되면 대부분 스스로 정독의 길을 찾게 되니 잔소리할 필요도 없습니다.

 

다독은 계독(系讀)과 남독(濫讀)이 있습니다. 계독은 한 분야의 계보에 따라 책을 읽는 것을 말하고 남독은 다양한 책을 읽는 것을 말합니다. 어떤 식으로 처음 접근하든 상관없긴 하지만 성인이라면 처음에는 계독하기를 추천합니다. 자신의 관심 있는 분야나 일이나 전공과 관련된 분야의 책을 최소 50권 많게는 200권정도 읽어보는 것이죠. 한 분야의 독서량이 이정도 쌓이게 되면 준전문가 수준의 식견을 얻을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자신의 하는 일에 직접적인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전문가들을 비평할 정도의 실력을 갖춘 자신을 보며 삶에 큰 자신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 분야만 책을 파게 되면 자칫 생각이 편협해지거나 교만해 질 수 있습니다. 책이 쉬워지기 때문에 저자를 우습게 볼 수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남독이 필요합니다. 다양한 책을 읽게 되면 앞의 고작가의 경우처럼 비판적 사고를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많은 재료들을 머리 속에 심어 놓을 수 있습니다. 또한 모르는 분야의 책을 접하면서 겸손 또한 얻을 수 있죠.

 

우리는 독서하는 뇌가 아닙니다. 그래서 독서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뇌의 가소성으로 독서하는 뇌로 변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책을 많이 읽음으로써 가능합니다. 처음부터 양서를 정독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자신이 초보독서가라면 편안 마음으로 손이 가는대로 책을 읽도록 합시다. 하지만 다독을 합시다. 매일 한 시간 이상 2~3달 꾸준히 독서를 하게 되면 습관이 형성되는데 이때부터는 독서가 삶의 일부분처럼 서서히 느껴지게 됩니다. 책 권수를 늘려나가면서 자신감을 얻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그렇게 만나본 책 들 중에 소위 씹어 먹고 싶은 책이 등장하면 정독을 하도록 하고 서평을 써 보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계독으로 시작해 한 분야의 준전문가가 되고 그 다음 남독을 통해 비판적 사고, 창의성, 겸손을 배우도록 합시다.

 

 

나는 어떻게 1년에 300권을 읽었나?

 

그럼 어떻게 하면 다독을 할 수 있을까요? 서른 살까지 1년에 책을 10권도 읽지 않았던 제가 300권을 읽게 된 이야기를 들려 드리겠습니다. 저는 책을 읽기 위해 저도 모르게 오디세우스가 썼던 전략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그리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에는 오디세우스가 트로이전쟁에서 그리스가 승리하는 데 큰 공을 세운 후 고향으로 돌아가다가 겪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귀향 중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아들인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의 눈을 찌르고 도망가면서 저주를 받게 되어 10년간 생명을 위협받는 고생을 합니다.

 

오디세우스는 풍랑을 만나 헤매다가 아이아이에라는 섬에서 마녀 키르케를 만나는데, 1년 뒤 그가 떠날 때 그녀는 세이렌의 유혹을 피하는 방법을 알려 줍니다. 요정 세이렌은 절벽과 암초로 둘러싸인 섬에서 신비로운 노래로 지나가는 배를 유혹하는데, 선원들이 그 노랫소리에 홀려 정신을 잃어 배가 난파되거나 물에 뛰어들어 생명을 잃는다며, 세이렌 섬을 지나기 전에 밀랍으로 선원들의 귀를 단단히 틀어막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디세우스에게 세이렌 자매의 목소리를 꼭 듣고 싶다면, 선원들에게 그의 몸을 돛대에 묶도록 명령하라고 했습니다. 세이렌의 노래를 듣고 싶었던 오디세우스는 부하 선원들에게 명령했습니다.

 

“나를 거칠고 단단한 밧줄로 돛대에 묶어라. 그리고 내가 놓아 달라고 명령하고 간청하거든 더 꽉 묶어라.”

 

세이렌의 노래를 듣는 동안 오디세우스는 자신을 놓아 달라고 애원했지만, 충성스러운 부하들은 그를 더 단단히 묶었고, 결국 모두 무사히 세이렌 섬을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한마디로 ‘환경설정’을 통해 목표를 이룬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독한 사람이 없진 않지만 대부분 독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의지가 약하다고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환경만 적절히 활용해도 의지왕이 될 수 있으니까요.

 

2008년 새해가 되자, 저는 다독을 하기 위해 어떻게 하면 유혹을 뿌리칠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바로 ‘카페에 내 몸을 묶어라!’였습니다.

 

2007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터지고 세계 경제에 이상 징후가 포착되면서, 저는 급속도로 경제에 대한 관심이 커져 갔습니다. 경제기사와 보고서를 중심으로 공부하던 저는 본격적으로 경제 도서를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실행을 하려니 독서 트라우마가 나를 괴롭혔습니다. 그동안 이미 수없이 독서에 도전했지만 실패한 바 있었으므로, 이번에도 큰마음을 먹었지만 실패할 것만 같았습니다. 뭔가 새로운 전략의 필요성을 느꼈죠.

 

먼저 제 의지를 믿지 않기로 했습니다. 매번 세이렌의 유혹이 제 의지를 무참히 박살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떠오른 아이디어가 ‘특별한 장소’였습니다. 일단 집은 아니었습니다. 집에는 컴퓨터가 있고, 나는 게임을 좋아하니 독서를 하다가 분명 게임을 시작하게 될 것이 뻔했습니다. 도서관은 너무 조용했습니다. 퇴근 후 저녁을 먹고 조용한 도서관에 가면 침 흘리며 쓰러져 자다가 깰 나 자신이 훤히 보였습니다. 그럼 도대체 어디로 가야할까요?

 

당시만 해도 지금과 같이 대중적인 프랜차이즈 카페가 많지 않았고, 특히 남자들은 카페를 거의 찾지 않았습니다. 카페에는 커피를 마시며 지인들과 대화를 하거나 독서를 하는 여자들이 많았습니다.

 

‘여자가 많은 곳이라……!’

 

당시 미혼이었던 저는 지금의 아내인 여자 친구에게 일편단심이었지만, 그래도 혈기왕성한 청년이었기에 여자들이 많이 있는 장소 자체가 상당한 자극을 주었습니다. 그곳에서 피곤하다고 잘 수 있겠습니까? 무엇보다 여성들의 가시권 안에서 책을 멋들어지게 읽는 것 자체가 나에게 엄청난 동기 부여가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전 속물이었습니다. 마쓰오카 세이고가 말한 것처럼, 전 좀 ‘있어 보이기 위해’ 카페를 독서의 장소로 선택했던 것입니다.

 

당시 저는 퇴근 후에 집에 오면 책 한 권만을 들고 카페로 향했습니다. 빵도 같이 파는 카페였기에 저녁도 대부분 그곳에서 해결했죠. 대체로 남자는 저 혼자뿐이었고 그만큼 내 각성상태는 하늘을 찔렀다. 저는 경제 전문가인양 독서를 했고, 거의 하루에 한 권의 책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메리카노 커피는 학습에 매우 긍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하루에 2잔 이하로 마신다면요.)

 

물론 처음에는 책이 어려워서 덮고 싶거나 졸릴 때도 많았고, 마음 한쪽에서 들리는 ‘이제 그만 하자’라는 세이렌의 목소리에 항복하고 싶을 때도 많았지만, 저를 지켜봐 주는 여인들이 많다는 착각(!)이 있었기에 그 모든 역경(?)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반복하다 보니 어느 순간 독서가 습관이 되어 있었습니다. ‘습관’의 사전적 정의는 ‘여러번 되풀이함으로써 저절로 익고 굳어진 행동’을 뜻하지만, 저는 좀 다르게 말하고 싶습니다. 습관이란 특정 행동을 하지 않으면 이상한 감정이 드는 상태입니다(전문가들은 어떤 행동을 약 66일 정도 반복하면 습관으로 만들 수 있다고 합니다).

 

철학자 데이비드 흄은 “이성은 열정의 노예이며 또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한다”라고 했습니다. 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는 흄의 이 말에 동의하며, ‘이성은 기수이고 감정은 코끼리’라고 비유했죠. 기수(이성)가 간혹 코끼리(감정)를 다스릴 수도 있지만, 코끼리가 한번 움직이기 시작하면 기수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습니다. 그만큼 행동에서 감정의 힘은 강합니다. 그래서 습관이 무서운 것입니다.

 

경제 도서를 100권 정도 돌파하자, 점차 책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안목이 생기기 시작했고, 무엇보다 책 읽는 속도가 매우 빨라졌습니다. 독서에 가속도가 붙는 듯했습니다. 그렇게 1년이 지나자 태어나서 처음으로 1년에 300여권의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이제 저의 뇌는 독서하는 뇌로 변했습니다. 가소성이라는 말은 고체가 특정 방향으로 바뀌지만, 원래의 모습으로는 잘 돌아오지 않는 성질을 말합니다. ‘독서하는 뇌’로 변해 버린 저는 그때 이후로 독서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이르렀죠. 다음 해에 결혼을 하고 여러 비즈니스를 하게 되었지만, 1년에 200권 이상의 책을 꾸준히 읽었습니다. 지금은 두 아이의 아빠가 되었고 예전보다 책을 읽을 수 있는 절대적인 시간은 줄었지만, 여전히 연 200권 이상의 책을 꾸준히 읽고 있습니다.

 

그런데 혹시 이런 전략은 오디세우스나 나에게만 통하는 것일까요? 심리학자 토드 해서톤과 페트리샤 니콜스의 연구에 따르면, 인생에서 성공적인 변화를 이끌었던 사람들의 무려 36%가 ‘새로운 장소’로 이동한 것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게다가 변화를 위해서 새로운 장소로 이동했음에도 실패했던 확률은 13%에 불과했죠. 성공적인 변화를 위해서 적절한 장소를 활용한다면, 열 명 중 아홉 명은 변화에 성공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정리해 보죠. 어떻게 다독을 할 수 있을까요? 먼저 성장형 사고방식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의 뇌는 죽을 때까지 변화하고 성장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책 읽는 뇌가 아니어서 힘들겠지만, 뇌는 책 읽는 뇌로 변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내가 어떻게 1년에 50권 이상의 책을 읽어?’라고 한계를 짓지 맙시다. 사고방식은 순식간에 바뀔 수 있습니다. 사고의 변화는 자신의 의지로 충분히 가능합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그것도 서른 살에 말이죠.

 

정신무장을 했다면 이제 행동을 할 때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행동을 할 때에는 자신의 의지만을 믿어서는 안 됩니다. 자신이 독서를 할 수밖에 없거나, 최소한 잘 할 수 있는 환경을 생각해 보십시오. 카페, 지하철, 도서관, 공원, 어디든 상관없습니다. 아니면 새로운 동네로 이동해 평소와 다른 색다른 분위기 속에서 독서를 해도 좋습니다. 연인이 있다면 함께 약속하고 신선한 장소를 물색해 연애와 독서를 동시에 즐겨도 좋습니다. 주말이나 공휴일에는 자연 속에 가서 책을 한 권씩 읽어도 좋습니다.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독서클럽에 가입해도 좋습니다.

 

아무튼 자신의 현실에 맞게 가장 적절한 환경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습관이 형성될 때까지만 그 환경에 자신을 묶어 보십시오. 그 이후부터는 독서를 하지 않으면 불안하고 이상한 느낌을 독서하는 뇌가 선물해 줄 것이니다.

 

모든 분들이 다독의 세계에 빠져서 독서하는 뇌를 갖기를 기원하겠습니다.

 

참고 <완벽한 공부법>, 고영성·신영준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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